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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은 과히 황우석의 해였다. 황우석신드롬에 지난 월드컵 때만큼이나 열광하던 국민들은 그가 민족의 영웅이 아닌 논문을 조작한 화려한 언변술사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큰 고충을 겪어야 했다. 너무도 거대한 황폭풍은 학계·언론계 등 많은 분야를 휩쓸면서 여러 사람을 상처 입혔다. 하지만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숙제를 해결하면 그 잘난 “자유민주주의”국가로 크게 한발 다가서게 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세기의 사기극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낚시꾼은 한학수 전 「PD수첩」PD다. 하지만 방송도 되기 전 YTN에 의해 검찰수사언급과 관련된 취재윤리 위반을 비판받으며 모진 매질을 당해야 했다.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고 논문조작사태의 전모가 눈앞에 드러난 시점에서, 『서울대저널』이 한학수 PD 를 만나보았다. 서울대저널 (이하 저널)│ 「PD수첩」을 그만두셨는데, 요즘 근황은 어떠한가요?한학수PD (이하 한)│ 「PD수첩」은 저 대신 후임자가 왔어요. 검찰수사 끝나면 시사교양국장이 제 인사배치를 할 거예요. 시사교양국에는 해외시사, 아침시사, 주부대상프로그램 등이 있고요, 저는 어떤 프로그램이든지 괜찮아요.민간 파시즘, 두려웠다저널 │ 지금은 사그라들고 있지만 황우석보도가 나가기 전부터 소위 “황빠” 네티즌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는데요.한 │ 난자 방송 하던 날 밤에 가족사진이 인터넷으로 유포되고 그 밑에 ‘이 세 명을 쳐죽이자’ 이런 식의 댓글이 달렸어요. 이때 개인 홈페이지를 폐쇄했죠. 극렬한 쇼비니즘, 조금 더 좀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민간 파시즘이 출현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이러한 광풍이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잡을까봐 두려운 느낌도 들었고요.저널 │ 그러한 쇼비니즘이 익명성을 가진 인터넷의 영향도 받았다고 봅니다만.한 │ 그런 면도 있을 거예요. 80년대 광주에서 ‘전두환을 찢어죽이자’ 이후로 내가 이렇게까지 증오의 대상이 되어야 되는가 싶었죠. 오프라인에서라면 그렇게 못 했을 거라고 봐요. 또, 포탈이 갖는 선정성이 여기에 가속도를 붙인 것 같아요. 가장 많이 보는 기사가 가장 위로 올라가니까, 광고탄압 같은 경우에도 ‘한 개 떨어져, 두 개 떨어져…’ 이렇게 메인으로 계속 올라가면서 사태를 달군 면이 있죠. 그리고 애국에 호소하고 민족의 전도양양한 경제적 가치에 호소하는 파시즘적인 광풍이 이 사회의 또 다른 사안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건데 과연 인터넷이 거기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우리 사례가 학문적으로 연구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우리 가족들의 아픔도 개인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을 테고요. 짚고 넘어갈 필요성을 쭉 느껴왔던 생명윤리, 난자제보로 엔진을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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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처음에 난자 관련 제보를 받기 전부터 생명윤리관련 취재를 생각하고 있었나요?
