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저널은 1995년 창간이래, ‘진보를 일구는 참목소리’라는 모토를 바탕으로 학내외 다양한 사안을 기사로써 다루어 오고 있다. 물론 수많은 사건과 이슈가 존재하겠지만, 학내 사안으로서 ‘진보’라는 다소는 정치적인 타이틀에 걸 맞는 주제는 학생정치, 그 중심에 있는 학생회가 아닐까 한다. 실제로 서울대저널은 60호가 나오는 약 9년 여간, 약 30-40건의 학생 정치관련 기사를 배출했다. 학생회의 정치상 변화, 모토 변화 그리고 확대해 학생운동 자체의 관심사와 방법론 변화, 이는 곧 서울대저널의 과거와 미래를 반영한다. ‘진보를 일구는 참목소리’를 바탕으로 종합시사월간지를 표방하는 서울대저널은, 학생정치와 함께할 수 밖에 없는 긍정적의미의 “태생적 한계”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세대 통권 11호(1996.10.) 《커버스토리》-> 과열된 선거, 냉담한 선거- 학생회 선거에 대한 문제제기 학생회 선거의 문제점은 의사소통의 단절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많다. 일방적 의사소통이 고착화됨에 따라 학생들과 학생회간 의사소통은 단절되게 되었고 이는 학생들이 학생회에 등을 돌리고, 결국 학생회는 자신들의 지지기반이 되어야 할 학생들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현재 학생회 선거에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또 하나는 바로 선거 정책의 성격에 관한 측면이다. 현재 학생회 선거문화에서는 운동의 특정한 담론과 정책 등을 마치 상품처럼 제공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선거승리를 위한 도구로서의 정책이 아닌, 그 자체로서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치 2000년대 작성된 기사를 보는 듯 하다. 학생운동, 정치와 그들은 선택하는 학생들과의 괴리. 46대 총학생회 선거의 투표율이 가깠으로 50%를 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냉담한 선거’에 대한 문제제기는 학생정치가 영원히 안고 가야할 숙제인지도 모른다. 우리세대 통권 18호(1997.10) 《커버스토리》 참여·자치·연대로 열린행동 40대 총학생회 무엇을 남겼는가 40대 총학생회는 대중과의 접촉면 확장을 위한 다양한 공각창출에 주력하였다. 이와 함께 북한동포돕기운동과 반재벌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직접적인 통일운동 방식으로서 활발하게 북한동포돕기운동을 벌였으며, ‘반자본’이라는 추상적인 언명 대신 그 모순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재벌에 대해 문제를 던짐으로써 일정정도 ‘반재벌’이라는 담론을 형성하는데 성공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대학을 충돌의 현장으로 구성하려는 시도로써 대학개혁운동을 열성적으로 이끌어나가기도 하였다. 대동제시기 교양학교 개설, 학생회관 식당문제와 교내 셔틀문제, 도선관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 등, 학내사안 문제 해결 전면에 나섰다. 40대 총학생회는 상당한 대중성을 띠고 있었던 것으로 기사는 평가하고 있다. 북한동포돕기, 반재벌 운동,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주제를 제시한 40대 총학생회에 대해 당시 기사는 비록 문제점이 어느 정도 노출되기는 하였으나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정리한다. 우리세대 통권 35호(1999.12.) 《학원》-> 1999년 서울대, 그리고 42대 총학생회 42대 총학생회는 ‘대학인의 보편적 권리 획득, 민중중심의 사회재편을 향한 행동연대를 창출하라’는 총기치 아래 출범했다. 