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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한 뭉치 들고, Go to the Past!
1955년 가을, 선선한 바람이 스치기 시작하는 서울대 교정을 거닐던 S씨. 본부에서 백 원 주고 산 ‘미제(美製)’ 노트(사진1)를 품에 안고 강의실로 들어선다. 질 좋은 미제 노트 위로 연필이 유난히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느낌이다. 수업 후 신장개업했다는 경양식 식당 ‘로맨스’에서 숙희 씨를 만날 생각에 좀처럼 집중이 안 된다. ‘그이에게 ‘자유부인’을 보러 가자고 해 볼까? 역시 ‘사상계’에 실린 김 교수님의 글에 대해 토론하자고 하는 게 좋은 걸까. 아차차, 서울대 뱃지 현상모집(사진2)이 언제까지였더라? 당선금이 2만원이던데!’ 매캐한 전란의 포연이 겨우 가라앉았을 무렵, 서울대 학생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당시의 「대학신문」에 실렸던 광고들을 통해 그 모습을 재구성해보니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그려져 꽤나 흥미롭다. 당대의 사회문화상을 읽을 수 있는 효과적인 텍스트의 하나로 이야기되는 광고. 1952년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60여 년 치 「대학신문」 광고를 들고 함께 ‘Go to the Past!’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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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포연을 걷고 모던, 모던, 모던!
52년 창간호의 광고란에는 상품 광고 대신 생뚱맞게 ‘부산전시연합대학’, ‘국민대학’ 같은 낯선 학교 이름들이 칸칸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학이 ‘전시(戰時)연합’이란 무시무시한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대학신문」은 6·25 전쟁 중에 전국 대학을 연결하여 학풍을 유지하고 학생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자 창간됐다. 당시 부산으로 피난해 있던 서울대는 그 주체가 됐다. 전쟁으로 인해 열악했던 광고란은 전쟁이 끝나고 55년에 비로소 「대학신문」이 서울대 학보로 정착되면서부터 서울대학생들을 직접 겨냥한 다양한 광고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는 강의 교재나 외국어 교재 등 학생들의 학습과 관련된 정보들을 소개하는 광고가 주를 이뤘다. ‘사상계’나 ‘새벽’등 어지러운 시대상황을 뚫고 종합 교양지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잡지들의 광고도 많았다. ‘죤 듀이’, ‘룻소’의 사상을 소개하기도 하고 일본 문단의 최신 경향을 알리기도 했다. 한편 교복과 신사복, 숙녀복을 파는 양복점 ‘한성라사’(사진3)의 광고도 재미있다. 한성라사의 옷을 입는 ‘모던 스타일…뉴―스타일’의 현대인은 새로 나온 영화를 보지 못하면 뒤떨어진 감을 느끼고 유명한 곳을 좋아하며 자신의 체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았단다. ‘현대적인 것’에 대한 동경 못지않게 ‘미국적인 것’에 대한 열망도 강했나보다. ‘청운의 대망을 품고 도미(渡美)하려는 유학생제군들’을 겨냥한 항공사의 광고(사진4)가 실리고 유학생활을 생생하게 담았다는 유학기가 발간됐다. 초콜릿이든 치약이든 뭐든 ‘미제’는 ‘최신’, ‘최고’와 동의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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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사랑과 우정, 혹은 교양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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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광고의 종류는 한층 다채로워졌다. 사랑의 정념에 녹아내릴 듯 뜨거운 눈동자를 한 두 남녀가 등장하는 영화광고가 많아지고 광고란의 크기도 커졌다. 한자의 홍수와 세로쓰기는 여전했지만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보다 과감해진 광고문구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그 시절 학생들의 연애풍속도의 일면을 반영하는 펜팔광고도 있다.진실한 참벗을 맺어주는 ‘핵반응의 전위주가급승(前衛株價急勝)펜팔’(사진5)이라고 하여 자세히 들여다보니 서울대생과 이대, 숙대 여학생들을 이어주는, 딱 까놓고 말하자면 중매광고다. 이공계 남학생이 부족해 당분간 제한적으로 서울대 이공계 남학생에 한해 신청을 받겠으니 15원을 소개비로 납부하란다. 아, 마담뚜의 오랜 역사여. 그 시절에도 학생들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 잡혀야 했나 보다. 방학을 이용하여 한글과 영문, 국한문 타이핑 기술을 수강하면 취직을 책임 알선하겠다는 학원의 호언장담, ‘취업고시’는 우리세대만의 신조어 아니었던가? ‘지성의 밑거름으로 통하는 정서’의 고양을 위해 피아노 한 대 마련하라는 세련된 권유, ‘마이카 시대’를 대비하여 운전기술을 배워두라는 충고가 담긴 광고. 지성에 어울리는 교양과 기술을 겸비한 전인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 좋긴 좋다. 하지만 혹시 그 시절 학생들도 미래에 대한 준비가 끊임없이 오늘의 삶을 밀어내는 현실에 문득 한숨을 짓게 되지는 않았을까? 