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50만 남의 얘기 아니다’라는 노래가 유행한 게 2년 전. 서점에 넘쳐나는 처세술 서적은 ‘1학년 때 학점을, 2학년 때 토플을’이라며 20대들을 압박한다. 그러나 우석훈은 20대들에게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라고 주문한다. 청년실업이나 20대 비정규직 같은 문제들은 20대가 게으른 탓이 아니라며 그는 젊은이들을 위로한다. 오히려 ‘승자 독식 체제’인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겨냥한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최근 (개마고원)와 (레디앙), (생각의 나무) 등을 발간하는 동시에 꾸준히 칼럼을 집필해 오고 있다. 그가 보기에 현재 20대들이 처한 취업난은 기성세대와 20대 사이에 벌어지는 ‘세대 간 경쟁’의 결과다. 기성세대가 차지한 사회적 부는 20대들에게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 지금의 경제 상황은 수많은 20대들을 ‘월급 88만원의 비정규직’으로 전락시키는 ‘승자 독식 체제’라는 것이다.우석훈을 읽는 키워드 ① 일상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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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일에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서 만난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
‘한-미 FTA 이후 미장원이 버틸 수 있다면 식당은 비교적 걱정을 덜 수 있다. 이 경우에 포인트는, 동네 미장원이 부도심권에 생겨날 프랜차이즈형 미국 미장원에 의해서 망하는지 안 망하는지를 보면 된다. 동네 미장원이 망하지 않는다면 한-미 FTA로 인해서 도시 소상인, 예를 들면 철물점이나 세탁소가 어려워지는 일은 없을 텐데, 3년쯤 후 단골 미장원 주인이 한숨을 쉬는 걸 목격하게 된다면 자신의 가계도 슬슬 어려워지는 순간이 왔다고 생각하시라.’( 113쪽) ‘음식의 안전성은 국민경제의 차원에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불행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흐름이 3년만 계속된다면, 신토불이라는 말도 안 되는 애국심에 호소하던 정부가 ‘안전’을 위해서 수입품을 먹으라고 호소하는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정부에서 그렇게 얘기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헬기로 대량의 살충제를 뿌려댄 쌀을 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값싼 수입쌀을 먹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가계에도 보탬이 될 테니까.’(, 146~147쪽) 우석훈은 경제학의 원리를 빌려 우리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경제학 자체가 세상사는 얘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국부론’이라는 것도 인민 대중이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작한 이야기”라며 자신의 경제학이 ‘일상의 경제학’이 되도록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은 딱딱한 경제학 서적이라기보다는 말랑말랑한 에세이처럼 부담 없이 다가온다. 우석훈을 읽는 키워드 ② C급 경제학자 우석훈은 스스로를 ‘C급 경제학자’라고 부른다. 그의 구분법에 따르면 “A급 경제학자는 자기만의 이론이 구축돼 있는 사람, B급은 A급 학자의 이론을 세분화하는 사람, 그리고 C급은 그 이론을 갖고 현실에 적용해 데이터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은 “A급이 되고 싶지만 공부를 못해 C급이 된 경제학자”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러나 이 ‘C급 경제학자’라는 표현으로 우석훈이라는 경제학자의 역량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의 눈은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을 바라본다. 우석훈의 저서와 칼럼이 힘을 갖는 이유는 그의 경제학이 우리들의 현실 속에 발을 딛고 서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환경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등에서 환경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기후변화협약 정부대표단 일원으로 참가하는 등 기업과 정부, 국제기구 등에서 폭넓게 활약했다. 또한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초록정치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에서도 활발히 활동해 왔다. 기후, 생태,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활동을 통해 축적된 폭넓은 경험에서 그의 ‘일상의 경제학’이 가능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석훈을 읽는 키워드 ③ 88만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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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누군가가 20대를 대변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20대 자신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요즘 우석훈은 누구의 일상에서 경제를 이야기하고 있을까? 최근 그의 관심사는 ‘청년실업 50만’이라는 노래 가사로 대변되는 20대들의 문제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인데, 지금의 20대들은 이 88만원에서 119만원 사이를 평생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오늘날의 20대를 ‘88만원 세대’라 이름지었다. 그는 이 ‘88만원 세대’들에게 조심스레 대화를 시도한다. “10대들도 제 책을 봤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10대, 20대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자신들의 문제만이라도 알아야 하죠.” 