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많은 사람은 종교의 자유를 생존권과 같은 권리로는 인식하고 있지 않는 듯 해요. 목숨을 걸고 투쟁했는데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A. 사람마다 중요시 하는게 다르고, 사람의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양심 역시 다 같을 수는 없죠. 저 같은 경우 ‘거짓말을 할 수 없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할 수 없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신념을 위해 행동을 한 것 뿐입니다. 다만, 누구나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기준들이 있죠. 그렇지만 제가 기회비용을 높게 잡으면서까지도 동의를 넘어선 실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종교의 자유에 두는 가치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엔 양심과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죠. Q. 투쟁 도중, 친구, 선생님과의 인간관계에서 개인적인 갈등은 없었나요? A. 제 친구들이 다 착해서 그런지, 부정적인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물론 친구들 중에도 간혹 공부나 할 것이지, 저렇게까지 행동할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었죠. 그러나 그 경우엔 가치관이 다르다고나 해야할까요? 그리고 선생님들을 찾아가 저의 이야기가 언론의 주목까지 받아야 할 일인지, 해결 또한 이리도 어려운지에 대해 제 느낌을 털어놨어요. 열에 아홉은 제 말이 옳다라고 답변해 주셨죠. 그러나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없어 미안하단 말을 들었어요. 반면에, 학교의 전통과 건학이념을 깨려한다고 반박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Q. 개인적인 갈등을 가치관의 차이로만 받아들였을 뿐이지, 감정적으로는 힘들지 않았다는 이야기 인가요? A. 선생님들의 원색적인 비난을 들었을 때는 힘들었죠. 그러면서 선생님들을 나와는 다른이 아닌,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 규정하고, 그런 사람들에게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에 슬픔을 느꼈어요. 지금까지 신뢰를 보여왔던 선생님을 불신하게 되는 저를 느끼는 순간 굉장히 힘들었구요. Q. 종교의 자유 이외에도 청소년 인권의 현주소는 매우 열악한 상황인데 여타의 문제 지점들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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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글쎄요. 먼저 청소년 인권 문제에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 해요. 모든 사안에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소급해 가다보면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연결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한 문제를 건드리면 그에 따른 파장 역시 엄청나다고 생각해요. 종교의 자유를 위한 투쟁 역시 그것의 부재를 넘어서 ‘학교의 권위적이고 업악적인 구조, 학생의 기본적 권리를 무시하는 관습, 그에 따른 학생의 표현의 자유 묵살’에 대한 문제제기죠. Q. 그럼 종교의 자유를 위해 만들어낸 활동들을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A. 그 전까지는 변화의 더딤에 굉장히 불만이 많았죠. 그러나 지금은 가야할 길이 굉장히 멀다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분명한 것은, 저의 문제제기가 학내의 변화를 넘어서서 종교의 자유와 관련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이에요. 당장 자신의 자녀가 들어갈 학교에 대해 알아보고, 종교의 자유가 부재하다면 다른 방안을 모색해 보는 등 행동의 변화가 생겼죠. 정부 역시 그러한 공감대에 발맞추어 제도를 마련했구요. 거기다, 저와 같은 활동을 하는 청소년에 대한 편견도 사라진 것 같고요. Q. 투쟁의 방법으로 최후에는 단식을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A. 투쟁을 시작할 당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어요. 주위에선 잘못했다간 법적 공방까지 가게 되니깐 조심하라고 했죠. 그래서 합법적으로 문제점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일간지를 읽다 1인시위가 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식으로 알게 된 방법들 하나하나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우선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어요.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또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 생각을 하다 단식을 찾아낸 것이죠. 단식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약해져 가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서 더더욱 선택한 것이죠. 물론 단식이라는 방법이 나의 말하기를 좀더 효과적이고 극단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저에게 있었어요. Q. 언론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라는 표현을 자주 들었어요. 강의석군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세상이란 무엇이나요? A. 솔직히, 언어로 표현을 못하겠어요. 피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언어로 그것을 규정하면 그 언어에 따에 자신의 행동을 끼워 맞추려 할 것 같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기를 강요할 것만 같아서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추상적으로 남겨 놓고 싶어요. 그래서, 아름다운 세상을 언어로 규정하는 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을 생각하고 있어요. 주변에서 어떤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의 부조리함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한 부조리함을 하나하나씩 없애 나가는 것이라 설명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것 같네요. 굳이 구체적인 설명을 하자면, 전쟁이 없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 정도요? Q. 그러한 생각은 서울대 구성원으로서도 유효한 것이지요? A. 대학에 들어왔다고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천해 나가는 특성은 대학생이 되었다고 달라질 것 없이 없구요.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제가 일상에서 해나가고자 하는 것들이 변화와 관련된 것인데, 변화를 싫어하고 저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설득시키고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점이예요. 사실 나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들을 설득시켜 나가는 과정이 매우 고통스러운 거죠. Q. 