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트릭스 2’를 패러디한 화려한 포스터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라는 당찬 문구. 바로 생활 협동조합(이하 생협)학생위원회(http://snucoop.jinbo.net)가 주관한 ‘2003년도 식당 체험 활동(이하 식당활동)’을 알리는 홍보물이었다. 평소 라면끓이기 말고는 할줄 아는 요리가 없는 나에게 식당활동은 무한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하얀 요리사 모자를 쓰고 식당 요리사 옆에서 열심히 요리를 연마하는 정말 대책 없이 철없는 상상을 하면서 조심히 생협 부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기요, 식당활동 참여하고 싶어서 그러는데요…….’ 식당활동을 신청했다는 내 얘기를 듣고 한 선배는 ‘식당활동 하면 맛있는거 많이 먹게 될 거야.’라며 나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다. 정말…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을 경험하게 될까? 그리고 ‘그 이상’은 무엇일까?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 두건을 묶고, ‘아자’ 신청을 늦게 한 관계로 7월 21일부터 25일까지 전일 참여하지는 못했다. 식당활동을 위해 보건증이 있어야 하는데 보건소에서 몇 가지 검사 후 보건증을 발급받는데 5일이나 걸리기 때문이었다. (보건소 핑계를 댔지만, 사실 게으름부리다 늦게 신청한 ‘명백한’ 나의 잘못이었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 25일 금요일에 전일 참여하기로 했다. 내가 하루 동안 식당 노동자분들의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게 될 장소는 바로 학생회관(이하 학관)! 아침 9시까지 오라고 했지만 설레는 마음에 급히 준비하다 보니 조금 일찍 도착한 모양이었다. 아직 식당활동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친절하게 안내해주시는 아주머니와 함께 얘기하면서 학관 지하 준비실에 이르자 어색한 감정이 싹 사라져버렸다.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 두건을 묶고 ‘아자’ 한번 해보자! 조금 뒤에 합류한 3명의 다른 학생들과 함께 처음 맡게 된 임무는 다름 아닌… 야채 다듬기였다. 처음부터 국자 들고 국의 간을 보는 장면을 상상했던지라 조금은 실망스러운 임무였다. 하지만 실망할 겨를도 없이 이내 칼을 잡아야 했다. 눈앞에 쌓여있는 양파, 파, 무우, 감자 등등을 보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만만하게 보았는데 야채 다듬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까 첫 임무로 ‘감히’ 요리를 맡지 못한 실망감은 어느새 쑥 들어가버렸다. 아주머니의 숙달된 손놀림을 부단히 흉내내보며 열심히 감자를 깎고 파를 다듬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요령이 생기고, 옆에 계신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눌 여유도 생겼다. 딱 우리 또래의 자식들을 두셨다는 아주머니는 우리가 모두 아들, 딸처럼 느껴지신다며 “요새 학생들답지 않게 이렇게 봉사활동도 하려고 하고 참 기특하네”하시며 웃으셨다. 순간 마음이 쿡 찔렸다. 방학동안 계절수업이다 영어 공부다 이런 저런 핑계로 자원봉사활동은커녕, 이번 식당활동도 내 게으름으로 인해 마지막 날 하루밖에 참여하지 않은 나였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칼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 많은 흙덩이 감자들이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쌓아졌다. 11시 20분쯤 우리는 지하 식당에서 1층으로 올라가 미리 점심을 먹었다. 학생들이 밥 먹는 시간에 제일 바쁘신 이곳 분들은 점심시간을 전후로 교대로 식사를 하신다. 특히 학관 식당은 A,B,C 세 곳에서 각기 다른 메뉴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곳보다 직원 수도 많을 뿐더러 분주한 분위기이다. ‘식당활동을 하면 맛있는걸 잔뜩 먹는다’는 선배의 농담스런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A,B,C 세 곳의 메뉴 중 먹고 싶은 반찬들 가져와서 먹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 저것 맛있는 반찬들을 먹고 싶은 만큼 퍼가지고는 배식대 뒤에 조그마한 식사 공간에 앉았다. ‘여기 일하시는 분들은 만날 맛있는거 많이 드시겠다’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는데 아주머니 분들은 되려 고기 반찬이며 치킨 샐러드 등을 우리한테 밀어주신다. 한 아주머니는 밥에 물을 말으시며 열무김치를 찾으신다. ‘여기 일은 밥심이니까 많이 먹어야혀’ 하시는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소박함과 고단함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맛있게 드세요!”