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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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백 명의 손님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연다. 이 손님들 중 딱 한 명에게 라벨이 없는 녹색 병에 든 와인이 20년 묵은 최고급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이 정보를 새로 사귄 손님들에게만 공유하도록 했다. 이 손님은 기껏해야 두 세 사람과 대화를 나눌 것이므로 주인은 비싼 포도주가 안전하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과는? 마치 행운의 편지가 도는 것과 마찬가지다. 처음 얘기를 들은 손님은 두 세 사람의 손님에게 이 정보를 줄 것이고, 10분쯤 대화하고 다른 그룹을 찾아 간 그 손님들은 또 다른 두 세 사람에게 이 정보를 줄 것이다. 결국 한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포도주는 바닥나 버릴 것이다.’ -바라바시 저, 에서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결국 정보는 전달되게 마련’이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포도주가 한 시간을 못 버티고 바닥나듯 소문은 빠른 속도로 번져간다. 일단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그 과정을 통제하기는 몹시 어렵다. 당사자는 알려지기를 꺼리는 정보가 소문나면 문제는 더 커진다. 여러 사람의 관계가 일상적으로 뒤엉켜 있는 모임이라면 불편한 소문으로 내홍을 겪은 일이 적어도 한 번은 있을 것이다. 서울 A대에 다니는 지인 B씨가 들려준 얘기도 그런 경우다. 신입생 시절, 술을 진탕 마시고서 “수능점수가 10점만 더 나왔어도 더 좋은 학교에 갔을 것”이라고 주정을 부렸다. 그런데 그 얘기가 어찌된 영문인지 동아리에서도 흘러나왔다. 무슨 얘기냐고 직접 말을 걸어오면 변명이라도 해볼 텐데, 따가운 시선만 보내는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한동안 식은땀을 흘렸다고. “애정을 갖고 활동하다보니 문제는 해결됐지만 그땐 정말 울고 싶었다”고 B씨는 회상한다. 활발한 조직의 증거인가, 불화의 근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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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사망한 수학자 폴 에르되스. 그는 수많은 공동연구로 ‘수학자들의 허브’가 됐다. |
이러한 소문의 전달은 ‘허브’와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표현으로 바꿔보자면 ‘마당발’ 쯤 되겠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 깊이가 깊든 얕든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각종 모임에는 빠지는 일이 없다. 사람들과 만나는 횟수가 많다. 커뮤니케이션의 양이 다른 사람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이들은 여러 사람들과 만나면서 얻은 얘깃거리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풀어놓는다. 얘깃거리가 없는 조직보다는 얘깃거리가 많은 조직이 잘 돌아간다고 보면, 허브들은 조직이 침체되지 않도록 활기를 불어넣는 셈이다. 하지만 허브가 좋은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돌아다니는 정보들은 각각 성격이 다르다. 연애 이야기는 공개적으로 전해지기 보다는 폐쇄적인 경우가 많다. 특정한 사람의 단점도 대개 쉬쉬하며 전해지는 정보다. 일상 생활 속의 소소한 일화들이나 기쁜 소식이 전달되는 경우에는 앞서 말한 허브의 순기능이 잘 살아나지만 B씨의 사례에서처럼 소문이 부정적인 정보를 담고 있을 때는 다르다. 당사자와 직접 마주앉아 천천히 얘기했을 때 더 잘 풀 수 있는 문제를 더 해결하기 어렵게 키우는 셈이기 때문이다. 소문은 그 집단의 활력을 드러내는 증거일까, 아니면 사람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는 근원일까. 어느 경우든 우리가 살면서 소문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모두가 함께 즐겁기 위해서, 어떤 소식이 집단에 활력이 될 것인지, 어떤 소식이 불화를 일으킬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마당발’인 사람이라면 특히 그렇다. 또 대화는 쌍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기에, 모두들 말을 할 때 조금씩만 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야겠다. 우리 관계에서든 집단의 유지를 위해서든 꼭 필요한 내용이니 새롭지 않아 보여도 한 번 더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