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현재, 우리의 담론은?

오늘 날 대학은 변했다고틀 한다.시대가 변했고 구성원들이 변했으니 학생사 회가 변화하는 것도 당연하다.하지만 활발한 토론과 논쟁의 장이었던 학생사회 가 구성원들에 의해 외면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특 히 토론과 논쟁을 통해 생성, 유통되는 학생사회의 담론이 침체기를 맞은 것은 더욱심각한문제이다.담론이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말들의 집합, 혹은 말들의 체계 로 정의할 수 있다.

오늘 날 대학은 변했다고틀 한다. 시대가 변했고 구성원들이 변했으니 학생사 회가 변화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활발한 토론과 논쟁의 장이었던 학생사회 가 구성원들에 의해 외면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 히 토론과 논쟁을 통해 생성, 유통되는 학생사회의 담론이 침체기를 맞은 것은 더욱심각한문제이다. 담론이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말들의 집합, 혹은 말들의 체계 로 정의할 수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입장과 견해를 제시하며 토론을 벌이고 그렇게 주고받는 말들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체계를 이 룰 때 우리는 1담론이 형성되었다1고 말한다 대학은 공공영역으로서 사회비판 기능을 담당할 의무가 있으며 학생사회의 담론은 이 기능을 수행하는 중요한 기 제이다생계에 대한 걱정과 기존의 가치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대학생들 은 사회의 담론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의 담론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 남주씨(87년 총학생회장, 현 성공회대 교수)의 말처럼 대학이 사회에 대해 ’선 도적 위상을 갖는다고 여겨지지 않는 오늘 날에도 대학의 담론은 여전히 중요 한 의미를 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학내 담론 형성은 어려운 현설에 당면해 있다. 담론 생성의 주체라 할 수 있는 학생들의 관심이 갈수록 취업, 고시 준비와 같 은 개인 문제로의 국한되는 현상이나, 학생회와 같은 기존 학생 공동제의 붕괴, 개별 학생들이 보이는 파편화 경향은 학생들의 참여를 제한하고 더불어 담론 생성의 장을 나날이 좁히는 강력한 장벽이다. 80년대의 대학사회, 활발한 담론 생성의 장 대학 사회가 늘 지금과 같은 모습이 었던 것은 아니 었다. 과거 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은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하는 정치적 공간으로서, 활발한 담론 생성의 장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90년대와는 다른 특유의 시대상황이 있었다. 비민주 적 독재정권 타도에 대해 일종의 사명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대학생들은 사 회 개혁과 민주화라는 지상과제를 둘러싼 거시적 담론들을 스스로 생성, 유통 할 수 있었고 나아가 이를 보다 대중적으로 공유할 수 있었다. 이남주씨는 “당 시에는 학생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운동권들에 대해 언제나 부채감을 갖고 있는 등 운동은 일종의 당위였다”고 말한다 80년대 독재정권의 억압적, 비민 주적 통치라는 특수한 시대 상황이 학생사회에 활발한 운동담론이 자리 잡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던 것이다. 90년대, 학생운동의 약화- 혼란의 시기 하지만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사회의 변화는 90년대 이후의 대학사회를 완전 히 바꿔놓았다. YS 문민정부 등장으로 얀한 기존 독재-반독재 대립구도의 해제, 89년 민주노총 출범 등 계급운동의 두드러진 성장, 현실 사회주의의 실 패는 학생운동의 선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했을 뿐 아니라 이념적 지향 을 혼란스럽게 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대학사회에 또다른 영향을 미친 것은 대학의 위상 변화였다. 90년대 이전까지 만 해도 대학의 졸업증명서는 성공을 보장하는 사회적 특권의 상징이었다. 그 러나 산업이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고학력 노동자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대학의 수는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증가한 대졸자를 모두 흡수할 수 있었던 80년대 호 황의 거품이 꺼지고 나자 더이상 대학생은 과거와 같은 확실한 미래를 보장받 을 수 없게 되었다. 섬화된 경쟁 속에서 학생들의 개인화 · 파편화 경향은 더욱 심화되였다 한편 학별의 정점에 있던 서울대는 구성원들의 계급적 성향1 변화 를 추가적으로 경험했다 대학 수의 증가가 낳은 또다른 결과는 대학의 서열화, 명문대 편중 현상의 심화였고 서울대 입학의 문은 더욱 좁아졌다. 