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열풍, 월드컵 4강, 경제 발전, 여러 스포츠 스타들……. ‘세계 속의 한국’을 자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한국이 세계 속에서 어떤 기여를 했는가 물으면 선뜻 대답할 거리가 마땅치 않다. 타자에 대한 배려에 아직 인색한 한국. 그 한국을 향해 ‘Thank you, Korea!’ 하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아시아 각국에서 한국을 찾아온 유학생들로 이루어진 ‘아시아신문화연구회(Association for the research of the New Asian Culture, 이하 ANAC).’ 이들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을 향해서도 ‘Thank you, Asia!’라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민족과 국가의 장벽을 넘어 평화로운 관계의 형성을 꿈꾸는 ANAC을 만나기 위해 충청남도 천안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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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오세요, ANAC입니다!” (‘아낙’이라고 읽으세요) |
ANAC은 2001년 4월에 만들어졌다. 단체 설립을 주도한 것은 현 사무국장 이시야마 스미오 씨. 한국인 어머니를 둔 그는 결혼도 한국 사람과 했고, 일본에서는 조총련과 민단 사이의 화합을 도모하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갈등이 재일교포 사이뿐만 아니라 한일 관계에도 존재함을 깨닫게 됐고, 한국에 건너와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한일 양국민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나아가 ‘아시아인’으로서의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하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일본 유학생과 한국 학생들이 중심이 됐지만, 현재는 베트남, 캄보디아 등 아시아 각국에서 온 다양한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민족주의가 빚어내는 ‘피해자 의식’ 이시야마 국장은 아시아의 각 나라 사람들이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러 나라의 기념관과 박물관을 살펴보면 이런 특성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여기 천안에는 독립기념관이 있고, 일본에도 있죠. 히로시마 평화박물관. 베트남엔 베트남 전쟁 기념관이 있고, 캄보디아에는 킬링필드 전시관. 이런 데 가면 애국심은 기를 수 있죠. 그렇지만 무의식적으로 피해자 의식을 갖게 됩니다.” 각국의 민족주의는 자기 민족을 ‘부당한 피해와 억압을 당한 민족’으로 인식하게 하고, 그것을 통해 자국의 역사에 정당성과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예외적인 역사를 경험한 특별한 조국. 여기에 타자에 대한 이해의 여지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베트남도 캄보디아에 나쁜 짓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캄보디아 사람들, 베트남 싫어하지요. 한국 사람들이 일본 싫어하는 것과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데 베트남 사람들은 그 마음 모르죠. 무관심해요. 일본이 그런 것처럼. 피해자 의식만 갖고 있으면 이럴 수밖에 없어요. 이건 독립기념관도 마찬가집니다.” ‘피해자’로서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한 대등한 관계는 만들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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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야마 스미오 사무국장, “아시아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면 ‘피해자 의식’이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시야마 국장은 백범 김구에게서 대안을 찾았다.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민족과 인류 전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랑과 평화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 자기 배를 채우는 자유가 아니라 자기 이웃을 사랑하는 자유를 누리는 것. “《백범일지》를 읽고 너무 감동받았습니다. 60년 전에 이런 사상이 있었다는 데 놀랐구요. 제가 베트남 대사관 같은 데 가서도 김구 선생님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들 너무나 감동받습니다.”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봉사가 되었다. “테레사 수녀의 말씀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랑의 열매는 봉사이고, 봉사의 열매는 평화이다.’ 저희가 생각하는 것과 딱 맞아 떨어지는 거였어요.” 봉사를 통해 사람들 사이의 평화를 이루는 것. 그러니까 ANAC에게 있어 봉사는 단순한 시혜나 그 자체가 목적인 활동이라기보다는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인 셈이다.쓰레기 줍기부터 해외봉사캠프까지 ANAC은 실제로 어떤 봉사를 하고 있을까? 우선 현재 ‘Thank You Korea’라는 이름으로 천안 시내 청소활동을 하고있다. ‘세계평화라더니 겨우 쓰레기 줍기?’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ANAC이 생각하기에 그 의미는 작지 않다. 