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이 글은 환경의 ‘환’자도 모르는 어리버리 아마추어의 뜬금없는 ‘해안사구’에 대한 글이오니 전문적인 환경분야 글을 기대한 분, 심장이 약한 분, 눈이 피로하신 분 등은 읽기를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관련 학과 학부생임에도 불구하고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물음에 대입면접용 대답 정도밖에 하지 못했던 필자. 환경문제 이슈는 초등학교 때도 빠짐없이 교과서에 나왔던 것 같은데, 관련 단체라고는 ‘그린피스’밖에 알지 못했던 필자. 이 무식한 필자가 과 답사에 가면서 해안사구에 대한 르포를 쓰겠다고 했을 때, 주위엔 “그게 뭔데? 너무 뜬금없는 얘기 아냐?”와 “잘 알지도 못하는 학부생이 잘 쓸 수 있겠어?”의 반응이 공존했다. 어쨌든 필자의 장기인 ‘선무당이 사람 잡는’ 심정으로, 펜과 카메라를 들고 답사 장소인 태안반도로 향했다. 그 이름도 예쁜 천연기념물, ‘신두리 해안사구‘ photo1‘해안사구’라는 주제로 처음 발을 디딘 장소는 바로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 이곳은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에 있는 곳으로, 해안사구가 방송을 타며 사람들 입에 활발히 오르내리기 시작한 2001년도에 천연기념물 431호로 지정되었다. ‘이렇게 거대한 천연기념물이 다 있네’ 하면서, 바닷가에 그림같이 지어놓은 펜션들을 지나 조금 들어가다 보니 서너 개의 표지판들이 보였다. 하나는 문화재청에서 세운 신두리 해안사구 훼손 금지를 말하는 경고문이고, 다른 하나는 해안사구를 설명하는 표지판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에 띄었던 것은 ‘해당 토지주 연대’에서 세운 노랗고 커다란 또 다른 ‘경고문’. “사유 재산권 통행진입 통제하지 마라!… 우리나라에는 외국인에게도, 이완용에게도 재산권이 보장되고 있다!”는 내용의 이 경고문은, 천연기념물 지정 이후 계속된 해당 토지주와 문화재청 간의 마찰을 그래도 보여줬다. 해안사구의 중요성을 진작 발견한 미국에서는 사구 안에 발을 들여놓으면 우리나라 돈으로 100만원이 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또 해당 토지주들은 콘크리트, 시멘트가 아닌 나무 등의 자연 소재로만 구조물을 지을 수 있다. ‘이완용에게도 보장됐던 것’이 많은 부분 통제됨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 주민들의 협조가 지켜지고 있는 것은, 그들에게 해안사구는 바닷가에 놀러 와 불 지피고 놀다가는 그냥 모래언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놈의 해안사구는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 녀석일까? 불지피고 놀다가는 ‘그냥’ 모래언덕이 아니라니까 photo2해안사구는 모래사장에 쌓인 미세한 모래가 바닷바람에 날려 육지 쪽으로 불어오다가 쌓여 언덕을 이룬 것이다. 그렇다고 전갈이 사는 사막의 모래 언덕만 생각하는 건 해안사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자연적인 해안사구에는 해당화, 달맞이꽃 등 아름다운 식물들이 자라고, 모래거저리, 순비기나무 등은 아예 대놓고 사구에서만 서식한다. 또 해안사구가 크게 발달한 곳에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기도 한다. 혹시 애인과 함께 바닷가 바로 뒤에 소나무 숲을 지나는데 고운 모래들이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게 했다면, 바로 해안사구 위에 서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낭만적인 데이트 장소를 제공했던 해안사구는 그 자연적 기능으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해안사구 기능을 자랑하려면 거짓말 조금 보태 한도 끝도 없지만, 지면 한계 상 몇 가지만 말하려 한다. 알다시피 이 녀석은 해안 모래의 저장 창고이다. 우리가 유리를 만든답시고 부지런히 파냈던 바닷가 모래, 왠지 파내고 파내도 계속 나올 것 같은 모래의 출처가 바로 해안사구인 것이다. 그런데 해안사구만 딱 떼어서 띄워주려니 다른 해안 요소들이 좀 서운해 할 것 같다. 