이 좁은 문 을 통과하기 위한 경쟁에서 사교육의 기회에 있어 유리한 강남 출신자들이 더 유라한 고지를 점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에 강남 출신 신입생들의 비율이 해 마다 늘어감에 따라 학생사회의 구성원들의 계급적 성향에는 큰 변화가 생겨났 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은 학생사회에서 학생운동이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 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90년대 초는 학생사회에 있어 혼란의 시기, 그 자체였다. 95년도 총학생회 간부였던 서현수씨는 “기존의 운통이 ‘어 떻게 사회를 변혁할 것인가’ 라는 실천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면 90년대 초 학 생운통은 이제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해석의 문제에 봉착했다”고 말했디 아는 당시 학생운동진영이 겪었던 혼란을 잘 보여준다, 학생운동이 빠르 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동안, 앞서 말한 사회적 변화 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개인화와 다원화라는 변화를 겪고 있던 학생대중들과 학 생운동은 서서히 괴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학생운동의 효율성을 위해 건설 발전해왔던 학생회라는 기구가 가진 모순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였 다 학생회가 투쟁의 선도조직으로 기능하는 가운데 그러한 투쟁들이 학생들의 생활에 기반하지 옷한 관념적이고 거시적인 투쟁에 머무르면서 자연히 학생회 는 비민주적, 수직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미 90년대는 독재정권이라는 명백한 적이 사라지고 운동이 더 이상 당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였다. “처 음 입학했을 때 학생회는 갖가지 행사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색에 신입생들을 물 들이려 했고 (신입생들에게는) 이에 대한 저항감도 분명히 있었다년 검영준짜 떠7 경제)의 말처럼 저항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에 대학에 들어와 보다 심화된 경쟁에 던져져야 했던 90년대 학변들은 기존 학생회의 위상과 구조를 잘 받아 들이지 못했고 그 결과 학생회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다. 이는 학생회 선거의 투 표율 감소로 나타나 95년도에는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처음으로 연장투표 가실시되기에 이르렀다 90년대 이후 담론의 묘드- ’다양화’ ’생활 속 담론’ 학생사회의 이 같은 변화는 학생사회의 담론 역시 변화시켰다. 80년대에는 민 중담론, 민중민주 · 민족해방과 같은 운동담론이 주를 이루는 ‘단일화· 경향이 강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90년대 이후의 담론은 ‘다양화’ ‘생활 속 담론’ 이라 는 두 가지 코드로 특징지어 진다 90년대 중반 이후 기존의 거시적 사회 변혁 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조직-학생회 중심의 학생운동 대신 소위 부문운동 주제 운동이라 불리는 다양한 운동들이 나타났다. 생태, 여성, 인권, 정보통신 반핵 과학기술 등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전문성을 표방하고 나타난 다양한 운동들은 기존 운동과 달리 사상적인 면에 치우치기보다 구체적인 생활에 기반한 담론틀 을 형성하고자 시도했다 96년 결성된 관악여성모임연대(관악여모)가 2000년 반성폭력 학칙을 제정하고 여성문화제 개최한 것이나 2000년에 생긴 환정 동 아리 SAFE가 녹색교통수단으로서 인라인스케이트률 홍보한 인라인페스티 낼 생태문화제 등의 개죄를 통해 생활 속 실천과 홍보를 시도한 것이 좋은 여l이다. 기존 정치조직 중심의 학생운동 담론에서도 다양화, 생활 속 담론 코드는 발견 된다 학생사회에서의 영향력 감소와 위기 속에서 학생 대중의 다양한 욕구를 수렴, 반영해 학생회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열린 학생회’ 담론이 운동진 영 내에서 제기되었다 93년에 출범, 94년 총학생회 선거에 참여한 ‘21세기진 보학생연합’ (21서]7])이 표방한 ‘네트워크 학생회’ 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 타난 젓이다. 처음부터 대학개혁을 가조로 내세웠던 21세기 뿐 아니라 기존 정 파틀도 생활 속 담론을 생성하고자 노력했으나. 이미 학생회를 떠난 학생대중 의 관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기존 운동담론과 이를 조화시커는 데에 개별 학생들이 보이는 파편화 경향은 학생들의 참여를 제한하고 더불어 담론 생성의 장을 나날이 좁히는 강력한 장벽이다. 80년대의 대학사회, 활발한 담론 생성의 장 대학 사회가 늘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과거 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은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하는 정치적 공간으로서, 활발한 담론 생성의 장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90년대와는 다른 특유의 시대상황이 있었다. 비민주 적 독재정권 타도에 대해 일종의 사명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대학생들은 사 회 개혁과 민주화라는 지상과제를 둘러싼 거시적 담론들을 스스로 생성, 유통 할 수 있었고 나아가 이를 보다 대중적으로 공유할 수 있었다. 이남주씨는 “당 시에는 학생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운동권들에 대해 언제나 부채감을 갖고 있는 등 운통은 일종의 당위였다”고 말한다. 80년대 독재정권의 억압적, 비민 주적 통치라는 특수한 시대 상황이 학생사회에 활발한 운동담론이 자리 잡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던 것이다. 90년대, 학생운동의 약화- 흔란의 시기 하지만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사회의 변화는 90년대 이후의 대학사회를 완전 히 바꿔놓았다. YS 문민정부 등장으로 인한 기존 독재-반독재 대립구도의 해제, 89년 민주노총 출범 통 계급운동의 두드러진 성장, 현실 사회주의의 실 패는 학생운통의 선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했을 뿐 아니라 이념적 지향 을 혼란스럽게 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대학사회에 또다른 영향을 미친 것은 대학의 위상 변화였다.90년대 이전까지 만 해도 대학의 졸업증명서는 성공을 보장하는 사회적 특권의 상징이었다. 