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와 학벌, 토론회에 뛰어들다

김동훈 씨는 책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에서 학별사회를 사회학적으로는 ‘변형 된 신분제적 가치와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 문화적으로는 ‘학벌이라는 집단적 편견이 개인의 인간관계 형성이나 결혼 취업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 파고들어 문화적 심리적 갈등을 빚어내는 갈등사회’ 로 규정한다.그리고 학벌이란 정의 자체에 기본적으로 ‘불 공정‘ 불평등’ 의 개념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서울대생은 과연 이와 같은 규정에서 자유 로운가.

김동훈 씨는 책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에서 학별사회를 사회학적으로는 ‘변형 된 신분제적 가치와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 문화적으로는 ‘학벌이라는 집단적 편견이 개인의 인간관계 형성이나 결혼 취업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 파고들어 문화적 심리적 갈등을 빚어내는 갈등사회’ 로 규정한다. 그리고 학벌이란 정의 자체에 기본적으로 ‘불 공정‘ 불평등’ 의 개념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서울대생은 과연 이와 같은 규정에서 자유 로운가? ‘불공정, 불평등’ 이란 정의를 가장 즐기고 있는 하나의 집단이 아닐까? 서울대 와 학벌이란 주제로 토론회가 계획되었을 때 이와 같은 일련의 생각이 떠 올랐다. 그리고 과연 그 이기적 기득권층 안에 있는 ‘나’ 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서울대와 학벌 무언가 의미 있는 조합임에 틀림없었다. 호기심에 했던 패널 지원 토론회에 관심은 많았지만 항상 보는 것만을 즐겨했다. 나의 주장이라는 것은 항상 남들의 그것보다 빈약해 보였고 내 의견을 남에게 설득시킬만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버리는 것 은 어리석은 짓. 난 용기를 내어 ‘서울대와 학별’ 이란 주제하의 토론회에 신청서를 지원했다. 신청 기간이 시험 기간 사이였기 때문에‘ 첫 지원글을 그다지 홀륭히 써내지 못했다. 한 번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던 패널 자라였던 만큼 욕심이 많이 났고, 그만큼 썼던 글은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지원자가 그다지 많진 않았던(?) 관계로 난 패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패널 승닥 메일을 받은 날은 꽤나 가분이 좋았던 하루였다. 욕심만큼 따라주지 못했던 준비 시험이 끝나자마자 난 중도에 학별 관련 책을 빌리러 갔다 강준만, 김동훈 씨의 학별 관련 책을 빌려 훌어보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 다. 준비는 내가 처음에 보였던 의욕만큼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시험이 끝난 후 쉬고 싶 은 마음도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가 시작인지 끝인지 알 수 없었던 학벌 문제 자체도 나의 의욕을 꺾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무엇을 추구했는지의 문제인 공교육 붕 괴 문제부터, 사회 속에서 일시적 경쟁을 뚫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낙오되는 학생들의 문 제에서, 과연 진정한 교육의 공공성은 어떻게 담보되어야 하는 가에 대한 문제를 넘어, 서울대의 현 모습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에 관한 실천적 문제까지. 과연 시작이 불분 명한 이 문제에 어떻게 끝을 내렬 수 있을지 사회의 전반적 인식 전환만이 길이라는 추 상적 결론으로 학별문제를 내벼려 두고 싶진 않았다. 혼자서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 다. 하지만 혼자 고민했던 것은 꽤나 어리석은 짓이었다. 토론회가 끝난 후에나 안 사실 이지만, 학벌 문제와 관련된 논의는 그 범위가 매우 넓고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었 다. 이미 토론회를 마친 후 여러 싸이트를 돌아다니며 알게 된 다양한 학별 관련 담론들 은 나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대망의 토론회 날 11월 12일. 드디어 토론회 날이 되었다. 처음 해보는 패널이었던 만큼, 긴장한 마음에 시간 맞춰 토론실에 갔지만, 놀랍게도 아무도 없었다! 각 패널의 입장을 먼저 확인하고 어떤 내용의 토론을 해나갈지 이야기 해보고 싶었지만, 그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꽤나 아쉬웠다. 토론회의 시작은 예상 시간보다 조금 늦어졌다. 한 명씩 들어오는 방청객을 보며 난 조금긴장했다 각 패널 발제가 서작되었다. 난 우선 대학 졸업장이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정당성을 갖 는 이유에 반박했다. ‘어느 대학’ 을 졸업했는지가 곧 ‘어느 정도의 능력’ 을 가지고 있는 가로 연결 되는 ‘능력지표론’ 을 비판했다. 그리고 대학 서열화에 필요한 ‘공정성’ 이라 는 가치가 과연 한국 공교육이 다양화, 인간화 되는 것보다 얼마나 더 중요한 가치인지 에 대해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교육의 다양성 추구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선발 과정에서의 커트라인 폐지, 비공개 선발의 원직(입학 과정을 지원자와 대학 간의 사적 관계로 바꾸어나가자는 것)을 이야기 했다. 이후 신동민씨는 학별 사회를 완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학의 유동적 서 열화를 주장했 다. 변화가 불가능하고‘ 존재하지 않는 현 대학 서열화 현상 속에서는 기대할 것이 없으 며, 이 서열이 유동적으로 변할 때에서야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교육이 공공의 영역인 것은 명확한 사실인 만큼, 자율적 교육이 책임지지 못하는 부분, 특화된 영 역이나 소외된 사람들을 책임질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패널이었던 이안승진씨는 현재 서울대가 파격적 지원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만 큼의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며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이 지원은 공공성을 위한 투자 가 아니라며‘ 다른 국공립대로의 지원 확대를 요구했다. 또한 현 서울대의 독립적 지위를 완화시키기 위하여 국공립대 사이의 평준화를 주 장하기도하였다. 뒤이은 열떤 토론, 그러나- 각 패널 발제가 있은 후, 패널 간의 토론이 이어졌 다 토론이 계속될수록 난 점점 긴장이 풀리면서 좀 더 자연스럽게 발언할 수 있었다. 