그렇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의 대립에서 강의석군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죠?A. 잘 모르기 때문에, 정말 많이 고민을 했어요. 그러나 명확한 답을 내리는 것은 포기했어요. 말씀 드렸던 것처럼, 무언가를 언어로 확신하게 되는 순간 스스로는 물론 타인에게 억지를 쓰며, 행동을 인위적으로 강요하게 될 것 같아요. 다만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기준은 있을 것 같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기준들을 헌법, 신문에 실린 여러 기사들, 세계 인권 선언문과 같은 것을 참조해서 세워요. 세계 인권 선언문 조차 부족한 점이 보이는 것 같기는 하지만요. 아무튼, 보편적인 기준은 그러한 조항문 같은 곳에서 찾고 그것을 근거로 개별 사안에 대해 제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는 거죠. Q. 가치판단의 최소한적 기준을 법에서 찾고 있나요? A. 예. 최소한적 기준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보다가 상위법의 내용을 살펴보게 되었어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법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법은 나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소중한 약속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물론, 현실에선 지배자의 도구로 사용되어지기 쉽긴 하죠. 아무래도 법을 만들고 이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지배자이니깐요. 그럴 수록 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제도와 그 틀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법 공부를 하려고 하는 것이구요. Q. 서울대 폐지, 서울대의 개혁등과 관련해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는데요. 서울대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A. 저도 열심히 공부한 사람한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데에 동의를 해요. 그런데, 서울대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잘 갖춘 곳으로 인식이 되는게 아니라, 명예와 부를 갖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만 인식이 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 중에서도 좋은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이 받아야 하는 혜택을 냉정히 판단하고 그 이상의 것을 받았을 때, 거부하고 돌려줄 줄 아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과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아요. Q. 그것과 관련해 서울대 폐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A. 문제 해결의 방법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확신이 서는 것은 아니예요. 서울대 폐지가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가져다 주는게 아니니깐요. Q. 서울대를 바꾸기 위해 서울대에 들어간다는 표현을 했었잖아요. 아무리 그렇대도 서울대에 입학한 것만으로도 이미 기득권층에 진입했다고 생각하는데? A. 근데 제가 기득권층에 진입했다라는 점이 실감은 나지 않는데, 주위에서 하도 그러니깐 그런가보다 싶어요. 특별히 일류대 서울대의 학생이라는 데에 신경을 쓰지 않아요. 그냥, 저 자신을 믿으니깐 제가 기득권층의 삶을 살든, 살지 않든간에 거기엔 타당한 이유가 있을 테고, 그걸 그냥 여실히 보여줄 수 있으면 되는 일인 것 같아요.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어요. ‘너의 길을 걸어거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게 내버려 둬라’ 자기에 대해서 스스로 떳떳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Q. 일반 새내기와는 달리 ‘사회 활동가’라는 초점으로 강의석군을 바라보기 쉬운데요. 서울대의 개혁과 관련한 발언 때문에 책임감이 클 것 같은데, 어떠세요? A. 저는 제가 행동을 할 것이고, 제 자신을 믿으니깐 말을 한거구요. 활동을 한다는 것이 어떠한 결과물을 꼭 낳겠다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특별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에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주위의 부조리함을 보면, 시정을 위해 활동을 하는 방식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노력할 거예요. 별 신경쓰지 않고 제 성격대로, 해오던대로 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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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래도 책임을 다할 수 있기 때문에 서울대 개혁과 관련한 의지표명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대략적으로라도 그리고 있는 활동의 상이 있나요?
A. 우선은 법을 공부하기로 했으니깐, 효과적인 공부를 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거나 그러한 모임이 있다면 그곳에 들어가 보려고 해요. 무엇보다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사람도 많이 만나구요. 지금은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갖고 싶기도 해요. 책을 읽는 등, 나와의 시간 같은거요. 아까 말씀 드렸던 것처럼, 서울대 폐지와 같은 해결 방법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활동안은 당연히 없구요. 이제부터 시작이니 서서히 만들어 나가야죠. 다만 제 주위에서부터 불합리한 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식으로 행동을 할 테지만 그게 또 한계점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법 공부를 더 해보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 역시 해야겠죠. 법이란 제도나 틀 자체를 개혁하는 일 같은 것 말예요. 그러한 방법이 완결이 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강의석군은 개혁을 꿈꾸는 ‘사회 운동가’라고 소개 되기에도, 평범한 ‘새내기’라고 소개 되기에도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인터뷰 도중 계속해서 설명한 올바름의 보편적 기준은 너무나 소박한 것이었으며, 그가 실천해 온, 그리고 실천할 활동들 역시 그 소박함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다. 누구나 머릿속으로는 가지고 있을 법한 올바름을 향해 자신이 아는 만큼 조용히, 그러나 묵직히 실천해 가고 스스로에게 겸손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강의석군의 대학생활은 이제 시작이다. 서울대를 바꾸리라는 투사의 이미지도 엘리트의 오만함과 같은 이미지도 그의 거품일 뿐이다. 그의 소박한 실천력이 서울대라는 공간에서 어떠한 울림을 만들어 낼지,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