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다아체에 희망을 심고 오다

“허연 소독제를 뿜어대는 방역차를 따라 달려오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쓰나미가 동남아시아 지역을 강타한 지 한 달여 되던 1월 26일, 최호천 씨는 인도네시아 땅을 밟았다.대한의사협회의 1,2,3차 진료단의 뒤를 이어 4차 진료단으로 파견된 것이다.4차 진료단이 반다아체에 머문 기간은 총 10일.그 중 이동시간을 제외한 7일 동안 진료를 했다.
###IMG_0###

“허연 소독제를 뿜어대는 방역차를 따라 달려오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쓰나미가 동남아시아 지역을 강타한 지 한 달여 되던 1월 26일, 최호천 씨는 인도네시아 땅을 밟았다. 대한의사협회의 1,2,3차 진료단의 뒤를 이어 4차 진료단으로 파견된 것이다. 4차 진료단이 반다아체에 머문 기간은 총 10일. 그 중 이동시간을 제외한 7일 동안 진료를 했다. “시체는 대부분 정리되었지만, 해안가부터 5km에 이르는 지점까지 모두 폐허상태였습니다. 상·하수도가 모두 파괴된 상태였고, 난민수용시설은 열악할뿐더러 위생상태도 나빴습니다.” 최호천 씨는 도착 당시 반다아체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마지막 파견단인 4차 진료단의 주된 역할은 기존의 환자들을 계속 관리하는 것이었다. 주민들이 위생개념이 없어 방역기 두 대를 마련해서 직접 방역도 했다. 타지에서 온 의료봉사단에게는 언어의 장벽도 큰 문제였다. 반다아체는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의 제주도 같은 곳이다. 사투리가 심해서 수도인 자카르타말로 의사소통이 안 될 정도. 그래서 한국어 혹은 영어를 쓰는 의료진과 반다아체 현지 주민 간에 두 번의 통역 과정이 필요했다고 한다. 언어의 장벽의 어려움 말고도 신변의 위협을 느꼈을 때 두려움을 느꼈다고 최호철 씨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진료 7일 차 되던 날, 외신 통해 반군 세력이 한국의료봉사 단체 테러하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관광객으로 위장해서 겨우 자카르타로 들어갔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죠.” 자신의 의료기술로 자원봉사를 하면 보람도 남다를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최호천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좋아서 간 것이었죠. 반다아체에 가서 사람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고 나의 존재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제 자신에게도 소중한 경험이죠.” 대학시절의 의료자원봉사동아리 ‘소금회’에서 시작된 인연이 이번 의료자원봉사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는 최호천 씨. 그는 지금 서울대학교 병원 가정의학과 레지던트로 근무 중이다. 그가 반다아체에 심고 온 사랑의 의술이 한국 땅에서도 열매 맺기를 기대해본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캄보디아에서 꿈을 짓다

Next Post

“서울대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