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존중하는 교육을 꿈꾸며

특별한 제자와의 만남내가 재직하는 학교는 기독교 이념에 따라 설립된 작은 농촌 중학교다.나는 학교 목사로서, 기독교와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우리학교에는 통일교 신자인 아이가 한 명 있다.이 아이의 가정은 통일교가 지향하는 세계평화를 위해 국제결혼으로 맺어진 가정이다.즉, 아버지는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어머니는 일본 사람이다.그런데 이 아이가 기독교 이념에 따라 설립하고 운영하는 우리 학교에 입학하여 재학하게 되었다.

특별한 제자와의 만남

내가 재직하는 학교는 기독교 이념에 따라 설립된 작은 농촌 중학교다. 나는 학교 목사로서, 기독교와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학교에는 통일교 신자인 아이가 한 명 있다. 이 아이의 가정은 통일교가 지향하는 세계평화를 위해 국제결혼으로 맺어진 가정이다. 즉, 아버지는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어머니는 일본 사람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기독교 이념에 따라 설립하고 운영하는 우리 학교에 입학하여 재학하게 되었다. 나는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내 업무상 영민이는 그야말로 학교 목사인 내가 처음 겪는 통일교 집안이고, 학생 상담 담당자인 내가 처음 겪는 다문화가정이었다. 아!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학생에 대한 배움이나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난감했다. 나는 한 번도 내 주변에서 통일교 신자를 본 적도 없고, 국제결혼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다문화에 대한 것도 말만 들어본 정도이다.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대충 보고는 넘어갔다. 내게 반사회적인 종교, 다문화, 국제결혼 같은 것은 관심 밖이었다. 영민이가 입학한 후 한 달 쯤 지난 어느 날, 영민이 아버님이 교무실로 나를 찾아오셔서 말씀을 나누게 되었다. 아버님은 조심스럽게 종교적인 문제를 꺼내셨다. 학기 초에 종교조사를 한 것을 들으셨다고 하셨다. 영민이가 통일교라고 하면 아이들이 놀리기에 그냥 기독교라고 답했다는 것, 어머니가 일본인인 것도 아이들이 아는 것을 원치 않기에 다문화 캠프 같은 것을 안 가고 싶어 한다는 것도 말씀해 주셨다. 그러면서 소수종교인 자신들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다. 통일교는 기독교를 비난하거나 적대시하지 않는데 기독교계에서는 지나치게 자신들을 적대시한다고 하셨다. 그저 이 지역에 살다보니, 우리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2년 후엔 영민이 동생도 입학하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영민이가 생활 면에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모범적일 것이라고도 하셨다. 나는 영민이 아버님을 배웅해 드리고 나서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였다. 조금씩, 마음을 열다 나는 통일교를 비롯해서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소수 종교인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를 비롯한 우리 사회는 소수 종교에 대해 냉정하게 대한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내가 사랑해야 할 학생인 영민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가족이 짊어질 고통을 생각해 보았다. 통일교 신앙으로 확신을 갖고 살기에 그런 어려움을 감내하는 용기와 결단이 나오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며칠 후, 전체 교직원 회의 때 조심스럽게 준비한 이야기를 꺼냈다. “통일교에 대해서 들어 보셨을 겁니다. 이들은 소수지만 매우 신앙이 깊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학교에 ‘김영민’이 바로 통일교 신자이고 어머님이 일본인으로 국제결혼을 한 다문화 가정입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영민이를 강제로 우리 학교에 맞추기보다는 사랑으로 감싸주고 이해하는 분위기였으면 합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문제와 다문화의 문제는 전적으로 주관업무담당인 제게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다행히 교장선생님 이하 교직원들이 내 말에 공감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과 같은 평준화, 의무교육체제 상황에서는 내 딸과 아들이 나와 다른 종교학교에 배정되면 그 학교에서 행하는 종교적 행위에 참여하기를 강요당할 것이다. 이렇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영민이가 안쓰럽게 느껴지고, 가족이 겪는 아픔을 헤아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사실 나도 영민이에 대한 배려가 쉬운 건 아니었다. 그나마 이런 것이 가능했던 것은 나의 노력도 있었지만, 영민이가 모범적으로 학교생활에 임해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영민이는 정말 아버님 말씀대로 학교생활에 모범적이었다. 학업성적도 좋았고 친구관계도 좋았으며, 예의바르고 성실했다. 물보다 진한 게 ‘피’이고, 피보다 확실한 게 ‘정’이라는 말이 맞나 보다. 영민이와 매일 만나다 보니 정이 들어 이제는 영민이가 ‘통일교’, ‘일본’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 보니, 영민이도 그저 한 명의 학생으로 보인다. 종교는 아집을 말하지 않는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나 결혼이주민과 그들의 자녀들을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동남아시아 출신의 여성들을 차별하고 모독하는 이들도 아직 우리 사회에 있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깔보거나, 학력수준이 다르거나 특정지역 출신이라고 해서 그런 사람들은 주변부로 내모는 힘이 우리 사회에 아직도 엄존하고 있다. 이런 사회는 몰인정하고 비인간적인 사회이다. 자기 자식이 겪는 아픔은 대단하게 여기면서도 사회적 약자가 겪는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회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사회이다. 오늘 새벽녘에 문득 성서를 읽다가 깨닫게 된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성서의 인물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도록 권장하는 인물이 바로 ‘요셉’과 ‘다윗’이다. 이 두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잘 아는 극적인 삶으로 교훈과 감동을 준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요셉은 나이 17세에 이복 형들의 미움을 받아 죽을 뻔하다가 억울하게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다. 이렇게 시작된 외국인 노동자, 아니 그 당시엔 노예로 살다가 성폭행미수범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가 나이 30세에 이집트 왕에게 그 유명한 꿈해몽으로 발탁되어 총리에 오른다. 그야말로 역전의 드라마다. 이런 요셉이 오늘의 눈으로 보면 외국인 노동자다. 이집트 왕은 국적도 다르고, 민족도 다르고, 배움이 짧고, 나이가 적고, 종교가 다른 요셉을 편견 없이 그의 능력만으로 바라보고 전격 발탁한 것이다. 이 일로 이집트는 다가오는 국난을 대비할 수 있었고,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다윗의 증조모는 롯이다. 롯은 모압 사람으로 이스라엘에서 무시하는 이방인이다. 그러니 다윗은 요즘 말로 하면 자신의 핏줄에 정통 이스라엘 민족의 피가 아닌 이스라엘보다 못한 민족의 피가 섞인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고, 이 후손으로 예수님이 탄생한다. 신약성서 첫 부분인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 데 다윗의 증조모인 롯이 당당하게 기록되어 전한다. 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결혼이민자들과 그 자녀들에게 별 관심이 없고, 조금은 낮은 사람들로 여기는 편견을 갖고 있다. 오늘 문득 성서를 읽으면서 한 번 더 나의 무관심과 편견을 반성해 보면서, 아이들에게 요셉과 다윗을 언급할 때, 그 동안 다루지 않았지만 그들이 다문화가정 출신임을 강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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