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활하는 공간을 하나의 커다란 네트워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과반이라는 커다란 연결망(network)이 있다. 과반 안에는 수십, 수백 명의 사람(node)이 있어서 서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link)되어 있다. 사람이 많다보면 아무래도 모두가 다 친해질 수는 없는 법. 사람들은 취미 기호, 정치적 성향, 성장 배경 등이 비슷한 대로 끼리끼리 모여서 특별히 친한 그룹(circle)을 형성한다. 아, ‘끼리끼리’라는 말의 어감이 썩 좋지는 않지만 이 그룹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듯이, 같은 그룹에 속해있지 않다고 해서 꼭 나쁜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지난 3월 입학한 ㅂ군은 자신이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고 털어놓았다.A군은 처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신환회)에 왔을 때 음주문화, 여성주의, 장애인권 같은 이야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고교시절 접하지 못했던 생각을 접하고 놀란 것이다. 갑작스러움에 자신의 생각을 적립하진 못했지만, 그는 “각기 고민을 많이 한 사람들이구나” 싶어서 선배들을 조금은 존경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또 한 번 뒤집어지게 된 것은 개강을 한 후의 어느 날이었다. 어쩌다보니 남자들끼리만 남게 됐던 술자리에서 몇몇 선배들은 본색을 드러냈다. 과반의 다른 선배 한 명을 씹는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여자를 음식에 비유하는 이야기’까지 흘러갔다. “평소에도 ‘극렬한 페미니즘은 좋지 않다’고 말해온 사람들이긴 하지만 이 정도인줄은 몰랐다”는 것이 A군의 평. 그는, 어느새 그 분위기에 먼저 적응해서 A군을 마치 새내기 이끌어주듯 끌어 주는 동기 B군의 모습이 더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한숨을 쉬며 “선배들끼리도 사이가 나쁜 것 같은데 그 구도가 동기들 사이에서도 반복되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신입생 입학이라는 이 시기를 다시 네트워크의 언어를 빌려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node)에 의해 이미 긴밀하게 짜여 있는 연결망(network)에 다시 수십 명의 새로운 구성원(node)이 던져지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새로운 사람들이 대거 몰려드는 이 뻘쭘한 상황을 잘 넘기기 위해 기존 구성원들은 ‘새맞이’라는 절차를 준비하고 후배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놀라운 것은, 이런 노력들의 결과 각 그룹들이 자신의 그룹에 더 많은 구성원들을 끌어오기 위해 경쟁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아까의 사례처럼 써클들 사이에 이미 갈등이 존재할 때에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다.A군은 동아리를 찾아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 과반에 남았다는 후문이다. 그는 “그 때 만난 선배들은 은근슬쩍 피하고 있다”면서 웃었다. 넓은 네트워크에서 자기가 어디에 자리 잡아야 하는 지를 알아가는 그를 보는 것은 퍽 즐거운 일이다.사람은 자유로운 노드다. 그물망 그림(네트워크 지도)의 어딘가에 콕 박혀서 연구자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줍은 노드가 아닌 자유로운 사람! 어떤 공간에서 누구와 지내든 그것은 스스로의 ‘선택’인 것이다. 가을과 함께 어느새 다가온 개강, A군도 독자 모두들도 좋은 선택을 해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