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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 대표 선언을 하고 있는 미국의 Steven 씨 |
학교 게시판에서 처음 본 것이 시작이었다. 여러 나라 국기와 함께 앵커, 카메라맨 등의 사진들이 그려진 화려한 포스터였다. ‘Vision21 Youth Forum’이라고 쓰여진 포스터에는 언론에 관심있는 대학생들을 위한 행사가 수원에서 치러진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대학 언론 기자들이, 그것도 다섯 나라 사람들이 모인다는 말에 나는 신청서를 냈다. 엉망이었던 면접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행히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번 행사는 경기도 관광공사와 대학내일에서 주최한 것으로, 경기도 관광의 해를 맞아 한 민족의 분단, 대결상황과 동시에 IT와 같은 첨단과학이 공존하는 경기도의 상황을 보여준다는 목적에서 개최되었다. 보다 넓게는 각국 대학 기자들간의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동시에 동북아시아 국제관계 속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 토론해 본다는 목적도 갖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5개국에서 참가자들이 온 것도, 6자 회담에 참석한 국가들중 북한을 제외한 국가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행사에는 국내에서 20여명, 해외에서 30여명이 참가했다. 행사에 가기 전에 국내참가자들끼리 워크샵을 한번 가질 기회가 있었다. 본 행사에 앞서 미리 주제에 관해 짧은 기사를 쓸 기회가 있었는데, 영어가 약했던 나는 은근히 다른 참가자들의 영어 실력에 놀라는 한편, 본 행사에서 해외참가자들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남은 기간동안 걱정만 커질 뿐, 나는 아무것도 더 이상 준비하지 못한 채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첫 만남, 다양한 경험의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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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와 스태프들. 가운데가 기자와 처음 만난 하야토 씨이다. |
어색한 정장을 입고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 행사장에는 이미 많은 외국 참가자들도 도착하고 있었다. ‘내가 진짜 국제행사에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설레었다. 간단히 등록을 마치고 방에서 행사장으로 내려오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왠 남자가 “헬로”하고 인사한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참가자, 일본의 주오 대학에서 온 하야토였다. 정치학을 전공한다는 그는 귀여운 외모 덕분에 행사 내내 ‘해리포터’라는 별명에 시달려야 했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만큼 참가자들의 면면도 다양했다. 나와 친했던 중국에서 온 푸 하오씨는 중국의 광저우에서 태어나 베이징에서 살다가 지금은 마카오에서 공부하고 있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또 다른 중국 참가자 왕 자오웨이씨는 베이징대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중일교류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었다. 일본에서 온 후지모토 타로씨는 황족, 귀족출신들이 많이 다닌다는 가쿠슈인을 다니고 있으며, 지금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는 ‘언론인’이기도 하다. 나를 ‘Prince Dicease’라고 놀리곤 했던 일본 참가자 치카 씨 역시 게이오 대학 내 언론의 편집장이었다. 그 밖의 국내외 참가자들도 영어에 능통함은 물론, 대개 학교 신문사, 방송사의 편집장이거나 고문들이거나, 국제회의 참가 경력이 여러번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참가자는 이번 행사가 끝나고 부산에서 열리는 APEC에서 통역으로 일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미 코리아타임즈에서 인턴으로 일했으며, 블룸버그에도 지원서를 냈단다. 고작 나보다 1살 많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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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작성을 위한 조별 회의 중 |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환영사와 멋진 퓨전국악공연, 그리고 맛있는 저녁식사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드디어 본격적인 행사에 들어가 참가자들을 5개의 조로 나눈 뒤, 첫 회의를 가졌다. 조원들 중 편집장을 비롯해 각자 역할을 배분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 물론 첫날이었던 만큼 그냥 잠들지는 못했다. 외국 참가자들과 함께 새벽 4시까지 서로 이야기 하고 게임을 하며 놀았다.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각국 문화를 직접 볼 수 있었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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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은 일어나자마자 바쁜 일정이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해외 연사의 강연이 시작되었는데, 나는 자다가 무려 8분이나 지각하고 말았다. (8분은 관악타임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 모든 참가자들은 강의에 열중하고 있었다.) 연사는 국제위기기구의 동북아시아사무소 소장인 피터 벡(Peter Beck)씨였다. 동북아시아 국제 관계와 미디어에 대해 강의를 한 그는 동북아시아의 연대를 가로막는 요인들을 설명한 뒤, 이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언론의 역할을 역설했다. 그는 “동북아시아를 가로지르는 파이프라인 부설을 둘러싼 분쟁, 중국과 대만 및 남한과 북한의 분쟁 등이 동북아시아의 연대를 가로막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이를 위한 기반으로서 여러분과 같은 예비 언론인들의 모임과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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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의 밤 행사. 각국 전통의상을 입고 흥겹게 놀고 있다. |
