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아직 중간 점검을 하기엔 이른 기간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4년간의 임기 동안(물론 임기를 다 채운다는 전제하에) 정운찬 총장이 그릴 그림의 대체적인 외곽선이 드러난 기간이 바로 지난 1년이었다. 정운찬 총장이 1년간 그린 서울대의 중간 평가 중에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학내 운영 체제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 특히 그가 전부터 강조한 ‘민주적 의사 결정’이 이기준 전 총장의 독단적 행동과 대조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는 점에서 정운찬 총장 취임 후 학내 운영 체제의 변화 내용은 주목할 만하다. 무엇이 바뀌었나? 기존의 학내 운영 체제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충분치 않았고, 의사수렴기구 또한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못했다. 대학의 발전과 교육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설치된 평의원회 또한 대의기능 수행에 있어서 제한적이었다. ‘2002-2011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안’에서도 이에 대하여 ‘평의원회는 본질과 성격상 총장의 자문기구로서 심의 권한이 제한적이고… 평의원회의 역할에 대한 인지와 권한 행사의 의지가 부족하여 대체로 형식만을 갖춘 기구가 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이와 같은 평의원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정운찬 총장의 ‘공약’이라는 탄력을 받아 총장 취임 1년 만에 심의 기구에서 심의?의결 기구로 발전하게 되었다. 의결기구로써 권한이 강화된 평의원회는 △교육 및 학사운영의 기본 방침 △대학(원) 또는 부속시설의 설치와 폐지 △대학의 중장기 발전계획 △학부, 학과의 설치와 폐지 △교원인사의 기본 방침 등의 결정권한을 총장으로부터 넘겨받아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 평의원회에서 의결한 사안에 대해서 총장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2/3 이상의 의원이 기존 의결사항을 고수할시 그 사안은 통과된다. 평의원수는 기존의 40인 이내에서 50인 이상 100인 이내로 늘어났으며, 총장이 임명 가능한 학외인사 비율은 기존의 1/2에서 1/4로 줄어들었다. 또 총장선거에 관해서 평의원회 주도로 50인 이내의 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총장후보추천위원회 내에 평의원은 1/4까지만 참여할 수 있게 하여 총장후보추천에서 평의원회의 독선을 막도록 하였으며 상설기구인 평의원회가 총장후보추천을 맡게 됨에 따라 추천위원회 구성 때부터 사실상 선거운동이 시작됐던 선거 과열 현상은 다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더불어 총장선거 투표방식을 ‘1인 1표제’로 바꿈으로써 기존 ‘1인 2표제’일 때 한 표는 지지후보에게, 나머지 한 표는 경쟁 상대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제3의 다른 후보에게 던지던 잘못된 관행도 사라지게 된다. 평의원회의 의결 기구화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정운찬 총장 취임 이후 교수들은 학내 운영 체제에 대해 전보다 민주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있고, 총장과 교수들 간의 의사 소통도 원활해졌다고 평하고 있다. But 1. – 아직은 미완성이다 단순 심의 기구에서 심의·의결기구로 발전한 평의원회로 총장 1인의 독선이 견제됨으로써 학내 의사결정 체제가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 ‘민주적’인 운영체제를 그리기에는 이르다. 먼저 개정안을 통해 평의원회에 주어진 의결권 행사에 관한 상이 다소 모호하다. 또 의결된 사항을 집행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할 예산 운용 및 결산에 관한 사안은 여전히 총장이 의결권을 쥐고 있다. 이로 인해 평의원회가 이번 개정을 통해 갖게 되는 의결권이 학내 운영에 있어 ‘실질적’ 영향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이에 대하여 이태수 인문대 학장은 “평의원회의 의결기구화가 교내 운영 체제에서 민주적 분위기를 고양시키는 데에는 큰 의미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는 아직 두고 봐야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산 운용 및 결산에 관한 의결권은 고등교육법과 서울대학교 설치령 등 상위법에 총장 고유의 권한으로 명시돼 있어 평의원회가 학내 의결 과정에서 실질적 ‘돈줄’을 쥘 수는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의결기구로 발전한 평의원회가 학내 운영 체제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질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But 2. – 민주적으로 발전했다고는 하나… 평의원회의 의결기구화가 학내 운영 체제의 민주적 발전을 도모했다고는 하나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문제가 남아있다. 