왜냐면 해안사구는 해안시스템의 유기적 요소 중 ‘하나’로, 종아리와 장딴지 사이의 무릎, 손목과 팔뚝 사이의 팔꿈치 정도 격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해안사구는 다른 요소들과 밀접한 연계를 이루며 해안시스템을 꾸린다. 모래사장에서 날라 온 모래를 저장해놨다가 태풍으로 사장이 홀쭉해지면 저장한 모래를 다시 공급해 해안시스템을 유지하고, 우락부락 밀려오는 태풍과 해일 등의 큰 에너지를 완충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해안의 일부인 해안사구를 콘크리트, 돌로 이뤄진 거대한 ‘옹벽’으로 뚝 막은 게 상상이 되는가? 안 된다면 조금 힌트를 주겠다. 혹시 바닷가에 시멘트로 잘 발라놓은 길에다 주차하고 뚜벅뚜벅 계단 몇 개 내려가 모래사장에 닿아봤는가? 아슬아슬 바닷가에 난 도로 위로 달리는 멋진 스포츠카가 등장한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혹시’ 있다면, 당신은 바다와 육지가 있는 한 한번도 쉼 없이 순환했던 해빈과 해안사구 사이에 뚝 하니 세워놓은 두터운 인공 옹벽을 경험한 것이다. 해안사구 밑에 ‘맑고 맑은 옹달샘’이? 해안사구의 또 다른 주요 기능은 바로 지하수의 보호이다. 바닷가에 웬 지하수 얘기냐고? 사구는 모래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빗물이 잘 스며들고, 이 빗물은 사구 아래에 저장된다. 이 지하수는 땅속에서 바다와 맞닿게 되지만, 밀도 차이로 인해 경계선을 이룬 채 서로 섞이지 않게 된다. 즉, 사구 아래에 커다란 지하수 덩어리는 바닷물과의 ‘밀도 차이’라는 ‘과학적’ 합의 하에 짠물과 섞이지 않은 채 유지되는 것이다. 실제 네덜란드 해안가에는 해안사구 시스템을 이용해 깨끗한 물을 제공하는 정수회사가 존재한다. 사구가 클수록 더 많은 지하수가 저장되고, 이 지하수는 인근 마을의 주요 식수원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곳곳에서 모래를 무차별적으로 퍼가 사구가 파괴되면서 이 자연적 합의가 무너진 곳이 많다. 밀도 차이로 지하수를 넘지 못했던 바닷물은, 해안사구 파괴로 저장량이 줄어든 사구 밑 지하로 스며들어 남아있는 지하수를 짜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대대로 농수, 식수로 사용하던 지하 민물을 몇 년 사이에 잃고, 다른 마을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해안가 마을도 등장하게 됐다. 지킬 건 지키는 바닷물과 지하수 사이의 원칙을, 지킬 걸 지킬 줄 모르는 인간들이 산산조각 낸 것이다. 폭탄 맞은 시멘트 폐허, 장곡사구 photo3신두리 해안사구는 다행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98만여 평 면적의 모래언덕을 그나마 잘 보존하고 있다. 하지만 해안사구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모래 채취 및 옹벽 등의 인공 구조물 설치로 인해 파괴된 곳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장곡사구이다. 필자가 찾은 장곡사구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폭탄 맞은 폐허’였다. 마치 폭탄을 맞은 듯, 해안시스템을 막고 있는 거대한 인공구조물들은 무너져 내려앉아 있었다. 큰 돌을 시멘트로 발라 세운 옹벽은 여기 저기 흉한 구멍을 낸 채 부서져 있었으니, 그 위에 다져놓은 도로의 상태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것이다. 부드러운 모래와 달리 딱딱한 옹벽은, 바다로부터의 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하면서 깨지고 무너진 것이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모래 위에다가 옹벽을 쌓고 닦아 놓은 도로는 애초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그림이었다. 모래의 장기적 이동을 보기보단 당장의 해안 침식을 막아보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해안 한가운데 시멘트로 발라놓은 옹벽은, 고운 모래사장을 자갈밭으로 만들고 해안에 더 큰 침식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시원하게 뚫린 해안가 도로의 스포츠카는, 자연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의 정책이 낳은 폭탄 맞은 ‘명장면’을 남기게 됐다. ‘자연’ 꽃 박람회 주차장에 묻힌 꽃지 해안사구 photo4장곡 사구의 무너진 인공 구조물을 눈에 잘 넣은 후 찾은 곳은 바로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이었다. 