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저널 2003년 9월호(통권 제60호)에서는 서울대 법대 최초의 여교수로 주목받았던 양현아 교수(45)를 만나보았다. 당시 인터뷰에서는, 다소 생소했던 ‘법여성학’의 학문적 의미와 학생사회의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5월 어느 날, 법대 한 켠의 햇살 좋은 연구실에서 양현아 교수를 다시 만났다. 김밥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있던 그녀는 매우 바빠보였다. 연구실은 끊임없는 전화벨과 분주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3강좌의 강의, 세계여성학대회와 사회학회 학술 대회 준비에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최근 근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양현아 교수와의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서울대저널(이하 저널) : 서울법대 최초의 여교수로서 지난 2년간의 경험과 소감은?양현아 교수(이하 양) : 나에게 법과대학은 처음부터 친근한 대상은 아니었다. 학부와 대학원시절을 다른 단과 대학에서 공부했기 때문이다. 지난 2년은 법대와 사귐을 만들어가는 시기였고, 법학에 대해 스스로 눈을 뜨는 과정이었으며, 그것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photo1 내가 서울대에 임용된 것은 기쁨이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타 대학에서 일하게 되었다면 덜 기뻤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25년간 서울대와 함께하면서 학창시절부터 담아낸 추억들이 참 많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교수생활로 이어지고, 가르치는 학생들과도 단지 제자가 아닌 후배라는 애정을 자연스럽게 갖게 될 수 있어 더욱 기쁘다. 연구자로서 크게 2가지 본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 하나는 연구하는 것, 다른 하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인데, 특별히 학생을 좋아하는 나는 연구보다 강의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어쩌면 강의를 하기 위해 연구를 하는지도 모르겠다.(웃음) 5~10년 후, 내 강의를 들었던 법학 전공자들이 사회, 특히 법조계에 진출했을 때 새로운 법문화 창조에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 매우 흐뭇하다. 저널 : 2003년 인터뷰 당시 뜨거운 논란이었던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호주제 폐지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고, 아직 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양 : 호주제는 신분관계에 관한 법적 제도이다. 하지만 가족생활은 경제적인 단위이고, 가사 활동을 통한 노동의 단위이고, 새로운 사회 구성원을 기르는 양육의 단위이다. 친밀감과 보살핌이 실제의 가정생활임에도, 그동안 제도적인 문제가 가족의 실질적 삶의 질적인 부분을 다루는데 큰 장벽이 되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제 폐지는 스팸메일을 지우는 것과 같다. 스팸메일을 하나 하나 지워가면서 중요한 메일을 확인해갈 수 있듯, 가족법상의 스팸메일인 호주제를 폐지함으로써 가족의 삶에 대한 질적이고, 깊은 내용을 찾아낼 수 있다. 이제까지는 법적인 싸움 때문에 ‘가족의 실질적 삶’에 관한 문제를 간과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대응이 미흡했다. 그나마 존재했던 정책들도 형식의 틀 속에 갇혀, 실질적인 쟁점들이 그 안에 묻혀 있었다. 호주제도가 폐지되면서 건강가정기본법, 가족지원기본법 등 호주제의 대체 입법과 관련한 여러 쟁점들이 표면으로 떠오른 것은 이를 대변해 준다. 호적제도에 있어서는 그 대안으로, 개인별 신분등록제가 유력할 것이라고 전망해본다. 하지만 신분등록만이 문제가 아니다. 가족관계와 관련해 훨씬 더 다양하고 적극적인 문제들이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다. 호주제 폐지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할 일이 없어졌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할 일이 많다.(웃음)저널 : 연구활동 이외에 개인적인 관심사는? 양 : 연극, 공연 등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다. 개인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예술적인 삶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다. 예술이 한 사회를 규정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법을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법보다는 예술이 개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풍요롭게 한다고 본다. 학생들도 생활 속에서 예술적 감성을 키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안타깝다. 예컨대 강의실 건물도 단순히 강의를 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구성, 외관, 주변 길 등 모든 것이 모두 결합되어 보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하나의 예술품이 되어야 할 터인데, 건물을 짓는 사람들은 그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학생들의 발표도 마찬가지다. 발표하는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나 과정, 그 느낌도 전체의 구성 요소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것을 배워나가는 것이 사회에 진출해서도 큰 재산이 될 것이다. 지식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면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이처럼 예술은 모든 것에 다 포함되어야 할 필수요소라고 생각한다.저널 : 80년대의 여학생과 지금의 여학생을 비교해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하시는가? 덧붙여, 현재의 여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씀 부탁드린다면? 양 : 과거에 비해 여학생수가 참 많아졌고, 그래서 이제는 여학생이 남학생을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되도록 변화했다. 또한 예전에는 ”서울대 여학생들이 옷을 못 입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웃음) 그 시절에는 조금만 옷을 튀게 입으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 때문에 옷차림도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생과대학생이어서 여학생들이 많은 환경 속에 생활했지만 다른 단과대의 경우는 압도적으로 많은 남학생들 가운데서 극소수의 여학생들이 살아야 했기 때문에, 여학생이 많은 부분에서 주변을 의식해야 했다. 즉, 모든 대학문화가 남성 위주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학생들은 물론 교수들에 의한 성희롱이 다반사로 일어났지만, 그것에 대한 개념과 문제의식조차 없었다. 그래서 여학생들은 조신하게 다녀야만 했다. 요즘에는 성희롱 사건 자보가 붙고, 매체에 알려지는 등 상황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자들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여학생이 말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면에서는 25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점에서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의 여학생들에게 더 당당해지고, 확실한 자기 개성을 가지라고 얘기하고 싶다. 펑크머리를 하든, 미니스커트를 입든,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도 좋다. 다만, 요즘 학생들이 자주보이는 미성숙한 말투는 꼭 다듬었으면 한다. 서울대를 나온 20대 중반의 여성이 사회에 나가서도 마냥 어린아이 같아서는 안 될 것이다. “여학생들이 좀 더 당당하고 성숙해지기를 바란다“는 양현아 교수의 당부를 끝으로 인터뷰는 마무리 되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연구실을 나서며, 상담을 기다리는 학생들을 보았다.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학생들과의 소통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양현아 교수의 모습에서 학생들에 대한 사랑을 엿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끊임없는 학문에 대한 열정과 예술분야에 대한 관심이 관악 내에서 그녀의 강의를 통해 좀 더 많은 학생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