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총학생회장과의 인터뷰는 2월 7일 경에 있을 예정이었다. 그날 약속을 잡고 인터뷰를 하려고 했으나 연락이 오지 않아 끝내 기사마감일인 25일까지 미뤄ㅣ고 말았다. 25일밤 아니 26일 자정, 총학생회장 구정모…기다리고 기다리던 그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방금 정리 집회를 마치고 숨돌릴 여유도 없이 총학생회장(보통 ‘총’이라고 부른다.)이 던진 첫마디였다. 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 지난 2001년 9월호에 장종오(당시 총)와의 인터뷰도 거의 이 시간에 했었다. 총은 무지 바쁜 사람이다. 이렇게 밤늦게 인터뷰를 해야하다니 말이다. 본 기자 ‘왜 저번에 연락도 안해 줬느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세 번이나 총학실을 찾아갔는데 한번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귀인을 만나려면 三顧草廬는 기본이겠거니 하고 속으로 삼켰다.그리고 웃는 얼군엔 절대 침 안 뱉는다. 강금규(이하 강):저녁은 드셨나요? 총학생회장(이하 총):아직 못 먹었습니다.밥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강:그럼 잘 됐네요.이 코너는 먹으면서 진행하는 거예요. 옆에 있던 최기자 얼른 하림멕시칸에 전화를 걸어 반반(?)과 맥주를 시킨다. 그는 많이 배가 고팠나 보다.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인터뷰 내내 젓가락을 놓지 않았다. 강:총학생회장 ‘구정모’라는 이름이 법대 학생회장 ‘구정모’라는 이름보다 주는 부담감은 어느 정도인지? 총:엄밀히 말하면 3월부터 임기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으니까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단대에 있을 때는 지금보다 학우들을 더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법대 A반 학생회장이었을 때는 한층 더 그랬겠죠. 그리고 활동의 범위가 훨씬 더 넓어지고 업무부담도 많아졌습니다. 강:지난 법대 학생회장으로서 1년의 활동에 점수를 매긴다면요? 총:(머리를 긁적이며)글쎄요. 답하기가 애매한 질문인데요. 못한 게 많다고 생각해요. 학생회장이 되면서 다짐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3월을 지나면서 많이 무너졌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강의실을 돌아다니겠다, 술자리에도 많이 참석하겠다 등등의 일들을 많이 지키지 못했어요. 이런 일들이 많이 생각나네요.(긁적긁적) 그는 인터뷰 내내 젓가락질하랴, 머리 긁으랴, 대답하랴 상당히 바빴다. 참고로 그는 머리를 상당기간(독자의 상상에 맡김)감지 못했다고 한다. 연달아 있는 새터와 잦은 외부 업무 등으로.. 강:어떤 계기로 소위 ‘운동권’ 학생이 되었는지? 총: 법대에 입학해서 ‘법대노래패’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접해보지 못했던 민중가요를 듣고 가슴 깊이 느껴지는 그 무언가 있었죠. 직접적인 계기는 98년 3월 도원동 철거촌에 갔던 일 때문이었죠. 그 때 철거촌 주민 중에 두 분이 용역깡패에게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폭력에 휘둘렸어요. 그 일을 겪으면서 가슴속에 불끈하는 무언가를 느껴졌죠. 그러면서 선거를 통해 선배들과 많이 이야기도 나누고 고민도 많이 하면서 본격적으로 뛰어 들게 되었죠. 강:작년 선거 개표 때 아버님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아버님의 반대가 심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총: 집에서 반대가 상당히 심했어요. 법대 학생회장을 결의했을 때는 집에 편지 하나 달랑 쓰고 집을 뛰쳐 나왔었죠. 그 당시에 아버지께서 ‘이 녀석이 3,4학년이 되면 그만 두겠지’하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근데 그렇게 하고 집을 나왔으니 당시 화가 많이 나셨어요. 지금은 저를 많이 이해해 주시죠.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자세히 무엇인지 알고 계시고 학내에서 발행되는 매체도 꼼꼼히 읽어 보세요. ’00 단대 학생회장은 너랑은 좀 다른 것 같더라’는 말씀도 하셔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어요. 술은 얼마 안 마셨지만 모두 피곤한 몸에 취기가 확오른다. 그는 이미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이제 인터뷰는 더 진솔해진다. 강:왜 연대회의죠? 본 기자 술이 취했나보다. 