한 │ 원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하다가 5월 중순에 「PD수첩」팀으로 왔는데, 그때는 싸이언스에 황 교수가 논문발표를 하고, 부시가 윤리적인 이유로 반대를 하던 때였어요. 부시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저 말도 일리는 있다. 정치적인 부분을 탈색시켜놓고 본다면 참 깐깐한 보수다. 저런 깐깐한 보수도 견제와 속도조절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싶었죠. 또, 황 교수의 연구도 실사구시의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그래서 「세계의 논쟁, 황우석과 부시」 라는 타이틀로 취재하려고 했는데 섭외가 안 됐어요. 황 교수가 일단 거부를 했고, 미국 쪽 특파원 취재가 바빴어요. 그렇게 잡아만 놓고 언젠가 생명윤리를 조금 더 진지하게 다뤄보자 하던 차에 제보가 들어온 거죠.저널 │ 제보를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특히 황 교수의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을 텐데 의심이 가지는 않았나요?한 │ 매매된 난자와 연구원 난자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확실했어요. 관련된 증거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제보자로부터 2005년 논문이 조작된 것 같다는 얘기까지 들었을 때는 ‘이걸 나보고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내가 무슨 과학자도 아니고. 충격이었고 믿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제보자가 매우 진실했고 황 교수랑 이해관계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한번 해보자,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했죠.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취재윤리 위반, 가이드라인을 잡아나가야저널 │ 방영 전후의 과정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나요.한 │ YTN사태였죠. 왜곡이 심했어요. 황 교수를 죽이러 왔다거나 무릎 꿇리러 왔다거나 그런 말은 최소한 안 쓰죠. 내가 했던 말은 정확하게 “황 교수가 검찰수사를 받는다. 당신도 살기위해서는 진실을 말해주는 게 좋다. 황 교수만으로 족하다. 젊은 과학자와 한국 생명과학 전체가 통째로 다치는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다”였어요. 물론 내가 검찰 수사를 논단하거나 한 것은 잘못된 것이죠. 김선종에게 뭔가를 얻지 못하면 밝혀내기가 힘들 것이라는 과잉된 중압감이 있었어요.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그래도 잘못은 잘못인거고, 그래서 회사 내에서 처벌을 받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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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그러나 취재윤리위반을 보도했던 YTN 역시 그 사안을 취재하면서 취재윤리를 위반했고, 다른 언론들도 취재윤리에 대한 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원하는 팩트와 취재윤리 간의 간극은 언론인들의 고질적인 딜레마가 아닐까 싶은데요.
한 │ 가령 취재 대상이 황 교수가 아니라 비리공직자였다면 국민들이 취재윤리 자체를 문제 삼지 않았을 수는 있었겠죠. 하지만 나는 잘됐다고 봐요. 이제까지 관행적으로 있었던 윤리 위반들을 이 계기를 통해서 좀더 냉정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잘못을 했으면 인정하고 성찰해야죠. 또,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도 고쳐나가고 해야 우리 언론계도 좀 나아질테죠. 언론인들 스스로도 대단히 충격을 받았어요. ‘나는 어떨 때는 저보다 심한 말도 했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구나.’ 기자나 피디 할 것 없이 모두 자성의 계기가 됐을 겁니다. 기본적인 저널리즘이 부재했던 언론들의 보도행태저널 │ 또 이번 사건에서 언론들의 보도행태가 큰 문제가 되었는데요. 언론이 황우석 신드롬을 부추긴 장본인이었고, 「PD수첩」 방영이후에는 소위 ‘넷심’에 편승해 합리적이기 보다는 맹목적인 태도로 「PD수첩」을 비난했었죠.한 │ 이번 사안은 좌우를 떠나서 거의 대부분의 매체로부터 공격을 받았어요. 우리 사회가 갖는 진보와 보수에 대한 구분의 얄팍함, 또는 그 세력들이 얼마나 얇은 두께였는지 많이 폭로됐죠.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이 벌거벗었지. 한 번 벌거벗었으니까 이번에는 자기를 순수하게 드러내는 옷을 입어야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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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보수언론에서는 한PD의 학생회 전력을 보도하며 좌파전체가 문제인 양 몰아가기도 했었는데요.
