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살아있습니까?

어려서부터 제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보물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자신있게 “일기장이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그 대답은 지금도 여전합니다.제 20년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 수십 권의 일기장은 추억의 보물상자이자, 예전의 기억으로 돌아가게 하는 시간의 통로이기도 합니다.얼마 전, 우연히 초등학교시절 일기장을 들여다보았습니다.유난히 아침잠이 많았던 저는 매일 아침 새로운 일상을 그리곤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제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보물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자신있게 “일기장이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대답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제 20년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 수십 권의 일기장은 추억의 보물상자이자, 예전의 기억으로 돌아가게 하는 시간의 통로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우연히 초등학교시절 일기장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유난히 아침잠이 많았던 저는 매일 아침 새로운 일상을 그리곤 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알아서 움직이는 기계들. 심부름이나 과제를 척척 해주는 지능형 로봇. 그런 상상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저는 하얀 도화지위에 그림을 그립니다. 나만을 위한 세상, 그리고 내게 너무 행복한 일상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중에서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이라는 단편의 주인공 뤽은 우리가 꿈꾸곤 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보는 뤽의 일상은 그저 편리하고, 부러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박하고 말 없는 옛날 물건들을 그리워합니다. 하찮다고 생각하는 도구들조차 주도적으로 자기의 일을 하겠다고 기를 쓰는 상황에서 그는 사람 흉내를 내는 물건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사는 것을 원합니다. 하지만 그도 결국에는 인공심장을 달고 있는 기계일 뿐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등장인물 조아나 아르통은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 움직일 수 없는 물건들이여, 그대들에게 영혼이 있는가?” 그녀가 진정으로 묻고 싶었던 말은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이여, 그대들에게 영혼이 있는가?”입니다.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십시오. 살아 움직이는 스스로가 인간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또한,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이 잘 프로그래밍 된 소프트웨어의 힘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것이라면,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 때, 인간의 존재가 스스로에 의해 규정되고 주체성과 자존감을 느낄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유할 수 있는, 꿈 꿀 수 있는 의식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기에 기계와 구분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사유의 힘, 관점, 태도를 상실하고 방황하는 현시대의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라 볼 수 있을지. 너무나 많은 것들에 자신을 옭아매고, 묶여 살아가고 있는 자기 자신을 한번만 되돌아보십시오. “당신은 살아있습니까?”라는 말은, 곧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물음으로 환원될 수 있습니다. 그저 평범함에 익숙해져가고, 자신의 일상에 매몰된 삶을 영위하는 우리는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는 변명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며, 그렇게 살아갑니다. 방향성과 가치의 상실이 자기 스스로 세상과의 소통의 끈을 놓아버린 탓은 아닌지. 점점 무뎌지는 예민함을 닮아가며, 주어진 사실을 진리인양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포장되고 왜곡된 행복의 가치를 추구하며, 중심을 잃어버린 채 왕왕 떠들어대는 나와 주변을 보면서, 진정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인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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