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장관 재직 중 북한과의 많은 실무협상을 지휘한 경험에서 볼 때, 7년 전과 비교해 이번 정상회담의 분위기나 북한의 협상 태도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2000년에는 환영 행사에서 ‘선군정치 결사옹위’ 등 다소 불편한 구호도 난무했는데, 이번 정상회담 환영 행사에서는 시민들이 ‘환영’ ‘조국통일 만세’ 등의 다양한 구호를 연호하며 남측을 뜨겁게 맞이했다. 노 대통령도 남북관계에 있어 김대중 전 대통령 못지 않은 상당한 이론가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불꽃 튀는 논쟁을 여러 차례 벌였다고 들었다. 북측의 협상 태도도 많이 유연해졌다. 그 결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들이 담긴 이번 선언이 나올 수 있었다고 본다. 일부 언론이 의전상의 문제를 지적했으나 적절하지 못했다.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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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현 상임의장은 “남북 경협은 그 자체 이상의 의미가 있는 사업”이라며 군사적 긴장 완화 등 남북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윈-윈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경제협력 통한 ‘적극적 평화 만들기’가 요구되는 시대
경제협력을 통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얻게 되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여론도 있다. 경협이 한반도에 미치는 파급 효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경협을 통해 남북이 경제적으로 밀접한 사이가 되면 그 관계 자체가 평화적으로 유지된다. 경제적으로 돕고 도움 받는 관계에서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서로가 불편한 일이 있어도 참게 된다. 남북교역액은 연간 13억 달러 정도다. 북한의 연간 무역액인 40억 달러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지만, 연간 7천억 달러에 달하는 남한의 총 무역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남북관계 진전으로 상호간의 교역액이 증가하게 되면 서로 도저히 군사적으로 위협적인 행동을 할 수 없게 되는 단계에 이를 것이다. 과거 한중관계도 경제교류 활성화를 통해 적대관계에서 평화적 공생관계로 전환됐다. 현재 남한의 국방 예산은 한 해 예산의 10분의 1인 25조원에 달하고 있다. 반면 남북협력기금은 국방비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조원대 규모다. 경협을 통해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안보 불안이 사라지면, 국가신용등급이 올라가 수출도 증가하고 경제 규모도 커질 것이다. 적은 돈으로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수동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작업이다.이번에 남북 정상은 해주를 비롯한 황해도 인근에 ‘서해평화협력 특별지구’를 조성하고, 남포와 안변에 조선소를 건설하며 백두산 관광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것이 기존의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과는 어떤 관계를 가지게 되나?해주 인근에 특별지구를 조성한다는 것은 그동안 ‘점’ 형태로 존재하던 개성공단 사업을 ‘선’의 형태로 뻗어나가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남포에 조선소를 건설하면 그 선은 더욱 연장될 것이고, 이는 동해안 개발과 백두산 관광으로까지 이어져 ‘면’으로 확장될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햇볕정책을 천명한 이래 남북 경협에서 ‘점·선·면 동시발전전략’을 기본 모델로 삼아왔다. 또한 서해특구를 통한 경협은 육상에서의 군사적 긴장 완화로도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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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일 서울을 출발한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고 있다.(사진 왼쪽) 이튿날 아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 대통령이 묵고 있는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을 찾아 회담을 나눴다.(사진 가운데) 방북 마지막 날인 4일 남포의 평화자동차 공장을 방문한 노 대통령이 작업장을 둘러보고 있다.(사진 오른쪽) |
“경협 통해 ‘상호 이익 증진’과 ‘군사적 긴장 완화’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경협의 ‘퍼주기’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동안 진행된 경협 사업들이 군사적인 보장으로 이어지는 효과가 잘 눈에 띄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남북 경협은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와 비슷하다. 들인 비용이 다시 편익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5년, 10년이 걸린다. 인도적 지원과 경협사업들이 지속되는 동안 북한 주민들의 남한에 대한 적개심은 많이 누그러졌다. 지금 대북 지원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앞으로 ‘그때 잘못 생각했구나’ 하고 후회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남북 경협 확산 과정에서 북한 지역의 국토개발이 가속화돼 환경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요즘에는 ‘지속가능한 개발’이라고 하는 개념도 있고, 오히려 북한은 국토개발에 있어서 후발주자에 속하기 때문에 미리 그런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과거 통일부장관 시절 북한으로 도로와 철도를 낼 때도 환경부와 충분히 협의를 거쳤다. 시민단체의 제안대로 습지대는 비켜가고, 야생동물 통행로도 만들었다. 예산이 좀 더 들기는 했지만 원칙을 지켰다. 앞으로도 그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언론 관심이 예전만 못한 것은 그만큼 남북 간 만남이 일상화됐다는 방증”2000년에는 언론들이 정상회담을 대서특필하고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는데, 올해는 관심에서 조금 밀려난 것 같다. 일부 보수언론은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가하고 있기도 하다. 보수단체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2000년 무렵만 해도 통일은 담론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첫 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이 현실 차원의 문제로 떠오르자, 많은 사람들이 이념 혹은 신념의 혼란을 경험했다. 특히 전쟁 때 희생을 겪어 국가로부터 존경받던 분들은 자기 정체성에 큰 혼란을 느꼈던 것 같다. 이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냉전시절 반공으로 먹고 살던 사람들도 남북관계가 갑자기 화해무드로 돌변하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편 과거에는 장관급 회담만 해도 큰 뉴스가 됐는데 이제 신문 1면은커녕 5, 6면으로 밀려나기까지 한다. 하지만 남북 간의 대화를 다루는 언론의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남북 간의 만남이 ‘일상적인 것’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는 징조다.하지만 남북관계를 두고 추측성 기사나 오보를 일삼는 언론들의 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사실 관계를 잘못 보도하는 오보라기 보다는 왜곡성 보도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한다. ‘국민 동의가 없었다’ ‘임기 말이라서 안 된다’ 등을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남북관계는 흐름을 잘 타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뀌면 임기 초에는 여기저기 눈치보느라 아무 일도 못 한다. 국제정세는 급격하게 변한다. 시기를 놓쳐버리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한편으로는 언론의 비판적인 기사들에 현 정부와 언론사들 간의 불편한 관계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국회 동의 있으면 정권 바뀌어도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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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대통령의 방북을 환영하는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사진 위쪽)과 남북 정상의 선언문 발표를 남쪽에서 TV 생중계를 통해 지켜보고 있는 모습(사진 아래쪽)이 대비된다. |
다음 정권에서 정상회담 합의사항이 이행될지 의문을 제기하는 지적들도 있는데.