그가 일상의 이야기를 끄집어냄으로써 독자에게 쉽게 와 닿는 책을 쓰고자 하는 것도 경제학에 낯선 10대와 20대들에게 다가가기 위함이다. 때로는 ‘개그 작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개그는 젊은 독자들에게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에서 아무런 진입 장벽 없이 20대를 환영하고 무료로 강의도 시켜주고, 집단 합숙도 시켜주는 경제 조직은 불법 다단계밖에 없다.’( 133쪽) ‘숫자를 정확하게 내기는 어렵지만 아마 국민의 30%에서 40% 정도는 한-미 FTA 이후 5년이 지나면 의료비와 보험료가 비싸져서 병원에 가기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다.(중략) 돈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것이 서럽기는 해도, 아프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다. 약초요법과 전통요법 등 ‘대체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할 수도 있다.’( 128쪽) 그가 20대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기성세대들의 것과 많이 다르다. 대기업은 대학생들에게 ‘준비된 인재가 되라’고 요구하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네 앞가림은 네가 해라’며 다그친다. 그러나 우석훈은 20대에게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라”고 외친다. 그 ‘짱돌’은 바로 20대의 정치적 역량이다. “다른 누군가가 20대를 대변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20대 자신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는 20대가 정치의 주체로 나서서 지금의 ‘승자 독식 체제’라는 구조적 모순을 타개해 나가야 함을 역설한다. 20대의 정치 참여 방법으로 그는 여러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그중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20대들의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어렵다. 때문에 차선책으로 ‘비례대표제에 20대 할당제를 도입해 20대들을 국회에 진출시키는 것’을 제시한다. “제가 말하는 ‘바리케이트’는 바로 20대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정치적 보호막이에요. 일단 바리케이트를 쳐 놓으면 그 안에 있는 20대가 좌파든 우파든 상관없어요. 다만 그들 안에서 논쟁이 오가다 보면 최소한의 해답을 찾을 수 있겠죠.” 우석훈을 읽는 키워드 ④ 명랑한 좌파 ‘명랑한 좌파’ 또는 ‘명랑한 공산주의자’ 역시 우석훈이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다. 그가 지금까지 써온 글들을 살펴보면 비정규직 문제, 환경, 지역 간 불균형 발전 등의 의제에 주목하며 파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나눠줄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 왔다. 그러나 그가 좌파 경제학자라 해서 우파 경제학과 대립하지는 않는다. “모든 학문의 본류에는 사회를 잘 만들자는 철학이 흐르고 있고, 그 위에 다양한 학파가 존재해요. 반드시 어느 것만이 맞다고 하거나 한 학파가 다른 모든 자리를 다 차지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는 좌파와 우파 경제학의 이분법을 넘어 경제학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인정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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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학문의 공간이든 여론의 장이든 ‘그 안에 100명이 있으면 100명의 목소리가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
그래서 그가 경계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성장’만을 외치는 정치담론이 주류를 점하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힘을 얻고 있는 고도성장론, 개발중심주의는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담론, 우파의 정치경제학”이라며 “우리나라에선 경제학의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화’된 어느 한 목소리만으로 편향되게 흐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학문의 획일화”를 우려하는 것이다. “100명을 모아 놓으면 100개의 목소리가 나와야 해요. 그 100명의 목소리 중에서 대안을 찾는 것이 사회가 나아갈 길이죠. 그런데 지금은 100명이 있어도 한 명이 있는 것과 똑같아요.” 그는 경제학을 비롯해 모든 학문 영역, 나아가 공론의 장에서까지 ‘100명의 목소리’가 공존하기를 원한다. 우석훈이 말하는 ‘지식인’이란 현재 우석훈은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라 이름 붙여진 사회비평 시리즈 중 세 번째 편을 집필하고 있다. 첫 번째 편은 청년실업과 20대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 두 번째 편은 한국 기업 내부의 문제를 진단한 이다. 이제 세 번째 편은 북한 문제, 마지막 편은 오늘날 경제학의 대안이론을 다룰 계획이다. 각 편마다 초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은 ‘희망의 경제학’이다. 그에게 있어 학자는 “그 시대에 그 사회에서 해야 하는 ‘임무’를 다 하는 사람”이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은 것이죠. 모든 학문은 존재 이유가 있고 학자도 존재 이유가 있는데, 그것에 충실하면 되는 거예요.” 그는 경제학자로서 묵묵하게, 하지만 굳건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 하려 한다. ‘승자 독식 체제’를 타개해 나갈 20대에게는 짱돌을 쥐어주면서, 자신은 “중무장이라도 하겠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우석훈. 그가 그려나갈 ‘희망’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