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신문지면을 통해 겪는 수많은 사건들, 그야말로 ‘직접’ 이 아닌 타인이 겪은 것을 종이를 통해 볼 때에 결코 피할 수 없는 자세이다. 그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바쁜 일상 속에서 신문을 통해 간접 경험하는 여러 사건들은 그냥 네모난 종이 위에 까만 글씨 그 자체로 머무는 경우가 많다. 노동문제? 수구언론에는 왠지 자본가들의 압력이 들어가 있을 것 같고. 노동 관련지에는 투쟁을 강조하는 감정적인 내용이 맘에 툴지 않아 쉽게 태도를 ‘거리두기’로 설정해버리곤 했다. 특히나 저 멀리 부산, 대구 등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간적 거랴’ 까지 가세하여 그러한 태도는 점차 굳어지게 되었다. 이번에 대구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문뜩 너무나 길어져 버린 상대적 거리감을 발견한 직후였다 하지만, 평온한 대구분신 후 사경을 해매다 며칠 전(11월 17일) 결국 운명한 고(故) 이해남 지회장의 소식에 처음 가보는 낯선 도시에 대한 어색함이 더해져서인지, 대구로 가는 기차 안에서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11월 들어 노동자대회에 화염병이 등장하는 등 과격함이 더해진 상황과 ‘조심히 다녀오라’ 는 선배의 당부 말이 떠올라, 기차 안에서 읽으려고 산 노동 관련 잡지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대구는 너무나도 평온한 모습이었다 얼마 전 운명한 이해남 열사의 시선이 안치돼 있고, ‘악질 세원자본과 노무현 정권의 노동탄압에 항거한 이현중.이해남 열사 전국투쟁 대책위원회(이하 세원 대책위)’ 가 꾸려진 대구 동산병원 앞에 도착했을 때도 처음 느낌 그대로였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세원 대책위 천막 앞에 세워진 많은 근조화들과 한쪽에서 흘러나오는 민중가요 소리를 듣고서야 이곳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쪽에 오늘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거니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차분하고 조용한 모습이었다. 화염병 등의 시위 모습들을 생각하며 이곳을 그야말로 ‘과격한’ 노통 조합원들이 있는 ‘조심해야 할’ 장소라고 생각했던 강한 ‘선입견’ 으로 인한 상대적인 인상이었을까 대구 동산병원 바로 앞에 위치한 서문시장 주위에 붙어있는 세원테크의 노조탄압을 비판하는 포스터들과 병원 앞의 현수막틀을 찬찬히 돌아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대책위 측에서 마련한 분향소 안에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쓴 글을 포함한 이해남 열사의 유서가 복사되어 붙어있었다. 지금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향소에 영정이 놓인 방 안에서 혼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유가족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를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세원테크, 현재 어떤 상황인가 이곳 동산병원은 분신 후 얼마전 운명한 금속노조 세원태크 지회장 이해남씨와, 사측과의 갈등 과정에서 입은 부상으로 지난 8월 26일 사망한 고(故) 이현중씨의 영정이 함께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대책위를 비롯해 지역 연대 노조들과 대구 지역 대학생틀이 24시간 상주하며 천막을 지키고 있다. 세원 대책위는 이해남씨 분신 이후 이곳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병원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아산의 세원테크의 본사인 세원정공이 있는 이곳 대구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중이의 장례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나의 시신도 거두어서는 안됩니다.’ 라 는 이해남 지회장의 유서내용에 따라 유가족들은 장례를 미루기로 결정하였다. 이해남 지회장의 아버지는 ‘아들 유서에 따라, 거기에 어긋나지 않게 이 싸움을 마무리 지어달라.’ 며 이에 동의했다고 한다. 사측이 쳐놓은 바리케이트를 맞대고 대치하는 과정에서 다친 이현중씨 사망 후, 대책위 측이 제시한 ‘바리케이트 철거 및 노제, 인도적 차원의 위로금이 아닌 보상’ 을 회사측에서 거절한 이래 지금까지 이현중씨의 시신은 장례도 치루지 못한 채 90일이 넘게 안치돼있다. 아산의 세원테크에는 아직도 바리케이트가 설치돼 있고, 지난 11월 19일 이해남 지회장이 일했던 세원테크 공장 내에 분향소를 설치하기 위해 공장 앞에서 집회를 했을 때에는 바리 케이트에 형형색색 색깔까지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동산병원에 위치한 분향소에 서 만난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의 오은희씨는 “이현중 열사가 죽고 이해남 지회장 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도덕적으로 그렇게까지 해놓을 줄은 몰랐다”면서, “400여명의 전경들과 조합원들로 구성된 집회 대오에 소방호수로 물을 뿌려대는 모습을 보면서 사측이 아직까지도 기본적인 자세가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현중씨가 사망하고 이해남 지회장이 분신 한 후 11월 8일이 돼서야 회사측과 공식적인 교섭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차례 교섭 중 노사 양측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였고, 지난 21일 마련된 교섭도 결렬되었다. 사측은 21일 교섭에서 노조측이 주장한 ‘해고자 원직 복직과 노조 파괴자 3인 퇴진’ 에 대하여 ‘노조측 주장 의 사태책임자 3인 중 1인을 퇴진하고, 해고자 4인 복직 중 2명을 복직한다고 했는데 지회장이 사망했으니 한명만 복직 가능하다.’ 는 내용의 답변을 들고 나왔다. 노조측은 사측이 사태를 해결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20여분 만에 교섭을 결렬함으로써 노사간의 대화의 벽은 더욱 높아지기만 했다. 민주노총 오은희씨는 “노조파괴자 중 1인만을 퇴진시키겠다는 등의 회사측의 안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고 말하며 “사측은 여전히 사태 본질을 해결 하려는 게 아니라 교섭으로 대충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차원 해결노력 부재, 갚어가는 갈등의 골 교섭 결렬 이후 노사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가운데 오는 25일에는 금속노조 노동자 대회가 노숙투쟁 선포식을 시작으로 대구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할 계획이며, 26일은 ‘노무현 정권 규탄 민주노총 총력투쟁 결의 대회’ 가 대구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대구 경북 민중연대(이하 민중연대) 집행 위원장 이영기씨는 “26일 대구에서 치러지는 전국 노동자 대회를 기점으로 세원테크 노사갈등 문제가 해결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번 노동자 대회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좀처럼 대화로써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열리는 이번 노동자 대회가, 다소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시 과격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또 대구지역 47개 시민사회단체는 노동자탄압, 파병반대 등을 주장하며 22일부터 대구백화점 앞에서 시국농성에 돌입했다. 특히 ‘세원태크 사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단체’ 에서는 악화된 상황 해결을 위해 정부가 노사간 대화를 적극 중재할 것을 요구하며 권기홍 노동부 장관에게 변담을 요구했다. 이에 노동부에서는 “국회 회기 일정상 만나기 어렵고‘ 개별 사업장에 장관이 직접 중재에 나설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면담을 거절했다. 동산 병원에서 멸지 않은 대구 백화점 앞 시국 농성장에 서 만난 민중연대의 이영기씨는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가 현재 세원테크 상황의 해결을 위한 대화를 중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노사간 교섭의 돌 파구를 마련해야 하는데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이 없다”고 말하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