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세상이 시끄러운 때에는 아무도 없는 산 속에 틀어박혀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든다. 얼마 전 일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께서 뉴스를 시청하고 계셨다. 뉴스에서는 한창 인천시장의 돈 거래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루종일 사람과 자동차에 치인 와중에 어찌나 뉴스 소리가 듣기 싫던지… “나, 딱 한 달만 산 속 암자에 틀어박혀 살까봐.” 사람 소리, 차 소리, 기계 소리 다 싫다는 딸의 푸념에 아버지는 ‘시시껍절’한 소리하지 말라고 대답을 일축해 버리셨지만 요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뉴스만 틀면 정치인들은 여전히 자기들끼리 왕왕거리고 나날이 악화되는 경기침체 속에 서민들은 땅을 친다. 하늘에서는 테러에 대비한답시고 헬리콥터가 웅웅거리고 땅에서는 고교등급제 여파로 아우성이다. 장자(莊子)의 사상은 요즘과 같은 이런 시끄러운 세상에서 탄생하였다.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에 현실을 부정하고 진정한 정신과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면서 노장사상이 시작되었다. 장자는 잠시 관영에서 일한 적도 있었지만 그 후 평생 벼슬길에 들지 않았다. 초(楚)나라의 위왕(威王)이 그를 재상으로 맞아들이려 하였으나 장자는 이마저 사양하였다.장자는 일정한 시대 ·지역 ·교육에 의하여 형성되고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인간의 마음을 인위(人爲)라고 하였는데 인위는 자연(自然)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인위를 부정하였다.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하여 학의 다리를 잘라서 붙여주면 그들 모두를 해치게 된다는 이야기는 장자의 인위 부정 사상을 대표하는 고사이다. 장자는 또한 절대적인 도(道)도 부정하였다. ‘도를 도라 명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닌 것(道可道名 , 非常道)’이기 때문에 우언(寓言)과 비유를 사용하여 그의 도(道)를 설법하였다.이러한 사상들을 바탕으로 하여 장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절대적인 경지의 자유였다. 그는 인위적인 기준과 판단을 없애고 무위자연(無爲自然)에 복귀한 상태를 ‘절대적인 자유’로 보았다. 장자의 자유는 편견과 차별을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그 빛을 발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이러한 자유가 지나치게 탈속적이라는데에 있다. 장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위적인 것을 부정했으므로 인간이 만든 일체의 사회규범, 제도를 모두 거부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 인간의 집단인 사회를 부정함으로써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장자 사상의 함정으로 볼 수도 있다. 난데없이 장자 사상을 끄집어낸 것은 장자처럼 세상을 등지고 살아보자는 의미가 아니었다. 장자 사상이 이 사회의 병폐를 수 있는 대안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리저리 들쑤시는 한국사회에 회의감이 느껴져 잠시나마 사회를 떠나있고 싶은 충동에서 장자가 스쳐갔던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온 몸이 병들어 있다.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들이 서로 말꼬리 잡는 거야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손 치더라도, 서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어려워하고 그런 서민들은 제쳐두고 사과상자나 실어 나르고 탁상공론이나 벌이는 정경이 지금의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누가 이런 사회에서 살고싶어 하겠는가? 최근 20~30대의 젊은 층에서 대거 ‘탈(脫)한국’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는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취업난으로 인해 한국 땅이 얼마나 살기 어려워지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문제의 개선방법을 고려하기보다 장자라는 극단적 사상까지 끌고 나온 내 자신이 안타깝고 상황이 안쓰러울 따름이다.지금 한국 땅에서는 신(新)한국판 장자가 되고픈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사회를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분명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상상이 발동한다. 만약 장자가 2004년 대한민국 땅에 살고 있다면 어떨까?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용케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처럼 익숙함에 물든 채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 언덕 위의 하얀 집에 갇히거나, 다리 위로 올라가거나, 가장 무난한 경우로는 서울역에서 배회하는 노숙자가 돼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