처음엔 그런가보다 하던 지역주민들도 이제는 수고한다며 음료수를 건네고, ‘일본 사람은 싫다’던 아저씨도 쓰레기를 줍는 일본 학생을 보며 ‘일본에도 착한 사람이 있구나’하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 2002년 10월부터 시작해서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니 분명 보통 일은 아니다. 현재는 지역 내 다른 단체나 시 공무원들도 동참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활동이 되었다. 그 외에도 정기적으로 국내 복지시설 등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방학때가 되면 베트남·캄보디아와 우즈베키스탄으로 봉사 캠프를 떠난다. 역시 2002년부터 계속되어온 활동이다. 처음 시작은 5명에 불과했지만, 이제 참가자 수가 20여 명에 이른다. 이번에는 지난 1월 28일부터 2월 17일까지 3주간 참가자들의 힘으로 베트남에 집을 짓고, 캄보디아에 수도시설을 설치했다. 봉사뿐만 아니라 참가자들간의, 또 현지인과의 세미나와 토론의 자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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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에서 집을 짓고 있는 캠프 참가자들. |
정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전쟁과 평화는 국민이 아니라 정치지도자가 결정하는 것’이라거나 ‘상호의존은 갈등을 증대시킬 것’이라며 냉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캠프를 통해 사람들은 분명히 변화한다. “한국과 일본 학생들이 친하게 지내며 함께 봉사하는 것이 베트남,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어요. 캠프가 끝나던 날 캄보디아 학생이 베트남 학생에게 가서 말하더라구요. ‘Thank you, Vietnam’이라고. 그 장면을 보며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또 부산·경남 지역이 태풍 ‘나비’로 큰 피해를 입었던 작년에는 캄보디아에서 한국을 돕기 위한 성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비록 큰 액수는 아니지만, ‘우리는 가난한 나라이니까 원조를 받는 게 당연하다’라고만 생각하던 사람들이 “우리도 ‘부자나라’ 한국을 도울 수 있다”고 의식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한국 유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 홈스테이를 하면서 자녀가 한국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준비해 간 영상 편지를 전달하고, 유네스코와 함께 유적복원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현지 사람들뿐 아니라 캠프 참가자들도 ‘우리는 함께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 평화는 어쩌면, 이런 작은 계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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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에서는 에이즈 환자를 위한 병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벽화 그리기나 시설보수는 물론 환자들을 위한 흥겨운 공연도. |
열정을 갖고 봉사하는 사람이 되세요
ANAC의 활동에는 춤과 음악이 빠지지 않는다. 여러 나라 사람이 섞여 다양한 나라를 상대로 활동하는 상황에서 춤과 음악은 언어적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즐거움과 열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봉사캠프에서는 참가자들이 자기 나라의 전통 춤을 공연하고, 현지인들이 답례로 공연을 하면서 자연스레 문화교류가 이루어진다. 여러 활동으로 다져진 ANAC 멤버들의 춤 실력은 작년 천안시가 주최한 춤 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하여 입증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천안 ANAC 센터에서 40회에 걸쳐 내외국인이 참여하는 무료 문화 공연을 열기도 했고, 매년 5월 경에는 회원들이 자신의 활동과 봉사 경험을 주제로 발표와 공연을 하는 문화축제를 개최한다. 이 축제는 지역내 다른 시민단체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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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AC 센터는 춤 연습이나 문화공연도 할 수 있도록 꾸며져있다. 실내 장식도 모두 회원들의 힘으로 마쳤다고. |
ANAC의 회원은 현재 약 130여명. 한국,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 등 아시아 각국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학생들은 자신의 나라에 ANAC 지부를 만들어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지리적인 이유로 한국 학생들은 아무래도 천안 지역 주변의 대학생들이 다수. ANAC은 서울의 학생들과도 함께 활동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ANAC의 홈페이지는 http://anac.cc. 취재자료를 챙기는 기자에게 이시야마 국장이 웃으며 덧붙인다. “ANAC에 대해서는, 캠프에 한 번 와봐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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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ANAC에 행운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