이곳은 예전부터 충청남도가 한국유리와 맺은 계약으로 대다수의 해안사구의 모래를 부지런히도 퍼갔다. 근처 슈퍼에서 만난 마을 분 얘길 들어보니, 예전엔 사구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이곳 상징인 할매, 할아비 바위가 이젠 훤히 보이게 됐을 정도. 그렇게 해서 깎아진 해안사구 터에 시원하게 콘크리트로 넓은 터를 닦아 ‘안면도 꽃박람회’장을 만들었다. 해당화가 아름답게 핀다는 해안사구를 옹벽으로 막고 밀어버린 후, 그 위에 꽃박람회장을 지어 ‘이곳저곳’에서 ‘무슨무슨’ 꽃들을 가져와 전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꽃지 해수욕장의 관광 개발은 앞에서 언급한, 해안사구 기능 파괴 시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꽃지 해수욕장 근처에 조그마한 항구 방포항에는, 해안옹벽, 방파제 등 인공 구조물로 인해 내륙과 순환하지 못한 모래들이 상당 부분 쌓여있었다. 또 해수욕장 뒤쪽에 동답마을은, 해안사구 파괴로 인한 지하수 염류화로 더 이상 마을의 식수를 사구로부터 공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동답마을은 도에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십시일반 마을 사람들의 돈을 모아 이웃마을에서 식수를 끌어다 쓰고 있었다. ‘꽃과 바다의 만남’을 강조하는 안면도 꽃박람회장의 매끈한 시멘트 포장 뒤에는 주변 환경의 파괴와 주민들의 고통이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이다. 사구소생대작전, 안면해수욕장의 사구 살리기 장곡사구 인공 옹벽의 무너진 모습, 꽃지해수욕장 사구 파괴로 인한 지하수의 염류화. 학문적 지식이 거의 없는 필자의 눈으로 보더라도 해안 시스템의 듬직한 언덕인 해안사구를 막고 깎아냈을 때 일어나는 현상들은 충분히 심각했다. 때문에 근래 해안사구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도 알려지면서 학계는 물론 지역주민, 환경단체에서 해안사구의 의미 알리기에 나선 것은 필자의 눈에도 반가운 일이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신두리 해안사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될 수 있었고, 또 사구가 파괴된 지역 중 사구를 소생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 중인 곳도 있었다. 충남 안면해수욕장이 바로 그러한 곳인데, 이 곳에 가면 신기한 구조물을 발견할 수 있다. 모래사장 안쪽으로 해안을 따라 쭉 늘어서있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촘촘한 울타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자연적 소재를 이용해 모래사장에서 날라 온 모래를 잡아 쌓이게 하는 ‘모래 포집기’로 해안사구를 복원하기 위해 안면해수욕장에 설치돼있다. 안면해수욕장 포집기 근처에는 해안사구의 기능과 포집기의 역할을 소개하는 표지판들이 설치돼있어,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바다의 경치와 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한 인식 기회도 제공하고 있었다. photo5태안반도, 안면도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창에 한번 찔린 사구, 두 번 찔린 사구, 찔린 후 반창고 붙인 사구, 찔리기 전에 방패로 막은 사구 등 다양한 녀석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비록 선무당이긴 했지만 경험의 힘은 역시 무서운 것. 처음에 신두리 해안사구에 갈 때 봤던 그림같은 펜션들이 이제 그림으로 안보이니 말이다. 아까부터 선무당 선무당 했는데, ‘모래언덕 있으니 파내고 시멘트로 담 쌓고’ 했던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이번에 제대로 선무당이 ‘진짜’ 사람 잡을 수도 있음을 몸소 느꼈다. 언제나 그렇듯 후회는 늦은 법, 하지만 너무나도 마음 넓고 관대한 자연은, 선무당이 어서 ‘선’자를 떼기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