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퀼로트와 로베스피에르, 프랑스 혁명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우머니스트입니다.’ 앨리스 워커
APEC 반대 그 시위 현장에 가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우머니스트입니다.’ 앨리스 워커

혹시 ‘우머니스트’라는 말을 아는가.‘페미니스트’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어도, 우머니스트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한 이가 많을 것이다.‘우머니스트(Womanist)’를 만든 이는 그것을 ‘흑인 또는 유색인종의 페미니스트를 의미하며 용기있고 과감하며 자기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여성’ 이라고 스스로 정의한다.이 용어는 이번 인물열전에서 소개하려 하는 인물, 앨리스 워커가 작품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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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머니스트’라는 말을 아는가?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어도, 우머니스트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한 이가 많을 것이다. ‘우머니스트(Womanist)’를 만든 이는 그것을 ‘흑인 또는 유색인종의 페미니스트를 의미하며 용기있고 과감하며 자기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여성’ 이라고 스스로 정의한다. 이 용어는 이번 인물열전에서 소개하려 하는 인물, 앨리스 워커가 작품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저명한 소설가이자, 동시에 ‘우머니스트’로서 모든 여성들의 평등과 자유를 위해 운동하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앎을 통해 삶의 목적을 이루려 하는’ 사람이었다. 앨리스 워커는 1944년 조지아에서 8남매를 낳은 가난한 흑인 소작농 부부의 막내로 태어났다. 가족 중 앨리스 워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고조할머니 메리 풀과 외증조할머니 탈루하였다. 19세기 내내 미국 남부에서 노예였던 메리 풀에게는 메리 풀이 갖고 있던 근면함과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그리고 체로키 인디언이었던 탈루하에게는 인디언들의 문화적 전통과 샤머니즘 등에 영향을 받았다. 그녀의 이름인 워커(Walker), 즉 걷는 사람이라는 뜻도 버지니아에서 조지아까지 걸어서 이주했던 메리 풀을 기억하고자 지은 이름이다. 앨리스 워커의 유년기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은 그녀의 한쪽 눈이 실명한 사건일 것이다. 5살 때 오빠와 ‘인디언 놀이’를 하던 중, 오빠가 쏜 장난감 총에 맞아 그녀의 한 쪽눈은 시력을 잃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고독한 독서의 세계에 빠져들었으며, 그녀의 눈에 남은 흉터에 대한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앨리스 워커는 스펠만 칼리지, 사라 로렌스 칼리지에서 공부하게 된다. 급진적인 역사가 하워드 진 등의 영향을 받아 대학시절 킹 목사가 주도한 ‘흑인 민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했으며 유명한 워싱턴 평화행진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또한 낙태를 하게 되는 아픈 경험을 겪게 되며, 이로 인한 슬픔과 공포, 분노 등을 표현하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에 눈뜨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잠깐 뉴욕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는 미국 남부에서의 인권 운동에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녀는 미시시피 주에서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유권자에 등록하도록 권유하는 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녀는 이 인권운동을 하면서 그녀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으며, 남편의 권유와 격려를 통해 본격적으로 문학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60년, 그녀는 첫 장편소설 「그랜드 코플리지의 제3의 삶」을 출판하였다. 그녀는 처녀작에서 백인들의 억압과 멸시 아래 남편들이 아무렇게나 터뜨리는 극도의 분노와 화를 전부 참고 받아주며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마거릿과 그녀의 며느리 멤을 보여준다. 워커는 소설에서 백인과 흑인, 남편과 부인의 이중적인 억압 기제 속에서 순종, 고난의 감수, 맹종을 통해 끝까지 ‘현모양처’의 삶을 노력했던 흑인 여성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나타낸다. 이 때문에 그녀는 문학적인 찬사들을 얻기도 했지만 여러 흑인단체들로부터 흑인 여성들의 모습을 거칠게 표현했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앨리스 워커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컬러 퍼플」과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 일 것이다. 스필버그에 의해 영화화 되었으며 퓰리처상을 받은 「컬러 퍼플」은 앨리스 워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를 ‘아무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도록’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셸리는 의붓아버지에게 겁탈을 당해 두 아이를 낳은 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혼하게 된다. 새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착한 성품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나 남편이 과거에 연모했던 여자 슈그와 만나게 되면서 그녀로부터 새로운 삶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전통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남성에 종속되지 않은 스스로의 삶에 대해 깨우쳐 나가는 흑인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 「컬러 퍼플」이 앨리스 워커의 대표적인 소설이라면,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는 그녀의 대표적인 수필집이다. 그녀가 ‘우머니스트’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드러낸 것도 이 책에서이다. 그녀는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강압을 주장하는 백인 중심의 페미니즘에서 벗어나, 흑인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일상들(예컨대 흑인 여성의 정체성, 글쓰기, 정치 참여 등)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밝히고 있다. 그 뒤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함께 편집장으로 있던 잡지 「미즈」에 우머니스트에 관련된 글들을 여럿 기고하였으며 제3세계 여성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운동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강압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여성 할례에 대한 반대운동에 매우 적극적이다. 그녀가 쓴 소설 「은밀한 기쁨을 간직하며」는 어릴 때 여성 할례를 받았으나 성장해 가면서 여성 할례의 부당함을 주장하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여성에 대한 작품이다. ‘우머니스트’ 앨리스 워커는 자신의 작품세계에서 그 영역을 더욱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흑인을 비롯한 제3세계 여성들의 해방을 위해 글을 쓰고 시위를 해왔던 그녀는, 이제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적인 고통들을 치유하는 데에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바로 작년에 나왔던 소설 「새로운 나여, 안녕」에서는 50대 여성이 아마존 등을 여행하면서 삶의 상처들을 만나는 끝에 불교식의 명상과 인디언들이 사용하는 주술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의 상처들을 치유한다는 내용이다. 이제 그녀는 새로운 대상, 백인들로부터 ‘미신’으로 억압받아오던 불교나 샤머니즘을 해방시키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작년에 한국에 왔을 때, 앨리스 워커는 강연에서 “땅은 살아 숨쉬고 있다. 모든 것이 살아있지 않은가. 인간은 위대한 그 자연에 영육을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고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밝혔다. 새로운 지향을 찾아 나서는 앨리스 워커. 그녀가 어떤 결과물로 다시 우리에게 나타날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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