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 동안 손으로 쓴 편지를 받거나 혹은 편지를 써 본 경험이 있는가? 몇 년 사이 군대에 다녀오거나 혹은 군대간 애인이나 친구를 두었다면 혹시 간혹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메일과 문자메시지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편지지에 정성껏 한 글자씩 써내려 간 편지를 받아보기란 좀처럼 흔한 일이 아니다. 그나마 집집마다 편지함에 꽂혀있는 우편물들은 거의 다가 고지서나 광고들뿐이다. 편지라는 단어는 이미 추억속의 아련한 어떤 것, 혹은 떠올리는 것만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것이 되어버렸다. 편지를 부치고 답장을 기다리는 그 설렘이 잊혀져 가는 요즘, 이미 누군가에게는 추억과 향수가 되어버린 편지를 통하여 갇힌 삶을 사는 재소자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NGO가 있다. 이번 호 NGO 꼬레아에서는 재소자와 편지를 나누는 NGO, ‘편지 쓰는 사람들’을 찾았다. ‘편지 쓰는 사람들’, 그 시작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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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쓰는 사람들’(이하 편쓰사)은 올해로 7년째 편지를 통하여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있는 단체로 현재는 주로 재소자들과 편지를 나누고 있다. 편쓰사는 1998년 회장인 강지원씨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무작위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데서 시작됐다. 하루에 50통~100통씩 편지를 받으면서 편지를 필요로 하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음을 느끼게 됐고, 이러한 계기를 통해 편지를 계속 주고받으면서 점차 확대되어 현재의 편쓰사가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강지원씨와 정덕원씨 단 두 사람이 이 일을 모두 하다보니 하루에 편지를 100통 가까이 쓴 적도 있었다. 보통 밤을 새서 편지를 쓰고 아침에 잠깐 잠을 잔 뒤 일어나서 편지를 부치고 또 편지를 찾아오고 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러면서 점차 회원이 하나 둘씩 늘게 되었고 이제는 둘이 아닌 여러 회원들과 편지 쓰는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처음에는 군인, 학생, 교포, 재소자, 소년소녀가장, 실직자 등 사회 각 방면에서 편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시작되었으나 4년 전부터는 편지를 주고받는 대상이 거의 재소자로 굳혀졌다. “재소자들은 사회와 고립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사회와의 단절이 두렵고, 외롭다는 느낌을 많이 가져요. 그래서 사회와 끈을 연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요. 또 재소자들의 경우에는 한곳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감을 하기 때문에 한 교도소에서 3~4명이 시작하게 되면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이 그걸 보고 하게 되고, 후에 그 재소자가 다른 교도소로 이감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교도소로도 알려지게 되요. 뉴스나 신문, 잡지를 통해서 알게 된 경우도 있겠지만 이러한 이유로 재소자들이 편지를 많이 보내게 된 것 같아요.” 편쓰사 사무국장 정덕원씨의 말이다. ‘편지 쓰는 사람들’이란 어떤 곳? 편지는 보통 하루에 적게는 20통~50통에서 많게는 100통~200통이 오고 있다. 하지만 회원은 재소자를 제외하고 200명~250명 정도이다. 게다가 활동하는 회원은 100명~150명 정도여서 모든 재소자들의 편지에 답장을 해주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사실상 모든 편지에 답장을 보낼 수는 없는 형편 이예요. 왜냐하면 새로 오는 편지들이 있잖아요. 그런 편지들이 오면 좀 여유가 있는 분들에게 쓰시라고 권하는데 이미 한 회원 당 적게는 재소자 2명에서 많게는 4명 정도와 편지를 나누고 있어서 아직 보내지 못한 편지가 엄청 많아요. 그래서 재소자분들이 많이 기다리고 또 서운해 하시죠. 편지 보낸 지 6개월이 지났는데 왜 아무 소식도 없냐는 원망 섞인 편지도 자주 오는데 그럴 때는 솔직히 다 답장을 해드리고 싶은데 안타깝죠.” 라며 정덕원씨는 회원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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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사서함을 통해서 전달된다.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재소자들과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비하여 회원들을 관리하고, 단순히 펜팔을 주선하는 이상의 의미를 갖기 위해서이다. 재소자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보내는 이에 사서함 주소를 써서 직접 교도소로 보내고, 재소자로부터 오는 편지는 사서함을 거쳐 회원들의 손에 건네지게 된다. 이러한 방식을 거치다보니 편지를 다시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편쓰사는 따로 사무실이 없기 때문에 회장인 강지원씨와 사무국장인 정덕원씨가 집에서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봉투와 우표를 구입하는 비용 등의 운영비는 회원들이 낸 회비로 하고 있으나 부족한 것은 사비를 털어 채우기도 한다. “운영비는 지금도 사비가 좀 들어가고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회비가 많이 걷히고 있어요. 많다는 개념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고 한 10만원씩 들어오기도 해요. 초창기에는 회비가 없어서 제 사비로 다 썼었는데 70만원~80만원 정도 들었어요. 그 때는 우표가 170원이었는데, 솔직히 하나로 보면 별거 아닌데 몇 백통씩 붙이려면 돈이 꽤 들어요.” 요즘은 우표 값이 230원이다. 정덕원씨의 말을 들으면서 우표 값이 170원에서 230원으로 오를 때까지 편쓰사를 이끌어오는 동안의 어려움이 느껴졌다. 편쓰사 회원들은 한달에 한번씩 정모를 한다. 