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알다시피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이념은 국민이 자기 자신을 통치하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정치제도는 조금이나마 그 이상에 근접하려는 노력의 표현이다. 따라서 올바른 종류의 정치담론은 한 사람의 시민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고찰하고, 그 고찰의 내용을 공동체에 투영하는 것이라야 한다. 만일 그런 이상이 어느 정도 구현된 사회라면, 모든 종류의 정치논의와 선거담론은 이런 모습을 지닐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이러이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므로 내 생각을 대변하는 그를 지지한다.” 하지만 주위에서 이런 말을 듣기가 힘들다. 한국 사회에서 저런 말을 내뱉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윤리적인 행위가 되어버렸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도 책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정치세력이 생활세계의 문제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로마 시민들이 콜로세움에 앉아서 검투사의 전투를 보듯 정치인들의 이전투구를 지켜보아야 한다. 환상의 정치극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환상극 속에서도 그것을 끝장낼 하나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이 지랄맞은 정치쇼에 등장하는 요소 요소의 상징적 의미를 해설해 줄 나같은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이명박, 물신주의와 냉소주의의 결혼이명박에 대한 지지를 경제주의라고 표현하는 것은 경제를 무시하는 짓이다. 일본보다도 더한 토건국가에서 살고 있는 대한민국 경기를 삽질해서 살리겠다는 그의 주장이 어째서 경제적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가 경제를 살려줄 거라고 믿는 40~50대들의 정서적 지지는 물신주의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올바를 것이다. 이분들은 경제가 살아나기를 바라지만, 경제가 어떻게 해서 경제인지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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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26일 고 박정희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이명박 후보. 그는 박정희의 계승자를 자처하지만, 추구하는 경제정책은 전혀 다르다. |
박정희가 잘못 죽었다. 박정희의 추종자들은 그를 신화화하는 데 열중하고 있고, 그의 반대자들은 그를 깡그리 부정하기만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부유하게 만든 그의 성공적인 경제정책이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를 계승하니 마니 하는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의 경제정책의 성격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 정책이 대한민국을 부유하게 만들었나?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궁금하다면, 개발경제학자 장하준의 책을 보면 된다. 그리고 과거의 교훈을 활용하여 현재의 경제정책을 구성해야 한다. 이것이 사물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의 방식이다. 하지만 신화적인 감수성은 그런 시시한 도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키작고 다부진 몸매의 선글라스 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남다른 애국심과 청렴결백함과 민주주의자들에게 타협하지 않는 강단으로 대한민국을 일으켰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을 일으킨 건 박정희라는 독재자를 수식하는 형용사들의 포스다. 그리하여 그 형용사들을 대충 누군가에게 붙여놓고 그가 같은 포스를 보여줄 거라고 믿는다. ‘경제대통령’, ‘CEO 대통령’ 따위의 수식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이명박의 아우라의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 박정희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경제정책이 박정희의 그것과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하지만 이명박을 지지하는 것은 물신주의자 뿐만이 아니다. 그들에 결합한 냉소주의자들을 무시해선 안 된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2002년에 노무현을 찍었던 유권자의 1/3이 이명박을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2002년에 그들은 감성주의자였다. 그들은 물신주의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 노무현이라는 명사 앞에 포스 넘치는 형용사들을 줄줄이 이어붙이고 그가 대한민국을 윤리적이고도 강력한 국가로 재탄생시켜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이 정동영이나 문국현의 지지자들보다 나은 것은 적어도 그 믿음이 박살났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권하거나, 물신주의자들의 선택에 결합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대한 그들의 분노를 표출하기로 했다. 40~50대 물신주의자들과 그에 결합한 일부 386 냉소주의자들이라고 말하면 이명박 지지율에 대해 할 말은 다한 셈이다. 이회창, 엘리트 제국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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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7일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출마 선언에 환호하는 지지자들. |
하지만 후보 등록을 하기도 전에 대통령처럼 굴던 이명박은 뽑히기도 전에 탄핵당할 분위기다. BBK가 진실로 밝혀지면 그는 한나라당의 당규에 의해 당원자격을 박탈당하고, 선거법은 더 이상 당원이 아닌 그를 한나라당 후보로 인정하지 않는다. 후보등록일자에 임박해서 김경준이 귀국했기 때문에, 사태가 그리 진전되면 한나라당은 더 이상 후보를 낼 수조차 없다. “하지만 이회창이 출동하면 어떨까?” “이!” “회!” “창!” 댓글놀이가 성공했고, 이런 어이없는 파국을 막기 위해 왕년의 용사가 돌아오셨다. 우석훈의 말을 빌리자면 이회창은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박정희 다음으로 사랑한 인물이다. 이 사랑의 근거는 적어도 이명박에 대한 유권자들의 애정보다는 합리적인 이유로 추려낼 수 있다. 그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곱게 자랐고, 잘 교육받았으며, 부유한 이들 중에서나 간혹 나오는 원칙주의적인 강단으로 세상사에 대처했다. 물론 그도 비리에 연루되었다. 자식은 병역을 기피했고, 그 자신은 차떼기로 대선자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금을 모으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회창은 상속세도 증여세도 내기 싫어 자기 회사에 일가 친척들을 위장취업시키고 가짜 월급을 수백만 원씩 뿌려대던 어느 시정잡배와는 다른 사람이다. 적어도 대통령은 그들과 비슷한 사람이길 바라는 한국인들의 허위의식이 없었다면, 그는 진작에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돈이면 답니까”라는 그의 외침에 좌파들조차 뭉클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60~70대 반공주의자들의 가치를 대변하는 위인이다. 그의 구호는 햇볕정책의 전면적인 폐기를 약속하는 대북정책의 변경을 포함하고 있다. 이명박과 참여정부가 미워서 그를 지지하려는 사람들은 그 점을 상기해야 한다. 386의 분화와 20대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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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주의에 투항하지 않은 386들은 정동영과 문국현으로 갈려있다. 이들이 물신주의, 반공주의와 함께 2007년의 정치극장을 삼분하고 있는 세력이다. 삼국지로 치면 촉나라쯤 될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삼성의 돈을 먹고 한나라당보다 더 과격한 승자독식주의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이들을 향한 지지가 정치적으로 뭘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 문화적인 관점에서야 물론 386의 세대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집단적 마스터베이션이 될 게다. 문국현이 똑똑한 인물이라는 희망주의자들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문국현은 버티고 버티면 새로운 자유주의 정당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또 하나, 코리아연방제와 100만 민중대회라는 공약을 통해 “우리는 꼴통 운동권 세력이오!”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자폭해버린 권영길 후보를 언급할 수 있다. 그들은 한심하지만, 그래도 미래의 한국 정치에 필요한 요소들을 체현하고 있다. 지금은 증시로 치면 조정장이다. 주가가 떨어지면 개미들은 손을 털고 나가지만, 현명한 애널리스트들은 주가가 떨어졌을 때 오히려 투자를 하라고 가르친다. 문국현과 권영길 두 사람의 지지율은 약소할 테니, 나는 나와 같은 20대에게 차라리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보고 두 사람 중 하나에게 투표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약한 그들을 지지한 다음 나중에 뻐기면서 자신의 정치적 요구들을 그들에게 요구하라고 권하고 싶다. 2007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그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