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첫 주말의 토요일 오전, 지하철 외판원 취재를 위해 기자는 사람들이 많은 동대문 역에서 1호선과 의정부북부행 열차에 올랐다. 현장 사진을 담기 위해서는 열차 안에서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운 좋게도 무릎 보호대를 파는 아저씨를 금방 보게 됐다. 그런데 아저씨는 주말 오후라 열차 안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도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우렁찬 목소리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도 잘 팔릴지 알 수 없는데 저런 목소리로 얼마나 팔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은 목이 망가지면 며칠을 쉬어야 하기 때문에 목이 아플 땐 적당히 컨디션을 조절한다고 한다. 여하튼 아저씨는 회기 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향했고 기자도 그 뒤를 따랐다. 역 출구에서 200미터 쯤 떨어진 건물 앞에 앉아 그날 수입을 계산하는 아저씨의 오른손을 보고 기자는 흠칫 놀랐다. 의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푼 안 되는 돈을 세는데도 힘겨워 보였다. 아저씨는 그 건물의 지하로 들어갔다. 그곳이 아저씨의 물건 공급처였다. 입구에는 간판도 없었다. 며칠 후 이곳을 다시 찾아가가 서울대저널 기자라고 소개하며 인사드렸더니 ‘기자’라는 말에 경계하는 눈빛으로 기자가 무슨 일로 왔느냐고 조금은 퉁명스럽게 물어 보셨다. 이미 몇 차례 취재 경험이 있는데 그 때마다 방송에 나가지 않는다고 안심시킨 뒤 촬영해 놓고는 번번이 속으셨단다. 방송에 나가면 단속이 더 심해지기 때문에 기자들을 싫어할 수 밖에 없노라고. 외부에 나가는게 아니라 대학교 학생들이 만드는, 학생들이 보는 월간지라고 말씀드리며 명함을 드렸더니 그제서야 조금은 안심하셨다. 하지만 절대 사무실 내부와 사람 사진은 찍을 수 없다고 강하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아쉬운대로 그냥 요즘 제일 잘 나간다는 인기상품 두 가지만을 찍어 오는데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준비해 온 음료수도 드리고 학생 신분임을 강조하면서 서글서글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더니 조금씩 마음을 열어 주셨다.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다들 계속해서 다음날 팔 물건을 정리하시면서도 이것저것 내가 묻는 질문에 성심으로 답변 해 주셨다. 한 아주머니는 “일부러 지갑을 뒤적이고 돈을 꺼내어 물건을 구입하려는 척 할때 내가 앞으로 가면 얼른 지갑을 주머니에 도로 넣는 사람들 만날 때가 가장 민망하다”라고 말씀하셨다. 또 술 취해서 괜히 가방 차고 물건 던지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는 말씀, 얼마나 벌지도 못하는데 단속은 너무 매정하다는 말씀, 그리고 지하철에서 물건 파는 장사치들은 이것저것 다 해보고 가장 마지막에 택하는 밑바닥 인생이라는 말씀까지. 안타까운 푸념들을 줄줄이 내뱉으셨다. 그리고 한 마디 부탁의 말씀도 하셨다. “학생은 서울대 생이니까 나중에 정치해서 서민들 먹고 사는 것 좀 잘 되게 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