예전부터 학내 사안을 다루던 ‘교수들만’의 평의원회를 더 ‘많은’ 교수들이 더 ‘강한’ 영향력을 갖는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학칙 개정 후에도 여전히 직접적인 의결권을 갖지 못하는 직원과 학생, 조교, 강사 등 교수를 제외한 학내 구성원들은 이번 학칙 개정을 통한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서울대공무원직장협의회(이하 공직협)에서는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학내 의결 사안을 공유하기 위한 단계로 직원들의 총장선출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직협 회장 노근숙씨는 ‘이번 총장후보추천에 관한 규정 개정에 대학 구성원(교수, 직원, 학생 등)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다시 모색하여 주시기 바라며, 대학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면 전체 구성원들을 설득하여 동의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통해 총장선출에 학내 구성원들의 참여를 촉구했다. 공직협 홍보실장 배진수씨도 “학내 민주적 발전을 위해서는 교수, 직원, 학생 중 ‘어느 곳은 전체, 반면 어느 곳은 소수’가 아닌 구성원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며 학내 구성원들의 ‘동등한’ 입장을 강조했다. 또 총학생회장 박경렬씨는 “민주적인 학내 운영체제를 위해서 평의원회에 학내 동등한 주체인 학생이 1/3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학생참여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학내 의결권에 대한 구성원들의 참여 욕구에 대한 교수들의 입장은 대체로 닫혀있다. 먼저 정운찬 총장 자신도 학생들의 학내 운영 참여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여러번 내비쳤다. 또 교내 교수 6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직원들의 총장 선출 참여’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약 19%만이 이에 긍정적 입장을 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상 총장 선출에 관한 권한은 교수 외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주어지기 어려우나 대다수의 교수가 이에 합의를 한다면 직원, 학생들도 총장 선출에 참여할 수 있다. 즉 총장 선출에 학내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하기 위해서는 법을 바꾸든지 아니면 현재 투표권을 갖고 있는 교수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든지 해야 한다. 실제 지방 국공립대학교들 중에는 직원들의 투쟁 하에 제한적이나마 총장선출권을 공유할 수 있게 된 곳도 있다. 부산대의 경우 지난 총장 선거에 직원들이 1차 투표 때 30, 2차 6, 3차 1명의 투표권을 갖게 되었으며, 강릉대는 다음 선거부터 직원 대표 3인, 총동창회·기성회·총학생회 각 1인 등 6인에게 1차 투표 선거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고, 직원 등의 학내 구성원들에게 부여된 투표권도 상징적인 의미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짜’ 민주적 운영체제를 위하여… 이번 개정 학칙에서 민주적 학내 운영체제를 위한 정운찬 총장의 노력을 엿볼 수는 있으나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이번에 의결권이 부여된 평의원회가 어떤 역할을 할지도 불분명하고 직원, 학생 등의 학내 다양한 구성원의 의사 수렴에 관한 제도적 장치도 부족하다. 평의원회 산하에 특별 위원회의 형태로 직원, 학생 등 교수 외 다른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을 위한 노력을 계획하고 있다고는 하나 이것이 단순히 학내 민주적 의사수렴 방식을 ‘보여주기’위한 수단으로 머물 염려도 있다. 앞으로의 민주적 학내 운영체제 수립을 위해 기억해야 할 점은 민주적 의견 수렴 절차가 기본이 되면 결정의 정당성이 확보되고, 집행 상 반대 의사에 부딪혀 겪는 애로도 해소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적 의사결정은 결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반(反)하는 것이 아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지난 1년간 정운찬 총장이 그린 서울대의 모습은 앞으로 임기 간 그가 그리게 될 그림의 밑그림이 될 것이다. 앞으로 그가 채워나갈 그림이 ‘진짜’ 민주적인 의사수렴 및 운영으로 모든 학내 구성원들이 웃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