그리고 총기치 아래에서 ‘진보진영의 대안 세력화를 위해 노력한다’, ‘민중연대를 강화한다’, ‘대학인의 보편적 권리 획득을 위해 노력한다’, ‘분단극복과 민중을 위한 통일운동을 전개한다’, ‘학생운동의 연대를 위해 노력한다’와 같은 5가지 총 노선을 내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여러 사업 중 ‘국보법 철폐운동’, ‘페미니즘 문화제’ 등이 잘 된 사업으로 평가받았다. 1999년은 학생회 자체의 특성보다도, 학생사회의 분열을 야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일들(43대 총학생회 선거 결과, 지하철 총파업 노동자)등이 큰 이슈가 되었던 한해 인 듯 하다.기사는 42대 총학생회는 무난한 진보성을 담아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세대 통권 42호(2000.12) 《우리세대 기획1》 “새로움”에 대한 실험무대, 역사 저편으로 43대 총학생회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 43대 총학생회의 총노선은 ‘다/양/성/의 존중, 문화로서 아우른다’였다. 이는 ‘권/비권’의 대립을 넘어선 학생회의 의사수렴을 지향한다는 의미이고, 그 실천적 기제로 상정한 것이 ‘문화’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43대 총학생회는 2대 공약사항으로 민주주의는 분명 참신한 시도였고 충분히 고무적이었으나 실질적 결과가 미약했다. ‘새로운 대학축제의 대안’으로서 제안되었으며 나아가서는 ‘정치를 넘어서서 문화로서 전국의 학생들이 연대한다’는 취지로 내세워졌던 문화네트워크라는 공약도 결국 일반 대중문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나타남으로써 아쉬움을 남겼다.2000년은 서울대 역사상 최초로 비권이 수권한 해로 기록되어있다. 문화, 민주주의 등 새로 주제를 학생사회에 수혈할 측면은 기사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서울대저널의 모토인 ‘진보’를 상당정도 답보해내지 못한 학생회였다는 측면에서, 기사 속 마지막 문구의 아쉬움이 깊게 배어나온다. 서울대저널 통권 56호(2002.12) 《학원》-> 정치색이 다른 네 선본, “초록은 동색이었다”? – 〈학교로〉의 압도적 당선 에 네 선본의 지지도는 비슷 〈학교로〉선본이 당선된 이유로는 가장 먼저 ‘기존 학정조에 대한 기대 상실’을 들 수 있다. 네 개의 학정조 선본의 차이는 분명했으나 선거운동 전부터 ‘운동권 선본’으로 학우들에게 눈도장 찍힘으로써 넷이지만 하나로 보이게 되었고, 이는 〈집으로〉선본이 전략적 어필의 하나로 ‘1:4리플렛’을 배포함으로써 더욱 확고화하게 된다. 또한 ‘마임’을 하지 않고, 집중적으로 ‘강의실 아지테이션 홍보’에 주력한 독특한 선거 운동 방식도 기여를 하게 된다. 서울대 총학생회 역사상 2번째 비권으로 수권한 〈학교로〉선본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총학생회의 새로운 위상을 정립’할 것, 학생 복지 분야의 다채로운 공약들의 실천성에 대한 기대가 예년에 비해 특히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은 서울대 역사상 2번째로 비권 총학이 탄생한 해이다. 물론 43대 총학에 대한 기사가 평가기사라는 점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46대 총학에 대한 서울대저널의 평가는 중립, 혹은 호의적이다. 학생운동이 학생정치가, 그리고 서울대저널이 추구하는 모토 ‘진보’가 점점더 우리의 일상으로 영역으로 다가오고 있음, 다가와야만 함을 기사는 암시하고 있는 듯 하다. 이상 5개의 학생회 관련 기사를 살펴보았다. 학생 정치에 대해 기사의 평가관점과 방향이 변화고 있듯이 앞으로 학생회 상과 학생운동의 모습은 시대 변화에 발 맞추어 달라질 것이다. 이와 함께 ‘진보를 일구는 참 목소리’를 표방하는 서울대저널 미래 역시도, 변화할 학생 사회에 발 맞추어 앞으로 다른 내용으로 채워질 ‘진보’라는 정치성을 지속적으로 담아갈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