우리가 다시 만난 사람① – 홍석천씨

서울대저널 2003년 10월호에서 홍석천 씨를 인터뷰한지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2003년 인터뷰에서는 커밍아웃을 선언한 후 오랜만에 활동을 재개한 홍석천 씨의 심정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드라마 활동을 비롯해 여러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그를 다시 만나보기로 했다.그가 운영하는 이태원의 레스토랑 ‘our place’ 안에 들어섰을 때, 조명은 거의 꺼져있었고, 초가 은은히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서울대저널 2003년 10월호에서 홍석천 씨를 인터뷰한지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03년 인터뷰에서는 커밍아웃을 선언한 후 오랜만에 활동을 재개한 홍석천 씨의 심정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드라마 활동을 비롯해 여러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그를 다시 만나보기로 했다. 그가 운영하는 이태원의 레스토랑 ‘our place’ 안에 들어섰을 때, 조명은 거의 꺼져있었고, 초가 은은히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초는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고 솔직하게 해주기 때문에 유독 초를 좋아한다는 홍석천 씨. 은은한 불빛을 둘러싸고 그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서울대저널(이하 저널) : 요즘에는 무엇을 하며 지내나? photo1홍석천 (이하 홍) : 나이트클럽 디제이는 계속하고, SBS에서 라디오를 일주일에 한번씩, 그리고 요즘5~6월에는 대학교 강연이 굉장히 많이 있다. 그래서 지방까지 특강하러 다니고 있다. 소수자 인권, 동성애 바로알기, 나와 다른 성에 대해 알아보기, 새로운 트렌드, 문화적인 얘기를 많이 한다. 요즘에 동성애 코드가 사회적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나오지 않는가? 그런 사회현상이 부쩍 늘어난 이유, 또 예전보다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내 경험을 통해 얘기한다. 저널 : 커밍아웃 이후, 3년 만에 활동 재개하는 시점에 우리와 인터뷰를 했었다. 활동 재개 이후 어려움은 없었나? 홍 : 아직까지도 많다. 복귀라고 생각했는데 잘못 생각한 거였다. ‘완전한 사랑’이후 ‘슬픈 연가’를 거의 10개월여 만에 한 건데 그 이후로 방송활동이 없었다. 케이블 및 공중파 아닌 프로는 조금이나마 가능했지만, 공중파 3사 오락프로에는 출연을 못했다. 그건 아직도 제작자들이 온 가족이 보는 오락프로그램에 홍석천이 나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끔 인터뷰를 하는 정도이지 돈 받고 쇼프로에 출현한 적은 없었다. ‘완전한 사랑’이 끝나고 KBS 어린이 드라마에 캐스팅제의가 들어 와서 완전한 복귀라고 생각했는데 일주일동안 미국여행 갔다 오니 취소되어 있었다. 방송 내에서도 그처럼 아직 불확실한 위치이다. 저널 : 연예활동 이외에도 반전시위 참가, 민주 노동당 입당, 탄핵무효 잡회 참석, 안티 미스코리아 격려 위원 등 사회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데, 어떤 마인드에서 하고 있는가? 홍 : 이름이 알려진 사람으로서 어떤 식으로든 사회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활동이 인권에 관련된 거라면 더욱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예컨대 동성애 퍼레이드라는 게 있는데 사실 그것은 연예인으로서의 홍석천만 생각한다면 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꾸 그러한 행사에 참여해서 동성애자의 이미지가 부각되면 완전한 방송복귀가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도 나의 장래를 걱정해서 이런 행사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한순간 모든 걸 다 버려 봤기 때문에 그런 나만의 작은 이익만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저널 : 활발한 사회 참여활동으로 인해 일부 언론에서 ‘소수자의 대변인’ 이라고 추켜세우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홍 : 물론 부담스럽다. 왜 그런 걸 나 혼자 짊어져야 하는지 생각이 들 때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위해 앞장서서 운동하는 나를 우습게 보는 사람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에 내게 지워진 짐이 된 것 같다. 내가 죽을 때까지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계속 안 풀리니까 풀려고 아둥바둥 애를 쓰는 중이다.저널 : 커밍아웃 이전과 이후에 자기 자신의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홍 : 굉장히 힘든 시간을 거쳤고, 내 스스로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지 주위 사람들이 눈빛이 깊어졌다고 한다. 나 역시 사회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도 예전과는 많이 바뀌었고, 내 것만 챙기던 예전의 내가 아니라 남에게 양보하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요즘에는 상대방이 나를 이용한다고 느껴도 이용당해주자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런 태도가 내 인생을 살찌우고, 밀도있고, 찰지게 만드는 것 같다. 사람관계도 다양한 방면으로 넓어졌고, 내가 정확히 어떤 인간인지 아는 분들하고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비록 일은 자꾸 줄어들지만 개인적인 내 삶은 전보다 굉장히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저널: 서울대저널이 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언론에 의해 혹독하게 당한만큼 언론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것 같은데 젊은 대학 언론인에게 한마디 한다면?홍 : 하도 많은 상처를 받아서 얘기하려면 끝이 없다. 스포츠 신문 기자나 인터넷 신문 기자 중 몇몇은 나랑 통화도 안하고 멋대로 기사를 써버리니깐 내 진실을 얘기할 방법이 별로 없다.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말아버려야지 그런 기사 하나하나에 연연하게 되면 스스로 화를 키우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기사를 보면 그냥 하루 기분나빠하고 만다. 물론 기자도 기자 나름이라 좋은 기사를 써주시는 분도 많다. 나는 글쓰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언론인의 기본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비판도 칭찬도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건데, 애정없는 비판은 한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근데 보통 언론은 좋은 면과 나쁜 면 양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쪽으로 몰아가는 면이 있다. (여론에) 반하는 주장을 하게 되면 자기가 욕을 먹는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언론이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균형을 맞춰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바람직한 언론이라면 대상에 대한 애정과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photo2저널: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말해 달라.홍 : 그동안 내가 계속 해왔던 것을 굽히지 않고 해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정치적으로 싸웠다고 하면, 이제부터는 문화적 활동을 하고 싶다. 예를 들어서 책, 연극, 영화 등을 통해 나의 얘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혼합해서 보여주고 싶다. 저널 : 마지막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홍 : 동성애자 홍석천이 아니라 인간, 연예인 홍석천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 큰 막을 쓰고 보기 때문에 진실된 모습을 볼 수 없고, 인간관계가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라는 수식어를 떼어내고 방송할 땐 배우 홍석천, 방송 외에서는 그냥 인간 홍석천, 그렇게 봐주었으면 한다. 인터뷰 도중 그는 계속 담배를 피웠는데, 뿌연 담배연기 속 그의 미소에서 그동안 그가 겪은 많은 어려움들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일요일 밤이라 손님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의 사적인 질문들까지도 정성껏 대답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홍석천 씨에 대한 편견들이 불과 한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사라졌고, 다정스럽게 장난치며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에 그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한 ‘사람’임을 알았다. 홍석천 씨의 바람처럼 사회 속에서 하루 빨리 그가 ‘인간 홍석천’으로 보여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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