정모를 통해 분류작업을 함께 하기도 하고, 회원 간에 친목을 다지기도 하며, 편지를 보내오는 재소자들의 어려운 사정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논하기도 한다. 또, 두 달에 한번은 소식지를 발간하고 있다. 편쓰사 활동에 얽힌 이야기들 편쓰사 활동에 만족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덕원씨는 아직은 만족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회원이 많이 부족하고 그래서 편지가 항상 밀려있어요. 회원 부족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해결해 나가야할 문제예요. 그리고 재정적인 문제도 있고요. 회비를 걷고는 있지만, 현재는 반도 채 안 걷히고 있어요. 재정적인 면에서는 정말 힘들죠.” 이렇게 힘든 점도 있지만 반면에 기쁘고 보람 있는 경우들도 있다. 힘이 들지만 편쓰사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의지를 주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편지를 써왔던 재소자가 형기를 다 채우고 출감했을 때, 그리고 그 사람들이 좋은 생각으로 사회에 나가서 잘 적응하고 새로 시작하는 모습을 볼 때는 정말 자신의 일처럼 기쁘다고 한다. 많지는 않지만 출감 후에도 재소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회원들도 있다. 현재 편쓰사 운영위원인 최성자씨의 경우가 그렇다. 최성자씨와 편지를 주고받던 재소자는 출소 후 갈 곳이 없게 되자 너무 난감한 나머지 최성자씨에게 꼭 갚겠다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해왔다. 솔직히 어쩌면 못 받을지도 모를 돈이지만 최성자씨는 그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선뜻 200만원을 빌려줬다. 이후 그 재소자는 그 돈을 가지고 중장비면허증을 따서 취직을 하였다. 일을 해서 번 돈으로 50만원을 갚고, 100만원을 갚고 그런 식으로 조금씩 갚아나가서 지금은 빌렸던 돈을 다 갚고 열심히 정착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좋은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에게 섭섭하게 했을 경우에 해코지를 하려고 한다든지 아니면 돈이나 책을 부쳐 달라든지 금전적인 요구를 하기도 한다. 또 편지를 통하여 따뜻한 마음을 나누려는 회원들의 마음과는 달리 일부 재소자들의 경우에는 이성적인 마음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로 인한 불미스러운 일들을 방지하기위해 사서함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가명을 쓰기도 한다. 또 교도소로 재소자들에게 이러이러한 것들은 자제해 달라고 안내문을 발송하기도 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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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재소자와 편지를 주고받으려고 마음을 먹으면 두려운 마음이 많든 적든 들기 마련이다. 혹시나 좀 서운하게 했다고 나에게 어떻게 해코지하지는 않을까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범인으로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정덕원씨도 솔직히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또 회원이 늘어나면서 회원들 중 대부분이 여자분 들이기 때문에 조금 불미스러운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 이예요. 하지만 회원관리를 통해서 편지를 쓸 때 회원으로서의 수칙들을 지켜주기를 많이 이야기하고 회원들이 가입하게 되면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서 말하고 주의해달라고 강조해서 말해주고 있어요.” 갇힌 삶 속 외로움, 그리고 사회 속의 감옥 사회에서 재소자들을 보는 시선은 그들의 푸른 수의만큼이나 차갑다. 죄의 대가를 치루고 출소한 후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편견에 대해 정덕원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솔직히 저 자신도 어느 정도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다만 그것을 떨쳐버리고 이 일을 할 뿐이죠. 재소자분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회에 나왔을 때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거예요. 초범이고 형기가 짧은 분들은 가정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형기가 긴 사람들은 나오면 가정이 없어요. 이미 이혼된 상태고, 돌아갈 집도 없고, 부모님이 안 계신 경우가 많아요. 갈 데가 없다는 것이 제일 안타까워요. 그래서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결국 악순환이죠. 그래서 저희는 처음 편쓰사를 시작할 때부터 재소자분들이 출감했을 때 머무를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분들에게 같이 생활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에서 회원들에게 자주 이야기하고, 계획을 하고 있어요.” 많은 재소자들이 가족이 없다는 외로움과 사회에 나갔을 때 갈 곳이 없는 막막함 때문에 더욱 더 절실하게 편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 편지의 가치와 의미는 받는 사람이 어디에 있고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즐겁고 여유롭고 주위에 사람이 많으며 언제든지 편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어느 날 편지 한 통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힘들고 절박하고 사회와 단절된 외로운 사람이 받는 편지 한 통은 남다른 의미를 지닐 것이다. 재소자들에게 편지는 후자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가오는 봄날, 벤치에 앉아 화창한 봄볕을 맞으며 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따뜻한 말과 애정 어린 관심이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그 편지가 희망으로 전해 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