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배식대와 설거지하는 곳에 나눠 배정됐다. 나는 처음에 메뉴 B쪽에 국 배식을 맡게 됐다. 콩나물국을 푸는데 아무리 커다란 국자를 휘저어도 뜨거운 김만 올라오지 국물과 건더기가 적절하게 조합되어 올라오지 않았다. 국푸는 일 하나부터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당황한 나를 보고 지난 몇일 간 식당활동 경험이 있는 한 선배가 국자를 쥐셨다. 경험에 의한 요령은 참 대단한 것! 한 그릇 한 그릇 잘 푸시는 선배께 ‘제가 다시 해볼께요’ 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배식대 앞에 줄줄이 학생들이 식권을 들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국푸기를 포기하고 C배식대의 반찬 놓는 곳으로 옮겨갔다. 가지런히 담은 반찬을 앞에 놓으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오늘 이 배식대를 지나는 모두에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맛있게 드세요‘라고 큰소리로 말해야지! 처음엔 약간 쑥쓰러운 생각이 들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몇 번 하다보니 목소리 톤도 잡히고 말투에도 요령이 생겼다.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맛있게 드세요!” 배식 받는 사람들에게 맛있게 먹으라는 인사를 한 뒤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극단적으로 두가지였다. 즐거움 or 무안함. 나의 인사를 받고 눈을 마주치며 대답 인사를 들려주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고 반찬을 푸는 내 손에도 힘이 들어가지만, 인사를 들은 척 만척 무시라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무안함을 어찌할바 몰라 당혹스러웠다. 그러한 나에게 옆에서 밥을 푸시던 아주머니께서 “봐봐. 식사하는 학생들이 그냥 지나가버리면 좀 그렇지? 모두 다 사람끼린데, 반찬 가져가면서 함께 인사하면 얼마나 좋아.”고 말씀하셨다. 앞에서 음식 퍼주는 사람을 그냥 기계다루듯 지나치며 쌀쌀맞게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서운함을 금치 못했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 맞대며 하는 일인데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 나누는 것이 반찬 집어가는것보다 어려운 일일까. “서로 조금만 이해해줬으면…” 이곳 학관에서 일하시고 계시는 아주머니, 요리사, 영양사 등의 직원들은 무려 50명이 넘는다. 20년이 넘게 이곳 식당에서 일하신 아주머니도 계시다는 말씀을 듣고는 입이 떡 벌어졌다. 이렇게 많은 직원들이 학생들의 ‘식(食)’과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 학생들과 접점이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전에 한 학생이 인터넷 게시판에 학관 식당에 대한 불평을 올려놓았을 때 많은 직원 분들이 놀라셨다고 한다. 그 얘기를 하시며 한 아주머니는 “그 학생이 그렇게 느꼈다니 참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우리들도 최대한 학생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서로 조금만 이해해줬으면…”하셨다. 밖에서 배식만 받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이곳 분들은 최대한 위생적으로, 최대한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노력하신다.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식사를 먹는 사람 모두 서로를 배려하며 조금만 더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생각을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즐겁고 맛있는 식당의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까. 점심 배식을 마치고 다시 지하에 내려가서 야채를 다듬었다. 분업화된 작업 분배에 한시 바삐 식사 준비를 해야하는 식당에서는 아직 칼질하나 제대로 할줄 모르는 우리 풋내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하긴, 나름대로 요령을 터득했다 해도 아직 야채다듬는 솜씨는 오랫동안 여기서 일하신 아주머니들에 비하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격이 되니 말이다. 야채를 다듬다가 잠깐 짬을 내어 기사를 위해 사진 한 장 찍고 싶다고 했더니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들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버리신다. 