그녀는 언제부터 ‘현대여성’이 되었나 「대학신문」 지면에 실렸던 광고의 흐름 중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지류는 바로 여성, 특히 ‘여대생’을 겨냥한 광고의 흐름이다. 60년대 중반 미용성형을 한다는 명도 정형의원(사진6)의 광고가 자그마하게 실린 이후, ‘아름다운 코를 만드는 융비기, 미끈한 다리를 만드는 각선기, 예쁜 쌍꺼풀을 만드는 미인기’ 광고도 속속 등장한다. 수술이나 주사를 맞지 않고 남몰래 당신 손으로 예뻐질 수 있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 성형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생각보다 이른 성형광고의 등장이 당혹스럽다. 뒤이어 ‘현대여성의 멋, 각선미’를 돋보이게 해 준다는 반달표 스타킹, 화운데이션이니 하는 여성용 보정속옷 광고가 현대여성의 조건을 보다 세세히 일러준다. 제모제 광고(사진7)는 “겨드랑 털을 매력으로 보는 남성은 없다”고 귀띔하고 여드름 치료제 광고는 데이트도 로맨스도 여드름이 있으면 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현대여성의 탄생신화가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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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 그 신화와 함께 진화하는 광고
70년대 후반 무렵에는 광고의 종류가 줄어드는 대신 고정적 제품의 광고가 늘고 광고란도 각 면의 하단부로 확정됐다. 광고에 가로쓰기가 도입되고 한자도 크게 줄었다. 첫인상을 ‘인프리에이션’하는 식으로 꼬아 쓰지 않아서 보기가 훨씬 수월해진 것도 커다란 변화였다. 내용면에 있어서는 70년대 중반 이후의 비약적인 한국 경제의 발전이 광고에도 영향을 주어 광고의 품목이 전자와 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등으로 다양화된 것이 특징이었다. 이 시절 광고에는 휴대형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TV, 라디오, 카세트가 하나로 합쳐진 ‘태풍5’로, 전자공학계산기와 전자손목시계로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과 함께 진행된 전자제품 진화의 발자취가 선명하다. 그래도 학술·교양 잡지나 주요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광고는 꾸준히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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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상품만이 존재하던 과거의 광고에 비해 상품과 인간이 직접 연결되고 감각적인 광고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이 새는 독에 물을 붓는 사진을 싣고 대뜸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이유?”라고 묻는 당황스러운 광고. 광고 하단에는 포항제철의 이름이 달려 있다. 포항제철의 광고(사진8)인 것은 알겠는데 자사 제품이 좋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라 “새 학기를 맞은 젊은이들이여, 앞에 놓인 것이 밑 빠진 독이더라도, 개의치 않고 용기 있게 물을 붓는 자만이 빠져나간 물의 양만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광고주의 욕심을 접고 기업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발상의 기업광고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조금 심심해보여도, 진화는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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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80년대 후반부터 2005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학신문」의 광고들은 큰 변화 없이 비슷비슷한 내용으로 계속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광고 품목의 종류가 줄어들어 한 면의 광고란을 모두 차지하는 기업 광고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PCS가 휴대폰으로 변하고 컴퓨터와 노트북 광고가 차례로 등장하는 데서, 여전히 기술의 진보와 이를 어느 세대보다 빠르게 수용하고 활용하는 대학생들의 생활상 변화를 추적해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중요한 영어학습. 그래서 계속되고 있는 외국어학습과 관련된 문제집, 학원 광고(사진9)는 한국 대학생들이 해방 이래 줄곧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해묵은 짐 보따리를 보는 듯한 느낌에 젖게 한다.현재로 돌아와 즐기는 엉뚱한 상상 ‘Go to the Past!’를 마치고 이제, 다시 2005년이다. 수 십 년이 흐른 뒤 까마득한 후배 기자들이 해방 100주년 기획으로 다시 한 번 ‘광고로 보는 100년’을 취재하고자 「대학신문」을 뒤적이는 상상을 해 본다. 지금 우리 눈에는 뻔한 기업광고, 채용광고, 편입광고만 보이는데 훗날 그들의 눈에는 요즘의 광고를 통해 우리의 생활상이 어떻게 비치게 될까. 그들에게 좀 더 생생한 모습을 전하려면 미팅일시 공고, 토플 스터디 모집광고도 실어야 하지 않을까? 잠시 해 보는 엉뚱한 상상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