한 │ 유치하죠. 대학 때 총학생회 미관말직으로 있었다는 것이 이번 사안의 본질적인 문제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요. 진실과 관련된 원초적인 문제였습니다. 또, 저널리스트들도 좌파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이 있고 우파적 정서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거죠. 매체들도 스펙트럼이 다양한 것이고. 다만 ‘좌기 때문에 니가 나쁘다, 우기 때문에 니가 나쁘다’라고 가버리면 자신에게 천박한 딱지를 붙이는 거죠.저널 │ PD저널리즘이 ‘기획의도에 따라 끼워 맞추는 것’이라고 공격을 받기도 했는데, PD저널리즘과 기자저널리즘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한 │ PD저널리즘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이유로 MBC를 공격하고 싶었을 거예요. 정파적인 이해관계를 따져서 나온 기사들일 것이거든요. 또 PD들이 좀 밉기도 했을 것이고요. PD는 출입처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게릴라처럼 통제가 안 되거든요. 그리고 지난 십여 년간 탐사보도 PD들이 기득권층의 이익과 부패에 덤벼들었으니까 돈이 있어도 돈질을 하지 못하는 자의 애로사항도 있었겠죠. 요즘은 매체가 다양해지고 있어서 누가 기사를 쓰느냐의 문제보다는 저널리즘에 얼마나 충실하냐의 문제라고 봐요. 2580하고 피디수첩하고 시청자들이 심오한 차이를 느끼나요? 차이 거의 없어요. 이번 사태는 현 사회의 시상화석이 될 것저널 │ 견고한 황 교수의 성벽을 허물어뜨리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취재를 끝까지 밀고 갈 수 있었던 것은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이었나요.한 │ 난자까지는 건강한 견제로서 한번 방송되고 마는 정도지만, 논문의 진위로 가면 그 쪽에게 “넌 뭐야?” 라고 묻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도 당연히 나한테 묻죠. “그러는 넌 뭔데?” 작두 위에 서는 거예요. 그러는 날이 올 거라고 봤고, 결국 왔었던 것이고. 두려웠어요. 하지만 그걸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조각배를 타고 다니면서 낚시를 하는 것이 우리 언론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낚시를 하다가 고래가 잡혔단 말이야, 배가 뒤집힐 것 같잖아요. 그러면 주변을 잘 살펴보고 낚싯줄을 얼른 끊어버리는 사람도 있어, 두렵거든요. 그 때가 진검승부인건데.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않은 거예요. 우리가 낚싯줄을 던졌고 걸린 것이 고래다, 근데 저 고래는 정말 새우들을 못살게 군다. 새우들에게 많은 추앙을 받지만 새우들에게 궁극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다. 배가 뒤집히고 MBC가 망하는 한이 있어도 갈 데까지 가보자. 끝까지 한번 가 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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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한 |이 사건은 학계와 언론계와 정부가 삼각동맹으로 일으킨 거죠. ‘우리 사회가 대체 어디까지 왔지’하는 문제를 사회 전부분에 던졌어요. 학계, 언론계 모든 분야의 치부가 확 다 드러나 버린 거잖아요. 그냥 이것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시상화석인 것 같아요. 우리 시대 한 단면을 쭉 그냥 쪼개 버린 거죠. 우리가 대안을 얘기한건 아니에요. 상처가 아물어가면서 각 부분에서 먼저 성찰하고 먼저 조치를 하는 부문일수록 앞서나가는 거겠죠. 각자의 몫이죠, 추상적이긴 하지만.PD는 대중예술가와 저널리스트의 접합점에 있는 직업저널 | 앞으로는 프로그램에서 어떤 주제를 다루고 싶으신가요?한 │ 모든 사회가 깨끗해질 수는 없지만,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가치들이 그래도 좀 통용되어감에 있어서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의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대학 다니면서 청년기에 품었던 생각이기도 하고. 구체적인 아이템은 말해줄 수 없어요(웃음). 나는 내 직업이 내 생각을 투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이라서 행복해요.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도 만들어 보고 싶고, 예술적인 요구가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지금 같은 도전도 하고 싶어요. 누가 뭐라 하든지 내가보기엔 상식인데 왜 이게 상식으로 안 통하는가, 그런 문제제기를 꾸준히 하고 싶어요. 저널 │ 우리 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셨는데, PD를 직업으로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한│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요. 원래는 경영이니까 광고 쪽을 생각을 했어요. 근데 광고 쪽 은 호흡이 짧잖아요. 발칙하고 감각적인 표현은 할 수 있지만 대상이 제품으로 한정되어있고요. 다큐멘터리를 해보고 싶었어요. 긴 호흡으로 사람들하고 얘기 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죠. 보니까 PD가 딱 좋더라고요 공부 좀 했는데 어떻게 또 된 것이고(웃음). 우리 시사교양국 PD들은 대중예술가와 저널리스트의 중간이에요. 대중의 감성과 흐름을 파악하고 견지하고, 영상을 생각 하는 면에서 대중예술가고, 그렇다 하더라도 가공은 할 수 없는 것이고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니까 저널리스트인거죠.저널 │ PD가 되고 싶은 대학생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한 │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사람이 PD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럴듯한 모양새를 보고 오는 것 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꿈틀꿈틀한 사람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 사람들이 와야 한국방송도 경쟁력이 생기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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