사진 찍는게 쑥쓰러우시다며 웃으신다. 하루 종일 힘든 육체노동에 결코 많지 않은 월급에도 밝은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소박한 아주머니들 모습에 나도 그냥 웃어버렸다. 사진을 찍어야 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상황이지만. 어쨌든 강경하게 거부(?)하시는 아주머니들 때문에 나는 그분들의 고개 돌리신 모습을 찍는 것에 만족해야했다. 오후 4시쯤 설거지 하는 곳에서 일하던 학생과 함께 이른 저녁을 먹었다. 얼굴이 번지르하게 땀에 젖어있는걸 보니 설거지 일이 어지간히 힘들었나 보다. 그 학생은 힘드냐는 나의 물음에 ‘일할수록 몸은 좀 힘들지만 식당 노동자분들과 함께 해갈수록 마음은 참 즐겁다’는 대답을 하고는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곧 저녁 배식이 시작되었다. 학관 식당의 저녁은 오후 5시까지 점심을 제공하는 C배식대를 제외한 A,B배식대에서 준비한다. 점심 배식 이후로 하루 종일 입가에 맴돌았던 “안녕하세요! 맛있게 드세요!”를 다시 한번 즐거운 마음으로 외쳤다. 배식받다가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란 내 친구는 배식하고 있는 내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며 웃는다. 하루만이었지만 나도 이곳에 많이 익숙해진 것일까. 그렇다면 이 곳에서 20년 넘게 일하신 분은 매일 이 곳에 왔을 때 어떤 기분이 드실까. 식당활동, 새로운 연대의 모습으로… 저녁 배식을 마지막으로 저녁 7시경 나의 하루간의 식당활동체험을 마쳤다. 7월 25일은 식당활동 마지막 날이라서 생협 학생 위원회에서 준비한 노동자분들과의 뒷풀이 파티가 마련돼 있었다. 머리에 쓴 두건을 푸르고 옷을 갈아입고 식당을 나서는 내게, 저녁 일찍 먹었으니 밥 먹고 가라시며 잡으셨던 아주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학기 초 한 선배가 우리 사회 노동자분들과의 연대의 중요성을 설명해주셨을때 왠지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 연대를 통해 내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상상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평소 생활에서 ‘연대’라는 단어는 나의 초반의 기대만큼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농활을 갔을 때 의식적으로 농민분들과의 연대의 의미를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그 분들 삶의 애환을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나와 다른 세상의 사람들처럼 느껴졌던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식당활동을 통해서 그 ‘연대’의 의미를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식당활동을 통해 노동자분들과 함께 한 것은 거창하게 연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마도 식당활동이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내려갔던 농활과는 달리 오늘 점심도, 내일 저녁도 접하게 되는 나의 일상에서의 경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매일같이 식당에 가면서도 배식대 너머의 공간과 사람들에 대해서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내 모습이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진다. 배식대 뒤에서 땀흘리시는 노동자 분들은 힘든 노동 조건에도 묵묵히 생활을 위해 일하시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이시다. 내년, 올해 경험한 것 ‘그 이상’으로! 식당 노동자분들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동 현실에 대해서 자세히 알기엔 식당활동 기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참여 학생들 중 생협 학생위원회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이번 식당활동의 의미가 활동에 참여한 몇몇 학생만의 경험에 그친 이벤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다. 평소 생활에서 접하는 사람들과의 연대가 일상 밖의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앞으로 식당활동의 지속적이고 활발한 존속을 위한 고민의 중요성은 결코 작지 않다. 2003년도 식당활동, 생협 학생 위원회의 홍보 포스터대로 ‘상상한 것 그 이상’을 경험할 수 있는 뿌듯한 시간이었다. 벌써부터 내년의 올해 경험한 것 ‘그 이상’의 식당활동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