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땅에서 준비하는 새로운 삶의 여명

띠리리리~낙성대역 부근의 조그만 건물 4층, 우렁찬 종소리와 함께 교실 문이 열린다.쉬는 시간, 교실 밖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 한 무리의 아이들은 중앙 홀에서 떠들고 뒹굴며 수업 시간의 지루함을 털어 낸다.여학생들 몇몇은 소파에 모여앉아 수다를 떨고,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꼬마는 교장선생님 품에 안긴다.여느 학교의 쉬는 시간 풍경과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그러나 이들의 웃음 뒤에는 목숨을 건 탈북의 기억이 존재한다.

띠리리리~낙성대역 부근의 조그만 건물 4층, 우렁찬 종소리와 함께 교실 문이 열린다. 쉬는 시간, 교실 밖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 한 무리의 아이들은 중앙 홀에서 떠들고 뒹굴며 수업 시간의 지루함을 털어 낸다. 여학생들 몇몇은 소파에 모여앉아 수다를 떨고,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꼬마는 교장선생님 품에 안긴다. 여느 학교의 쉬는 시간 풍경과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들의 웃음 뒤에는 목숨을 건 탈북의 기억이 존재한다. 어리게만 보이는 아이들도 영양결핍에 의해 성장속도가 저해된 것일 뿐, 사실 스무 살의 어엿한 청년이었다.새터민 청소년들을 위한 기독교 교육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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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여명학교. 건물의 3, 4층을 사용하고 있다.

여명학교는 국내에서 정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을 느끼는 탈북 청소년들을 위해 설립된 대안학교다. 처음에는 ‘자유터학교’라는 이름의 야학으로 시작했는데, 2004년 9월 남서울은혜교회를 비롯한 20여 개의 교회가 교파를 초월해 뜻을 모아 이 학교를 창립했다. 2007년에 들어서며 새터민의 수가 1만 명을 넘어섰음에도 현재 제대로 된 교육 시설은 몇 군데 없는 실정이다. 올해로 3년째를 맞은 여명학교는 새터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통해 널리 퍼지며 명실 공히 최고의 새터민 교육공동체로 자리잡고 있다.’희미하게 날이 밝을 무렵’을 의미하는 ‘여명’이라는 말 속에는, 이질적인 남한 사회에서 어두운 밤과 같이 살아가는 탈북 청소년들이 삶의 새로운 여명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중등반, 고등반, 대입준비반의 세 반으로 나누어진 학생들은 모두 검정고시와 대학 입학을 위한 공부에 매진하며 남한에서의 새 삶을 준비한다. 아직 정규 대안학교로 교육부 인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수업 내용은 검정고시 준비에 맞춰져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두 36명의 학생들이 있었으나 생계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고 지금은 29명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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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3층에는 넓은 강당이 있다. 이곳은 입학식과 졸업식 등 학교 행사의 장소로 사용되고, 탁구와 같은 실내스포츠의 장이 되기도 하며, 댄스 수업의 교실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점심시간을 준비하는 중이다.

여명학교에서는 단지 검정고시 준비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문화생활을 해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토요일마다 격주로 다양한 현장학습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특히 지난 여름까지 매달 첫 주 토요일마다 ‘서울기행’을 하면서 서울의 중요한 유적지들을 탐방했다. 다음 주에는 강원도기행을 할 예정이다. 그 밖에도 서울역 쪽방 도배나 호스피스 봉사와 같은 활동에 참여하고, 유명한 뮤지컬이나 미술 전시회를 보러 가기도 한다.항상 경쟁해야 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여명학교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남한으로 따지면 한창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을 20대 초반이다. 그러나 그들은 북한에서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밟지 못하고, 탈북 과정에서도 교육 공백기를 갖게 돼 20여 년 동안 공부해 본 경험이 전무하다. 스무 살 청년이 새로운 사회 속에 홀로 남겨져 생계도 마련하고 집안일도 모두 도맡아야 되는 상황 속에서, 중학 수학문제를 붙들고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이런 공부에 익숙한 남한 학생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도 그들에겐 버거운 짐이다. 여명학교에서 논술을 가르치고 있는 변정훈 선생님은 “애들을 가르치는 일이 단지 영어나 수학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는 사상 자체와 싸우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며 아직 경쟁에 익숙하지 못한 새터민 청소년들의 힘든 상황을 털어놓았다. 각자가 노력한 만큼 자기 몫을 갖는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낯설어 공부를 하다가도 쉽게 포기해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유랑생활을 많이 해서 남한에 적응하고 자기발전을 꾀하기보다 다른 곳으로 도피하려는 성향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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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고 깔끔한 여명학교의 교실