삼성전자를 방문해 삼성이 자랑하는 생산제품들과 공장을 구경한 참가자들은, 드디어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던 ‘문화의 밤’ 행사를 가졌다. 각국 참가자들은 자기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고 와서 참가자들의 갈채를 받았다. 화려한 한복이나 빛나는 치파오, 또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푸른 드레스를 입고 온 참가자들에게는 탄성과 함께 플래쉬가 마구 터졌으며 마치 횟집에서 볼 수 있는 차림의 옷을 입고 등장한 일본 참가자에게는 폭소가 터졌다. 각국 대표들이 준비한 참가자들은 서로의 전통의상을 자랑하며 사진 찍는데 여념이 없었다. 참가자들은 각기 모여 장기자랑을 펼쳤는데 일본 참가자들은 각기 기모노와 유카타, 그리고 ‘횟집 옷’을 입고 나타나 패션쇼를 벌이기도 했고, 한국 참가자 한명은 ‘이등병의 편지’를 약간 어설프게 하모니카로 불러 외국 참가자들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행사는 역시 조별 회의 및 기사작성이었다. 나는 다른 한국 참가자와 함께 피터 벡의 강연을 정리하고 그를 인터뷰한 기사를 작성했다.분단 현실을 직접 체험하다셋째 날은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한 날이었다. 바로 비무장지대를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기대와 달리 판문점에 가지 않게 되어 약간 실망했지만, 그래도 제3땅굴이나 도라산을 간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설레었다. 차 속에서 내 옆에 앉은 푸 하오와 함께 한국과 중국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군인들이 버스에 검문하러 올라오고 있었다. DMZ에 들어온 것이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제3땅굴이었다. 주의사항을 들은 뒤, 드디어 제3땅굴로 들어가게 되었다. “1시간 동안 1만 명의 병력은 물론, 야포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설명을 예전부터 여러 번 들었기에 규모가 매우 클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 정도가 허리를 구부리고 지나갈 수 있을 크기였다. 들어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니 ‘군사분계선 200m 지점’이라고 적혀 있었다. 비록 지하였지만 북한 땅 앞 200m까지 와 있다는 생각을 하자 긴장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너머 땅굴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참가자들이 단지 왔다갔다는 것으로만 만족할 뿐, 사진찍는 것에만 정신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웠다. (더구나 땅굴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에 땅굴에서 올라온 중국 참가자들은 카메라를 압수당할 뻔했다.) 도라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북한의 모습과 함께 바로 옆에 있는 ‘통일 염원의 상징’ 도라산역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 역을 통해 연결된 경의선이 통일의 기반이 되고, 나아가 중국으로까지 기차들이 다닐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중국에서 온 푸 하오에게 한국에 대해 물으니 “중국과 너무 닮았다. 이런 나라가 통일만 된다면 중국과 더욱 친하게 지낼 수 있을텐데…”라고 대답했다. 러시아에서 온 맥심은 내가 가져간 디지털 카메라를 보면서 “러시아에서 디지털 카메라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학생들은 엄두도 못낸다. 또 학생들도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다. 러시아의 급선무는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것인데 한국이 도와준다면 많은 힘이 될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즐거웠던, 그러나 아쉬움도 많이 남는 Vision 21다음 날의 폐회식을 끝으로 모든 일정이 끝났다. 집에 돌아가 누우니 피곤이 몰려온다. 3일 동안 어떻게 힘든 일정을 치룰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궁금해진다. 즐거웠던 행사였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영어 실력이 부족했다는 점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그런대로 통했지만, 외국 참가자들과 서로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통일문제 등 조금만 깊은 내용을 말하려 해도 대화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서로 토론하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도 아쉽다. 그럼에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러한 국제적인 행사에 반드시 참가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에서만 보았던 다른 나라에 대해 직접 듣고,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갖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앞으로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학생이라면, 이런 기회를 통해 미리 ‘감’을 익혀보라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