방금 던지 질문은 좀 부적절한 질문이었다. ‘연대회의라는 정파에서 활동하시는 이유가 무엇이죠?’라는 질문이 더 정확한 질문이 되겠다. 총:앞서 말했듯이 1학년 때 선거에 뛰어들면서 많은 고민을 했었죠. 선본 활동을 하기 전에는 다양한 정파에 소속되어 있는 선배들에게 제안을 받았어요. 2,3학년을 거치면서 ‘아 이거구나’하는 확신이 들었어요. 강:보통 자신의 과나 반 선배가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나요? 총:법대의 경우 반학생회 뿐만 아니라 동아리도 단대 학생회를 꾸리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쳐요. 그래서 다양한 생각을 가진 선배들과 많은 경험을 하게 되죠. 노래패의 경우에 제가 지금 속해 있는 정파가 아닌 선배들이 오히려 더 많았어요. 그 부분에 있어서 많은 장점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활동에 있어서 가장 믿음을 주었던 선배의 영향이 크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네요. 본 기자 작년 총학생회 선거의 선거관리위원으로 활동했었다. 갑자기 선가 때가 생각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작년 선거에 대해 질문해보기로 작정했다. 강:지난해 총학생회 선거는 개인적으로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총:쟁점이 없는 선거였다고 생각해요. 왜곡된 차별성을 가지고 학우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선거라는 공간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없었어요. 총학생회 선거가 갈수록 선본간의 파행적인 불신과 적대로 최소한의 동지적 유대감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학우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제대로 된 논점이 아니죠. 학우들과 함께 못하는 것은 운동하는 사람들의 몫이죠. 이것은 궁극적으로 총학생회가 짊어져야 할 일인 것 같아요. 강:어쩌면 한 해 총학생회장으로서의 목표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총:집회에 나가면 우리 학교는 타 학교와 다르게 총학생회 깃발 아래 함께 투쟁하는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죠. 무너져 가는 총학생회 운동의 복원을 위해서는 통합력 있는 학생회의 모습이 필요하다고 봐요. 정파간의 싸움으로 얼룩져 학생회 선거가 왜곡되면서 학우들과 괴리되며 학우들을 단절시켜 버리는 모습들을 하루 빨리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요. 총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공명(共鳴)이라고 한다. 왠 공명? 아마 노래와 관계될 것 같다는 어림직작을 해본다. 강:유뉴스(Unews)와의 인터뷰에서 공명을 매우 강조하셨는데, 어떤 의미에서 공명을 강조하신 거죠? 총:공명은 ‘같이 울린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노래패에서 민중가요를 부를 때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다같이 울려 조화를 이루면 가슴이 찡한 그런 느낌이 들잖아요…공명은 저의 ‘운동의 상’이라고 표현하면 정확한 것 같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와 같은 고민을 하며 내 삶이 그와 공명할 때 나아가 대중의 삶과 나의 그것이 공명할 때 제가 하는 투쟁에도 의마가 있는 것이죠. 강:그러면 학우들과 어떻게 공명하실건가요? 총:학생자치에 의한 민주대학을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학운영에 학생들이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함은 필연적인 것이죠. 그래서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우들의 다양한 고민을 아우르며 공론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하죠.며칠 동안 머리를 감지 못해 그는 연신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민중가요 중의 하나가 법대 노래패에서 만든 ‘첫마음’이다. 이제 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월부터 그는 더 바빠질 것이다. 언제나 ‘첫마음’을 먹었을 때 생각하고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서 관악 2만 학우들과 한 약속을 지켜 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