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례 백지제호 이후 흐지부지 된 편집권
지난 2004년 11월 「대학신문」이 제호를 지운 채 발간되어 많은 사람들의 놀라움을 샀다. 「대학신문」의 총동창회 광고를 두고 주간교수와 학생기자 사이에는 의견대립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주간교수는 독단적인 권한을 행사하려 했다. 이에 학생기자들은 자신들의 의지대로 신문을 제작했고, 주간교수는 신문 인쇄를 중단시켰다. 이처럼, 백지제호 사건의 표면적 원인은 총동창회 광고를 둘러싼 주간교수와 학생기자의 갈등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학생 편집권의 부재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내재해 있었다. 주간교수가 자신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자 신문 인쇄를 중단시켰던 것은 사칙에서 주간교수 1인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지제호 신문이 발행될 당시 편집장 장한승씨는 문제의 원인을 ‘편집권’ 갈등이라고 밝혔었다. 「대학신문」역사상 처음으로 발행된 반 백지 신문은 이처럼 편집권의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학교 안팎에서 크게 다뤄졌다. 그러나 한 차례의 반 백지 신문 발행 이후 「대학신문」은 정상 발행됐다. 독자들은 「대학신문」의 사과문 이외에 편집권의 행방과 관련한 어떠한 공식적 입장도 접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방학 기간동안 학생 측과 학교 측의 비공식적인 점심 모임이 세 차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그 모임에서 편집권과 관련한 사칙개정에 대해선 이야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백지제호 이후에 편집권, 사칙개정과 관련한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이번학기 「대학신문」은 발행을 계속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이다람 신임 편집장(농대 03)은 “우리가 백지제호를 내게 된 이유는 이창복 전 주간교수가 신문사 내 합의의 전통을 중요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현 주간교수와의 사이에서 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상황이다. 편집권과 관련한 사칙 개정에 대한 필요성은 못 느낀다”고 말하며, 애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합의라는 관점’에서 당시의 문제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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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칙은 문제없어 … 아슬아슬한 합의의 전통
서울대학교 규정집 내 대학신문사 사칙에는 대체로 대학신문의 권한이 주간교수 1인에게 주어져 있음이 명시돼 있다. 사칙 제 2장 제 10조 3항에는 ‘일반 기자, 편집장, 부장의 임명을 주간교수가 관할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제 3장 제 23조에는 ‘편집회의를 주간교수가 주재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처럼 사칙에는 주간교수에게 기자 임명권과 편집권이 다 주어져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학생기자에게 기자 임명권이 있고 편집회의는 편집장이 주관하는 것이 대학신문내 합의의 전통이다. 그러나 기사가 통과되는 마지막 과정에 주간교수의 허가가 있어야 하는 것은 사칙이 명시한 사실이고 백지제호 사건의 배경이었던 총동창회 광고를 사이에 둔 갈등 역시 이러한 사칙을 바탕에 둔 관행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양승목 주간교수는 “지금의 사칙은 권한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실제 신문의 발행 과정에서는 이런 애매함이 더 유용하다”라고 말해, 사칙이 아무 문제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또한 이번 백지제호 사건에 대해서는 “백지제호는 단순한 감정적인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까지는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신문을 내는 입장에서 합의의 과정을 거쳐서 아무 문제없이 신문을 발행해 왔다. 또한 사칙과 상관없이 학생에게도 어느 정도의 편집권이 보장되어 있다.”라고 말하며, 합의의 전통을 강조했다. 이다람 편집장 역시 주간교수와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이다람 편집장은 “합의의 전통이 사칙에 규정돼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사칙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떻게 운영되는가 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사칙 개정에 대한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며 사칙의 불완전함과는 별개로 사칙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표했다. 백지제호 사건과 이후의 과정들을 지켜본 이수강(93년「대학신문」편집장)씨는 “백지제호는 「대학신문」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후배들의 대응이 그러한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비합리적인 주간교수 1인에 대한 반발에 그쳤다 ”고 말했다. 앞으로 갈등 여지에 대해 이다람 편집장은 “갈등 상황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나는 주간교수님을 믿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슬기롭게 해나갈 수 있다”며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사칙의 근본적인 개정이 없는 「대학신문」은 어제 다시 타오를지 모르는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는 셈이다. 핑계에 불과한 대학신문의 정체성과 역사 학생 편집권 확보 관련해서도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다람 편집장은 “학교의 소식지와 자치언론사 사이에 설 수 있는 게 「대학신문」이다. 공식 언론사로서 사실이 확인되고 정제된 내용을 싣고 학부생, 본부, 대학원생, 교직원까지도 독자로 생각하여 기사를 생산해 내야 한다. 