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1일 늦은 시각, 안국동 한 주점에서 임영신 씨(34)를 만났다. 자그마한 체구에 차분한 인상의 임영신 씨는 이튿날 이라크 재출국을 앞두고 여러 가지 준비로 분주해보였다. 평화를 외치며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이라크로 떠났던 임영신 씨. 그리고 한달만에 다시 돌아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고국에 대해 국적포기선언을 했던 그는 또다시 이라크로 떠나려 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던 그 곳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란다. 임영신 씨는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기자가 그에게서 발견한 것은 굳은 신념과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열정’이었다. -반전 운동 전에는 어떤 활동을 했나요? =그 전까지는 주로 시민 운동을 했었어요. 아름다운 재단에서 일하기도 했고 녹색 문화기금 기획 위원, 녹색 대학 운영진이라 할 수 있는 ‘녹운사’로 활동하기도 했죠. 개인적으로는 성공회대 NGO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었어요. 그곳에서 국제 분쟁 등 여러 가지 공부를 하면서, 세계화는 일국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세계화와 그로 인한 여러 가지 폭력들은 근본적인 국가의 폭력에 기인한 것이고, 세계적인 연대 속에서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국제 차원에서의 ‘비폭력 평화운동’이었어요. 전쟁과 폭력에 대한 평화의 투쟁, 거짓에 대한 진실의 투쟁. 이것이 바로 비폭력 평화운동이죠. -이라크 행을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주변 친지들의 반응을 어땠나요? =다들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어요. 제가 이라크 행에 필요한 돈을 지원받기 위해 처음에 아는 분들께 열 통 정도 이메일을 보냈거든요? 그랬더니 일주일 만에 400만원이 모였어요. 그 뒤로도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해주셨죠. 애초 체류 비용 문제 때문에 한 달 정도 머물 생각이었는데, 덕분에 두 달 치 자금을 모을 수 있었어요. 임영신의 홈페이지에는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담긴 글이 유독 많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죽음을 무릅 쓴 이라크 행. 쉽지 않은 결단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아직 어린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심정은 오죽했을까. -그래도 가족들의 반응은 좀 다르지 않았나요? =가족들 역시 전폭적으로 지지해줬어요. 제가 운동을 하는 것에 대해, 다들 인정해 주는 분위기거든요. 작은 아이 같은 경우는 네 살짜린데 “엄마가 이라크 친구들 돌봐주러 간다”며 잘 다녀오라 그러고, 여섯 살짜리 큰 아이도 반전 집회같은 걸 하도 따라다녀서 그런지 역시 씩씩한 반응이었어요. -아무래도 아이들이 마음에 걸리셨을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 이라크 전쟁 때 엄마는 무얼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런 일을 했다고 떳떳하게 할 말이 있어야 한다구요. 그게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어요. -홈페이지에 보니 요르단 암만에서 쓴 글만 있고 이라크 현지에서 쓴 글은 없던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저는 정확히 암만에서 절반, 바그다드에서 절반 활동했어요. 그런데 제가 바그다드에서 보고 듣고 느낀 일들은 아직 글로 쓰지 않았어요. 글을 쓸 여유가 없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에요. 암만에서는 제가 단식 중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여유가 생겨서 글을 썼지만 바그다드에서는 사정이 달랐죠. 하지만 차후에 쓸 계획이에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제게 한 이야기들, 제게 준 글들, 그리고 제가 직접 보았던 것들을 다 모아서 전쟁과 폭력의 참상을 그대로 증언할 생각입니다. 선량한 사람들, 왜 미국이 자신들을 공격했는지 아직도 모른다는 이라크 사람들. 이라크 사람들에 대한 그의 애정이 절절히 느껴진다. -이라크 현지에서는 반전 활동가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물론 환영하죠. 이라크 사람들, 참 순수해요. 거리를 그냥 못 지나가죠. 아이들은 따라다니면서 손 잡자 그러고, 택시를 타도 요금 안 받을 때가 많고, 같이 사진 찍자 그러는 경우도 많고… 마치 이라크 사람들이 폭도들처럼 언론에 비칠 때가 많은데, 그런 폭력적 이미지들은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만들어내길 원하는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심지어는 전에 사진을 찍다가 오해가 생겨 민병대에 잡혀간 적이 있었어요. 대원들이 총을 든 채 우리를 둘러싸고 서있는 살벌한 분위기였죠. 그런데 한 시간 쯤 이야기를 하고 나서는 서로 웃으면서 악수하고 나왔어요.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이라크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에요. -사진을 찍다가 이라크에서 추방된 사람들도 있다면서요? =그건 스파이 혐의가 갔기 때문이에요. 비상시국에는 어느 정도의 국가 통제가 불가피한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라크 국가 자체는 반전 활동가들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이었어요. -그런데 정말로 민간 시설에 대해서도 폭격이 이루어졌나요? =그건 제가 두 눈으로 본 진실이에요. 제가 머물던 호텔에도 폭격이 가해졌어요. 타고 오던 차 뒷 차가 폭격으로 전복되기도 하고… 미국이 NGO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이러면 그 다음 날 NGO들이 머무는 숙소에 폭격이 가해지고, 민간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이러면 민간인 시설에 폭격이 가해지고…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는 말이 곧 폭격을 뜻하는 게 전쟁이에요. 국적포기선언 이후 그의 홈페이지는 욕설로 뒤덮였다. 파병에 반대하는 사람들마저도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마침내 홈페이지는 임시 폐쇄되었고, 임영신 씨는 내일 다시 이라크로 떠난다. 임영신 씨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한국의 이라크 파병 문제를 두고, 국적 포기 선언을 하신 것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여기에 대한 입장이 궁금하네요. =그 문제에 관해서는 며칠 내에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에요. 이라크 사람들의 고통에 비한다면 국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우리의 평화와 국익을 위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명을 침략하는 행위는 국가이기주의에 지나지 않고, 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요. 이라크의 한국 대사관에서는 자국민을 전혀 보호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위성전화를 쓰기 위해 대사관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대사관 출입은 자국민의 당연한 권리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내 막았죠. 뿐만 아니라 대사관은, 현지에 있는 자국민들에 대해 쌀 한 봉지를 제공한 것 이외에는 그 어떤 보호 조치도 취하지 않았어요.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국민을 위협하는 침략 국가들을 위해 파병하는 게 바로 한국이에요. -내일 이라크 출국을 앞두고 계시는데, 앞으로의 계획은요? =지금 이라크에서는 기본적인 의약품이라 할 수 있는 마취제가 없어서 생살을 찢고 수술을 하고 있어요. 필요한 의약품들을 들고 이라크로 갈 생각입니다. 전쟁 전에 ‘적십자사’나 ‘국경없는 의사회’와 같은 몇몇 국제의료단체가 이라크에 들어왔었는데, 지금 다 철수 중이랍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요. 저는 이것이 UN난민보호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지원이 아니에요. 나눔이고, 연대죠. 또 현지에서 전쟁의 참상을 조사해 ‘평화의 증언’을 할 계획이에요. 벌써 민간 시설 폭격과 같은 범죄 증거들이 몇몇 발견된 게 있어요. 이런 것들을 모아 국제전범재판소에 기소를 할 생각입니다. 아쉽게도 임영신 씨와의 만남은 15분만에 끝났다. 이라크 의약품 지원과 관련한 회의 때문에 또다시 자리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인터뷰 도중 기자는 그에게 두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못하고 한국에 머무는 것보다 이라크에서 직접 위험과 맞서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고 했다. 나눔과 연대를 위해 이라크로 떠난다는 임영신 씨. 그가 무사히 귀환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