11월 국방장관회담에서 경협을 뒷받침하는 군사적 보장을 논의하고, 이어서 부총리급 경제회담과 총리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북한은 약속을 지킬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이 결단한 사항은 북한 사회에서 법률 이상의 구속력을 가진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반대의견도 있고 비판도 있을 수 있다. 남북 간의 합의에 국민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집행의 구속력을 부여하기 위해 작년 개정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민에게 중대한 부담을 지우거나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비준에는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정부는 다소 불편하겠지만 차기 정권에서도 흔들림 없이 이번 합의사항들이 추진되게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절차를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남북 정상 간의 합의에 우호적인 정치세력을 규합하면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남북 간의 합의가 국회 동의를 받아 법적 효력을 가지게 된다면 다음 정권도 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차기 정부가 평화체제로의 전환 과정에 있는 남북 관계를 과거로 되돌리려고 한다면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그야말로 탄핵감이다.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남북 당국 간의 회담 외에도 시민사회와 문화계, 경제계 인사 등이 참여한 분과별 회담도 있었다. 분과별 회담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나?특별수행원 49명이 7개 분과로 나눠서 분과별 회담에 참여했다. 남북 간의 교류협력을 활성화시키는 데 있어서 서로의 관심을 확인하고 의제들을 발굴하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을 갖는 정도의 성격을 가진 자리였다. 북한은 당국과 민간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우리사회에서는 민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남북관계에서 민간부문의 요구들을 관철시켜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특히 이번 분과별 회담에서 경제계가 남북 경협에서 통행 문제나 통신 문제, 통관 문제 등을 해결해 주기를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이번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 주변국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지만 그 속 사정은 다들 다를 것 같다.한국이 정상회담으로 북한의 숨통을 너무 틔워주면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잘 안 풀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남한만의 지원으로는 한계가 있다. 북한은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에서 거액의 차관을 얻는 게 목표다. 그래서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이 한반도 상황을 주도한다면 이는 간단히 말해 미국적 가치의 확산인 셈이다. 중국은 당장 베이징 올림픽을 무사히 잘 치러내기 위해 남북관계의 진전을 바라고 있다. 러시아는 남북관계가 진전돼 남북철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연결되면 막대한 통행료를 받을 수 있다. 일본이 문제지만, 일본도 동북아 문제에서 자신이 소외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대세를 정면으로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변국의 정책 방향은 이처럼 명확하다. 국내 보수층도 대세가 무엇인지 잘 읽어야 한다.“대학생들도 통일문제에 대해 긴장감 가지고 사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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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현 상임의장은 대학생들이 앞으로 살아갈 시대는 ‘통일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대학생들에게 통일에 대한 능동적이고 깊이있는 고민을 주문했다. |
과거 남북이 대결하던 시대에는 대학생들이 구심점이 돼 통일운동을 주도한 반면 현재는 그런 역할이 많이 축소된 측면이 있다.
과거 냉전시대 통일문제가 담론 수준에 머물러 있을 때는 대학생들 사이에 통일에 대한 사명감을 느끼고 이를 고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남북통일의 가능성이 더 커진 지금 통일문제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역설적인 현상이다. 더 이상 심각한 안보 위기가 조성되지 않음에 따라 통일의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하게 된 것을 원인으로 생각한다.그렇다면 평화체제로 가는 과도기에 있는 현 시점에서 대학생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나?국제정세가 탈냉전체제로 접어든지 오래 됐고, 한반도에도 탈냉전 무드가 고조되고 있는 지금이 그야말로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다. 지금 대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가 되면 통일에 대해 훨씬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통일 과정에서 경제통합 위해 현장에서 뛰어야 할 것이고. 지금 대학생들이 ‘통일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을 모르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일기예보에서 큰 비가 온다고 계속 알려줘도 흘려 듣는 셈이다. 20대는 통일을 현실로 겪게 될 세대다. 대학생들이 통일 문제에 대해 좀 더 긴장감을 가지고 사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