따라서 학생기자가 편집권 100% 확보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으로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대신문」은 학내 구성원의 목소리를 고루 담는 학교의 공식 언론사이면서 학생들의 편집권이 완전히 담보되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편집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편집장뿐만이 아닌 학생 기자 대부분의 생각이다. 이다람 편집장은 “학교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지금 들어오는 광고비만으로도 신문 간행은 충분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독립할 준비는 되어있다. 다만 우리 기자들이 독립을 원치 않을 뿐이다”라며 내부 구성원의 생각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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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교수는 학생들이 원하면 학생 편집권 확보와 함께 독립을 시켜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주간교수는 “다만 학생 편집권 확보와 함께 「대학신문」은 더 이상 서울대학의 공식적 언론사가 아닌 자치언론사로 위상이 바뀐다. 「대학신문」의 태생은 교수신문이었다. 역사적으로 「대학신문」은 학생들이 만든 신문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학생이 편집권을 갖는 것은 「대학신문」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해, 「대학신문」의 편집권의 위치 변화는 공식 언론사로써의 위상 변화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88년, 「대학신문」이 지금의 절충안 체제로 돌아서면서 편집권의 위치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대학신문」은 87년까지 교수나 대학원생이 편집장을 맡으며 편집권 전체가 학교 측에 있었던 구조였다. 그러다 87년 6월 항쟁의 분위기를 업은 학생들이 편집권 요구를 해왔고 기존의 구조와 절충해 사칙에는 대체로 주간교수에게 권한이 주어졌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부분의 권한이 학생에게 넘겨진 오늘날의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절충안 체제는 당시 구조에 비하면 편집권의 위치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이었지만 「대학신문」의 공식 언론사로써의 위상에는 변화가 없었다. 「중대신문」역시 오늘날과 같은 체제로 변모하기까지는 한차례의 변혁이 있었다. 80년대 중반 사회 전반을 휩쓸었던 민주화에 대한 탄압은 「중대신문」에까지 미쳐 편집자율권이 위축되었다.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기자들은 편집자율권을 위한 투쟁을 전개했고 그 해 5월 전면적으로 학생 편집권을 보장받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도 「중대신문」은 중앙대의 공식 언론사로써의 위상을 유지해 오고 있다. 「중대신문」의 사례와 관련해,「대학신문」양승목 주간교수는 “「중대신문」의 역사와 전통을 잘 몰라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올바른 경우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대학언론…비판적 기능…편집권…각기 다른 생각 「대학신문」은 학교의 공식 언론사이지만 그 이전에 대학언론이기도 하다. 대학언론의 상과 관련해 이수강씨는 “대학언론이라 하면 최소한 자유로운 비판정신, 도발적인 실험정신, 패기가 넘치는 기사를 생산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다람 편집장은 “「대학신문」내 합의가 본부 편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판할 점은 충분히 잘 비판해 내고 있다고 생각하며, 돈 주는 쪽에 붙어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중간에 교수님들의 설명을 들으며 한쪽 의견에 치우친 비판을 자제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며 학생 편집권 없이도 언론의 비판적 기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다람 편집장의 생각과 달리 전직 기자와 외부 언론의 시선은 학생 편집권이 없는 것이 문제가 됨을 설명하고 있다. 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대학신문」전직 기자는 “대본부 비판적인 기사를 생산함에 있어 본부측의 눈에 띄는 제재는 없다. 그러나 비판의 수위, 기사의 양을 조절함에 있어 암묵적인 영향력이 존재한다. 비단 개인적인 생각만은 아니다. 편집회의 때 기사가 주관교수를 통과 해야하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부분의 전직기자가 공감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또한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의장 남정원씨는 “실상 대학신문사가 학교기관 소속인데다 학교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어 소위 ‘종속성’이란 개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따라서 대학신문 편집자(기자들)와 대학 운영자간의 가장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구체적 논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더 나아가서는 대학신문에 독립된 운영 체계를 마련해 주고, 편집권을 보장해야 한다.”라며, 대학신문의 학생 편집권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한편, 주간교수는 대학언론의 비판적 기능에 대해 다른 의견을 밝혔다. 주간교수는 “비판정신에 입각해 대본부 비판 기사를 찾아다니는 것은 이제 옛날 말이 되었다. 그러한 생각은 70,80년에나 해당되는 것이다. 대학언론이 중요시해야 할 것은 팩트, 균형감각이다. 특히 요즘들어 서울대를 둘러싼 억울한 비판도 많은데, 「대학신문」이 서울대학의 존립근거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고 말하며, 비판적 기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학언론의 비판적 기능에 대해 각기 다른 상을 그리고 있는 학생과 본부측의 합의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