사회의 일꾼으로 자라나는 학생들

하지만 대부분이 사회생활을 해보고 온 학생들이라, 남한에서는 졸업장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고 의지를 갖고 공부하고 있다.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 나갔던 학생들도 최소한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학교로 돌아오곤 한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여명학교의 정규 과정을 거쳐 대학에 진학한다. 2005년 2월 5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제1회 졸업식을 시작으로 올해는 15명이 졸업할 예정이다. 이미 이번에 서강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수시 전형에 합격한 학생도 꽤 된다. 첫 졸업생들은 어느덧 대학 3학년이 되어 취업준비를 하고 여름방학에는 인턴사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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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학교 변정훈 선생님. “아이들이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어엿한 사회의 일꾼으로 자라나는 것을 볼 때마다 교육의 뿌듯함을 느낍니다.”

전임교사 11명, 강사 12명으로 이루어진 여명학교 선생님들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졸업하는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마주할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 “21살 때 여명학교를 들어와서 작년에 23살의 나이로 졸업한 남학생이 있어요. 북한에서도 학교를 전혀 다녀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는데 여기서 3년 동안 과정을 마치고 성균관대에 합격을 했죠. 졸업식 때 얘가 양복을 입고 앞에 서있는데 이제 자기 앞가림을 하는 사람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뿌듯하더라고요. 어엿한 청년의 모습에 이런 게 교육이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지난 졸업식을 회상하던 변정훈 선생님은 졸업한 학생들이 음료수를 사들고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정말 기쁘다고 한다.통일을 향한 한 걸음현재 낙성대에 위치한 여명학교는 내년에 명동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처음에 여명학교를 설립한 교회 중 하나인 높은뜻숭의교회에서 장소를 무상으로 개방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교회는 일요일만 사용하므로 평일은 여명학교를 위한 장소로 사용하라는 것인데, 지금 있는 봉천동 건물의 임대료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학교 측으로선 매우 고마운 제안이었다. 내년에 이전을 하고 나면 여명학교는 선생님과 학생 모두 증원할 계획이다. 학생은 50명으로 늘리고 교육부에서 정식으로 학력 인가를 받을 수 있는 틀을 갖춰나갈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2008년에서 2010년 사이에 학생 정원을 100명까지 늘릴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 때가 되면 새터민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선교사 자녀들도 함께 7:3의 비율로 통합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사실 인원을 더 늘려 달라는 요청도 많지만 학생들을 학업의 측면뿐만 아니라 전인적인 측면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위해 목표를 100명으로 잡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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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학교의 우기섭 교장선생님. “새벽에 해가 뜨기 전에 나타나는 모습처럼 통일의 역사가 이뤄지기 전에 준비하는 불빛, 바로 그것이 여명학교입니다.”

여명학교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새터민 청소년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나,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통일을 준비하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새터민 청소년들을 가르치며 얻은 다양한 노하우들은 통일 이후에 엄청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명학교의 선생님들은 힘주어 말한다. “통일이 되면 누군가는 북한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일은 다른 어떤 나라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이죠. 여명학교는 지금은 30명을 가르치고 있지만 더 큰 관점에서 보면 북한의 1만 학교를 품는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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