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방 되지 않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

지난 8월 24일 수요일 11시 50분경, 일본 대사관 앞에는 어김없이 노란색 옷을 입은 할머니 몇 분과 함께 사람들의 집회 준비가 한창이다.집회를 준비하고 참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일본 대사관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매주 수요일 이 시간의 풍경은 익숙해진지 오래다.

지난 8월 24일 수요일 11시 50분경, 일본 대사관 앞에는 어김없이 노란색 옷을 입은 할머니 몇 분과 함께 사람들의 집회 준비가 한창이다. 집회를 준비하고 참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일본 대사관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매주 수요일 이 시간의 풍경은 익숙해진지 오래다. 670여회를 맞도록 한 주도 거르지 않은 수요집회 바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일본군위안부 할머님들과 함께 일본정부를 향해 공식적 사죄와 배상 요구를 골자로 하는 ‘수요집회’의 광경이다. 수요집회는 1992년 처음 시작되어 매주 수요일마다 이어져 무려 670회를 넘어섰다. 지난 8월 17일은 해방 60주년을 맞아 어느 때보다 언론의 취재열기가 뜨거웠고, 많은 여성단체, 한중일 시민 단체가 한 자리에 모여 힘찬 모습을 선보였다. 1주일이 지난 24일은 그 때 보다는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중.고등학생 여러명과 일본의 AALA(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평화 연대)라는 시민단체 등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대협의 김동희 간사는 “언론을 비롯한 대중이 항상 관심을 유지하길 바라지도 않고 바랄 수도 없다”며 “중요한 것은 일본군위안부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고 말했다. 여성의 문제로 여성들과 연대하다 수요집회가 92년부터 시작된 것처럼,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에 드러난 것은 90년대 초반부터다. 주목해야할 점은 일본군위안부는 당시 한국이 식민지였음에 기인하며, 민족/계급/인종 등 다양한 맥락으로 얽혀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여성’의 문제로 해석돼 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성노예범죄에 대해 전문가로 알려진 정진성 교수(서울대 사회학)는 “여성운동이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후반에 크게 성장했으며, 그에 기반 하여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여성의 손으로 직접 발굴되었기 때문이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한국여성연합(여연)’에서 문제를 받아들여 37개 여성단체와 개인이 모여 정대협을 결성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연의 김기선미 부장은 “이는 명백히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로 접근해야한다”며 “ 일본을 가해자로 정한 것은 방법론적인 문제고 평화와 여성폭력문제를 기본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대협 역시 같은 인식을 갖고 지난 2001년 병설기구로 ‘전쟁과 여성인권센터’를 발족시켰다. 이 기구를 통해 정대협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뿐만이 아니라 무력갈등 하의 여성폭력 문제까지 다룰 계획이다. 지난 10년간 정대협은 아시아지역의 피해여성들, 국제인권기구와의 연대도 활발히 하고 있다. 정진성 교수는 “국가를 넘어 피해여성간의 연대가 활발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은 피해국의 특수한 상황보다 ‘여성’을 향한 폭력이라는 점에 활동의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지난 96년에 발표된 유엔 인권위원회 결의문 이후 유엔 인권소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국제법률가 협회, 국제노동기구 전문가위원회는 일본정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공식사죄하고 법적책임을 이행할 것을 권고했다. 김동희씨는 “일본정부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제기구와 국제연대를 통한 것이다”며 정대협도 현재 이 부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신대, 위안부라는 단어에 문제 있어 용어 사용에 대한 점검 역시 시급하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쉽게 쓰이고 있는 용어는 ‘정신대’다. 그러나 정신대는 근로정신대와 군위안부 모두를 포괄하는 용어로 그 당시 전쟁준비를 위해 강제노동을 해야만 했던 여성들도 군위안부로 인식되면서 오늘날 정신대라는 용어와 혼용되고 있다. 이처럼, 단어 간의 혼용이 아니라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정신대라는 단어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뜻이며, 군위안부와 비슷하게 쓰이는 종군위안부 역시 자발적으로 군대를 따라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위안부’란 말은 올바르지 못한 단어가 된다. 위안부는 말 그대로 일본군을 위안해 준다는 자발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정진성 교수는 “오랜 시간 정신대, 위안부라는 말이 쓰여 왔기 때문에 일본군위안부라는 단어는 역사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고 정대협과 같은 단체들은 굳이 이름을 바꾸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핵심을 잘 드러내 주는 말로써, 최근 학계에는 ‘일본군 성노예제’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매매’라는 용어 역시 이전에는 공식석상에서 조차 ‘윤락, 매춘’등과 같은 단어로 불려졌다. 그러나 단어가 가부장제의 편견과 남성중심성을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다는 여성계의 반발로 최근 성매매라는 용어가 자리 잡히고 있다. 성매매의 용어 정립과 같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올바른 용어의 확립이 절실해 보인다.일본정부 책임의 법적 근거 처음 마련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던 조선여성의 숫자는 최소 5만에서 최대 20만으로 추정된다. 이는 일본국에 의한 피해여성의 90%에 달하는 인원이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일본군위안부로 신고된 200여명의 할머니중 생존자는 115명 안팎이다. 올해만 들어 벌써 10여명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셈이다. 이 같은 상황 가운데 지난 8월 26일 외교통상부는 ‘굴욕외교’의 대표적 전형으로 알려진 한일협정·한일회담 외교문서를 전격 공개했다. 이에 정부는 일제 강점기의 반인도적행위에 대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고 결론짓고 외교적 대응을 강구해 나가기로 발표했다. 정부가 일본정부에 대해 도덕적 책임이 아니라 법적 책임에 대해 관련문서를 토대로 주장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의 도덕적 책임에 대해 ‘법적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다’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기 때문에 한.일 양국의 갈등을 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한편, 일제 강점 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법적 책임은 없다는 정부 입장엔 변함이 없다. 75년에 이미 보상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부상자가 제외됐고 사망자 보상금 총액도 청구권협정으로 받은 무상 3억달러(당시 1천52억원) 가운데 10%에도 못미치는 95억원에 불과했던 만큼 도의적 책임은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이런 상황을 반기는 한편, 정부의 대일본 대응이 이번에도 ‘말’로만 끝이 날까 못 미더운 표정이다. 정대협 역시 같은 26일, 정부가 책임감 있게 대응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지만원씨의 ‘가짜 위안부’ 발언으로 또다시, 멍들었던 할머니들의 상처를 일부나마 치유할 수 있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과와 물질적 배상이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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