난 내가 생각했던 방식이 학벌주의를 완화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기 로라고 생각했고, 그 것이 필요할 것임을 계속 주장 했다. 그리고 이안승진씨와 선동민씨는 과연 서울대 의 역할이 어떻게 이어져 나가야 할지에 관한 토론 을 벌였다 이안승진씨는 서울대가 현재 지원 받는 것에 비해 그 역할을 다 못하고 있다 고 적극 주장했다? 지원을 받음으로써 얻는 교육의 공공성이란 부분보다는 그 폐해가 휠 씬 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통민씨는 서울대를 없엠으로써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 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학 사이에 필요한 것은 경쟁적, 유동적 서열화이지, 서울대를 없엠으로써 담보할 수 없어지는 교육의 공공성이란 부분을 주목해야 한단 젓이었다. 열 띤 토론이 계속 되었지만 난 토론이 진행될수록 무언가가 공허하다는 젓을 느꼈다. 토론 회의 절정은 우습게도 패널 간의 토론이 아닌 이후 이어진 방청객과의 토론이였다. 각 패널에게 방청객틀은 연이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현실성, 자신 없는 자의 변명 나의 주장에 대해 한 방청객이 질문했다 과연 당신이 이야기하는 방법이 우리나라의 큰원적 학별 문제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난 당황하면서 계속 똑같은 대 답만을 연발했다. 내가 내세우는 방안은 절대적인 방안이 아니며, 최대한 현실적인 방안 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효과가 비록 파격적이지도 않고, 어쩌면 없을지도 몰라도 학벌 사회를 ‘완화’ 시카는 하나의 기로일 뿐이라고 말이다. 어정쩡하게 대답을 마친 후, 그때서야 나의 논점이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 별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가 공 평히 받아야 한다는 교육에서부터 집안 사정에 따라 교육의 질이 달라지고 이 것이 부의 세습화로 이어지는 구조적 모순이, 나날이 경쟁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대학마다의 특성 화를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전반적 모순이 말이다. 나는 가장 현설적인 방안을 추구한다는 좋은 변명 아래에서 논점의 외부만을 돌고 있었다. 마지막에 자신 없게 한 마디 하기는 했다 궁극적으로는 서울대가 평준화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한다고 말 이다. 하지만 뭔가 계속 아쉬웠다 동조는 할 수 있었지만 주장은 할 수 없었다. 아직 난 나의 이기심과 합의를 보지 못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중요한 논 점을 피하고 주변부만 건드린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실현 가능한’ 이라는 ‘현실성’ 속 에 숨어서 말이다. 학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인가? 서울대생을 대상으로 한 SNUNOW의 설문조사를 보면, 서울대생은 한국사회가 학별 로 인한 폐해가 섬각하다는 문제에 80%가 동의하고 있으며, 서울대가 학별 문제와 연 관되어 있다는 것에는 934%가 동의했다. 그리고 서울대의 개혁 방향과 관련하여 서울 대가 기초학문을 보호하는 종합 대학 학부정원 감축과 연구 중심의 대학원 대학, 소외 계측을 위한 대학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77.1%에 육박했다. 설문조사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서울대생들이 어느 정도 학벌 문제의 섬각성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점에 자신들이 다니는 그 학교 즉 서울대가 위치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또한 서울대의 개혁 방향과 관련하여 대답한 대다수의 학생이 서울대가 공공성을 지향 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정작 학벌문제가 적극적으로 제기되는 세력에 대해서는 입시 경쟁을 뚫지 못한 ‘열등감’ 으로 치부해 버리기가 일쑤이다. 이안승진씨는 학별 문 제 해결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계속해서 서울대생의 자발적 통조를 요구했다. 그러나 정작 서울대생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쉽게 놓지 않으려고 하 고 있다.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정의와 타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상탕한 용기를 필 요로 하는 일이지만 필수적인 일이다. 서울대생 누구에게나 말이다 시작이 있으면 물이 있다 방청객의 대부분은 예상과는 다르게 타대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난 교내에서 실시된 토 론회였던 만큼, 타대생들보다는 교내 학별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대부분일 젓이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학벌 문제의 중심에 있는 기득권자’ 인 서울대생의 의견이, 타대생들에게는 많이 궁금했었나보다 예상하지 못했던 EBS의 토론회 녹 화도 꽤나 당황스러웠다 1주일정도가 지난 후 연락이 뜸하던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내게 전화를 했다. “란우야 나 너 EBS에서 봤어”라고 말이다.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전혀 예고해주지 않았던 주최측이 좀 원망스럽기도 했다. 3시간에 육박했던 긴 토론회가 끝난 후, 난 한숨과 더불어 자리를 일어설 수 있었다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주최측의 제안이 있었으나,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뒷풀이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이번 토론회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면서 무언가 ‘주장’ 을 하고, 그 ‘주장’ 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지식보다도 자신 있게 그 주장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좀더 많은 고민을 하고 사전 토론을 거친 후 가졌던 토론회였더라면. 뭔가 좀더 가치 있는 주장의 ‘시작’ 이 있 을 수 있었고, ‘끝’ 이 있을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실수 투성이 패널이었더라도 이 경험을 학별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시작으 로 삼으려 한다. 뭔가 가치 있는 고민의 결말을 위한 시작으로 말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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