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났어요. 취재원이 연락이 안 돼요.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버려요.” “자기가 말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는데요. 어쩌죠?” 기획을 맡은 기자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취재가 안 된다는 겁니다. 편집장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습니다. 도와주지 않는 취재원들이 야속할 뿐. ‘무반응’에 비한다면 ‘비난’은 견딜 수 있는 것일 텐데, 위험을 감수하고 논쟁의 장에 뛰어들어 줄 수는 없는지 아쉬웠습니다. 대학에서 논쟁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대학 언론도 언론인지라 이슈로 먹고 사는데, 이러면 언론도 침체됩니다. 당장 을 봐도, 본부 발표 자료로 1면 머릿기사가 채워지는 경우가 잦습니다. 논쟁거리가 없는 태평성대가 찾아온 것은 아닐 텐데요. 대자보에 ‘포스트 잇’을 붙여가며 토론하던 시절에 비하면 참 재미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습니다. 지난 학기 취재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학관 앞을 지나는 사람을 어렵게 붙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름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은 끝내 거절당했습니다. “제 얘기가 어떤 식으로 나갈지 모르는데, 어떻게 이름을 가르쳐줘요?” 정확한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해온 저로서는 충격적인 답이었습니다. 독자나 취재원을 탓하기 전에 저희 자신부터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믿을 수 있는 기사를 써 왔는지, 서울대의 ‘공론장’이라는 역할을 잘 수행해 왔는지 말입니다. 마침 논쟁거리는 많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얼마 전 끝났고, 대통령 선거가 다가옵니다. 그 전에는 총학 선거도 있습니다. 모두 이번 호에서 관련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얘기해 봐야 말도 안 통할 텐데’라는 사이비 관용이 아니라, 진정 어린 토론이 을 통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그 논쟁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언론의 역할을 다해 독자의 신뢰를 얻는 것, 깊이있는 취재를 위한 첫 걸음일 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