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한 사람의 기자회견이 전국을 흔들었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에서 법무팀장으로 근무했던 김용철(50) 변호사는 삼성그룹이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조성, 관리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에 따라 비자금의 존재 여부와 사용처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이어지는 비리 폭로, 하나 하나가 ‘메가톤 급’우선 삼성이 정말로 비자금을 조성했는지가 초점이 됐다. 김 변호사는 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이 (자신 명의의 계좌로) 우리은행 삼성센터지점에 거액의 비자금을 은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자소득세 납부 기록 등을 근거로 추정하면 비자금 규모는 50억원 정도다. 김 변호사는 계좌번호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삼성이 계열사 직원들의 차명계좌를 통해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이런 계좌가 1000여개 있다면 총액은 조 단위를 넘어간다. 이에 대해 삼성은 김 변호사의 동의를 얻은 직원 개인이 개설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개인 간 거래일 뿐 비자금 조성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삼성 측의 해명이 개인을 ‘희생양’으로 내세우는 상투적인 방법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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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철 변호사의 2004~2006년 이자소득세 명세서. 발생한 이자소득이 1억8185만4326원에 달한다. |
소위 ‘떡값 검사’ 논란은 삼성 비자금 사태의 파장을 증폭시켰다. 김용철 변호사를 보호하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은 지난달 12일, ‘일부 검사들이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내역, 해당 검사들이 삼성을 위해 활동한 내용을 포함한 증거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공개된 세 사람의 떡값 검사 명단에는 새로 임명된 임채진 검찰총장이 포함돼 세간에 충격을 줬다. 삼성 측은 ‘김 변호사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대응했고, 사제단은 ‘검찰에 명예스러운 자기고백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증거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한편 지난달 26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 변호사는 ▲삼성물산 해외비자금 조성 ▲비자금을 이용한 고가 미술품 구입 ▲사 위장계열분리 ▲계열사 분식회계 등 8가지 의혹을 공개했고 삼성 측과 는 이를 반박하고 나섰다.이해당사자들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비교적 명확해진 사실도 있다. 추미애 전 의원은 11월 2일, 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무렵에 (삼성에서) 도와주려고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심부름 온 사람에게 돌려준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사제단이 공개한 ‘이건희 회장 지시사항 문건’에는 ‘호텔 할인권을 발행해서 돈 안 받는 사람(추미애 등)에게 주면 부담 없지 않을까?’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삼성은 이에 대해 ‘와인이나 호텔 할인권에 대한 언급은, 주었을 경우 문제가 있는지 검토해보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으나, 추미애 전 의원이 돈을 안 받는 사람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같은 달 19일에는 이용철 변호사(전 청와대 법무비서관)도 2004년에 삼성그룹으로부터 500만원을 전달받고 돌려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 변호사는 돈다발과 ‘이용철(5)’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찍은 당시 사진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는 한 간담회 자리에서 ‘내가 500만원 짜리 인격인가 하는 모멸감이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삼성은 회사 차원에서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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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이 2004년 1월 이용철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전달한 상자에서 나온 만원짜리 현금 다발. |
삼성 비자금 의혹이 불러들인 전사회적인 논란
삼성은 기업 이미지 악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지난 11월 5일 홈페이지에 가입한 회원들 중 일부에게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에 대한 삼성그룹의 입장을 담은 자료가 입수돼 SERI 회원님들께 참고로 보낸다’는 단체메일을 발송했다. 이 자료는 삼성이 첫 번째로 내놓은 공개 해명자료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수신에 동의한 회원들에게 ‘주간 하이라이트’ 등 경제 정보메일을 보내지만 이번과 같이 형식을 갖추지 않은 메일을 보낸 적은 없다. 삼성경제연구소 측은 “일반 포탈에도 공개된 자료를 그냥 회원들에게 읽어보라고 보낸 것”이라며 “깊은 뜻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 자료는 김 변호사의 가정 사정 등 개인적인 비판을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어서 ‘핵심을 비껴간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대한변호사협회(변협)도 김 변호사 비판에 동참했다. 변협은 김 변호사가 ‘의뢰인 비밀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징계를 검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부국장을 지낸 정경희 씨는 지난달 15일 에 기고한 칼럼에서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내부고발자’를 보호는커녕 ‘징계’하려는 법조사회 일각의 움직임에 경악했다’는 생각을 밝혔다.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삼성특검법’도 논란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노 대통령 당선축하금’ 논란으로 문제의 당사자가 된 청와대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들어 처음에는 특검법에 반대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도 ‘(삼성비자금 문제가) 대선 전 해결이 어려운 점을 감안할 때 정략적 의도가 개입돼 있다’며 반대의 뜻을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는 16일 ‘삼성 특검법 반대’를 주제로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삼성비자금 의혹관련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은 지난 11월 23일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노 대통령도 27일 결국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는 “우리 사회를 보면 늘 전선이 둘로 갈라진다”며 “보수단체들은 (노 대통령의) 특검 수용을 안타까워한다”고 비판했다. 김 신부는 “주류를 형성하는 사람끼리 공유하는 암묵적인 카르텔이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의 비판 기능, 광고비에 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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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기자회견에서 김 변호사는 <중앙일보> 계열분리는 위장이고 <중앙일보>의 의결권은 이건희 회장에게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
사건을 보도하는 각 언론사의 태도에도 온도차가 있다. 는 11월 24일자 사설에서 삼성특검법은 ‘정치권이 대선을 앞두고 다분히 각 정파들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만들어진 인상이 짙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정파의 어떤 정치적 이해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의 축소보도 의혹은 그 전부터 계속돼 왔다. 는 가 사건이 처음 시작된 10월 30일부터 줄곧 사건에 대해서는 축소해서 보도하고 삼성의 해명에 대해서는 가장 적극적으로 다루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26일자 ‘중앙, ‘삼성 비자금 의혹’ 침묵·축소보도’).이러한 비판에 대해 사회 에디터 이상언 부국장은 “, 같은 시각도 있고 달리 보는 시각도 있다”며 “각자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 보도 태도 비판 기사를 쓴 문현숙 기자는 “물론 논조는 서로 다를 수 있다”면서도 “(는) 삼성과 다른 재벌들을 같은 잣대로 쟀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기자는 “독립언론, 정론지라면 대재벌이라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기자협회는 최근 ‘삼성 비자금 사건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민왕기 기자는 “ 뿐만이 아니라 , 등 다른 언론들도 광고비를 의식해서인지 보도가 소극적”이라 지적하고, “경제지들은 칼럼 등을 통해 삼성을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민 기자는 일부 언론이 결혼 등 김 변호사의 개인적 사정을 기사화한 데 대해 “그런 내용은 핵심이 아니다”라며 “(개인을 다룬 기사를) 쓸 수도 있겠지만 부수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한편 삼성 비자금과 관련해 비판적인 기사를 써온 와 지면에서는 삼성그룹의 광고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에 따르면 10월 1일부터 11월 12일까지 가 34건으로 가장 많은 광고를 게재했다. 는 31건, 는 29건, 는 25건의 삼성 광고를 실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와 은 각각 14건에 그쳤다. 는 ‘의 경우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1차 기자회견 직후인 10월 30일부터 지난 13일까지 15일간, 의 경우 2일부터 13일까지 12일간 삼성관련 광고가 단 한 건도 게재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측은 “20일 즈음 삼성중공업 광고가 한 번 실린 것을 빼고는 오늘(27일)까지 광고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인국 신부는 “와 재정의 삼성의존도는 20% 정도 될 것”이라며 “(삼성은) 광고를 이용해 언론사들을 조였다 풀었다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