그 러나 산엽이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고학력 노통자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대학의 수는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증가한 대졸자를 모두 흡수할 수 있었던 80년대 호 황의 거품이 꺼지고 나자 더이상 대학생은 과거와 같은 확실한 미래를 보장받 을 수 없게 되었다. 심화된 경쟁 속에서 학생들의 개인화 · 파편화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다. 한편 학벌의 정점에 있던 서울대는 구성원들의 계급적 성향’ 변화 를 추가적으로 경험했다. 대학 수의 증가가 낳은 또다른 결과는 대학의 서열화, 명문대 편중 현상의 심화였고, 서울대 입학의 문은 더욱 좁아졌다. 이 좁은 문 을 통과하기 위한 경쟁에서, 사교육의 기회에 있어 유리한 강남 출신자들이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에 강남 출신 선입생들의 비율이 해 마다 늘어감에 따라 학생사회의 구성원들의 계급적 성향에는 큰 변화가 생겨났 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은 학생사회에서 학생운동이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 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90년대 초는 학생사회에 있어 혼란의 시기, 그 자체였다. 95년도 총학생회 간부였던 서현수씨는 “기존의 운동이 ‘어 떻게 사회를 변혁할 것인가’ 라는 실천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면 90년대 초 학 생운동은 이제 ‘세계블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해석의 문제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이는 당시 학생운동진영이 겪었던 혼란을 잠 보여준다 학생운동이 빠르 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동안, 앞서 말한 사회적 변화 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개인화와 다원화라는 변화를 겪고 있던 학생대중들과 학 생운동은 서서히 괴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학생운동의 효율성을 위해 건설, 발전해왔던 학생회라는 기구가 가진 모순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었 다. 학생회가 투쟁의 선도조직으로 기능하는 가운데 그러한 투쟁들이 학생들의 생활에 기반하지 못한 관념적이고 거시적인 투쟁에 머무르면서 자연히 학생회 는 비민주적, 수직적이라는 비판에 직변했다. 이미 90년대는 독재정권이라는 명백한 적이 사라지고 운통이 더 이상 당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였다. “처 음 입학했을 때 학생회는 갖가지 행사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색에 신입생들을 물 들이려 했고 (선입생들에게는) 이에 대한 저항감도 분명히 있었다”는 김영준씨 (97 경제)의 말처럼, 저항하지 않아도 되는1 시기에 대학에 들어와 보다 심화된 경쟁에 던져져야 했던 90년대 학번들은 기존 학생회의 위상과 구조를 잘 받아 들이지 못했고 그 결과 학생회로부터 점점 멸어져 갔다. 이는 학생회 선거의 투 표율 감소로 나타나 95년도에는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 에서 처음으로 연장투표 가실시되기에 이르렀다 90년대 이후 담론의 코드- ’다양화”생활 속 담론’ 학생사회의 이 같은 변화는 학생사회의 담론 역시 변화시켰다. 80년대에는 민 중담론. 민중민주 · 민족해방과 같은 운동담론이 주를 이루는 ‘단일화’ 경향이 강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90년대 이후의 담론은 ‘다양화’ . ‘생활 속 담론’ 이라 는 두 가지 코드로 특징지어 진다. 90년대 중반 이후 기존의 거시적 사회 변혁 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조직 학생회 중심의 학생운동 대선 소위 부문운동, 주제 운동이라 불리는 다양한 운통들이 나타났다. 생태, 여성, 인권. 정보통신, 반핵, 과학기술 등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전문성을 표방하고 나타난 다양한 운동들은 기존 운동과 달리 사상적인 변에 치우치기보다 구체적인 생활에 기반한 담론들 을 형성하고자 시도했다 96년 결성된 관악여성모임연대(관악여모)가 2000년 반성폭력 학칙을 제정하고 여성문화제 개최한 것이나 2000년에 생긴 환경 동 아리 SAFE가 녹색교통수단으로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홍보한 인라인페스티벌, 생태문화제 등의 개최를 통해 생활 속 실천과 홍보를 시도한 것이 좋은 예이다. 기존 정치조직 중심의 학생운동 담론에서도 다양화 생활 속 담론 코드는 발견 된다. 학생사회에서의 영향력 감소와 위기 속에서 학생 대중의 다양한 욕구를 수렴, 반영해 학생회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열린 학생회’ 담론이 운동진 영 내에서 제기되었다. 93년에 출범, 94년 총학생회 선거에 참여한 ‘21세기진 보학생연합, (21세기)이 표방한 ‘네트워크 학생회’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 타난 젓이다. 처음부터 대학개혁을 기조로 내세웠던 21세기 뿐 아니라 기존 정 파들도 생활 속 담론을 생성하고자 노력했으나‘ 이미 학생회를 떠난 학생대중 의 관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기존 운동담론과 이를 조화시키는 데에 도 실천적인 한계가 있었다 46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정치운동과 대학개혁이 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대신 후자 쪽에 과감히 집중했던 ‘학교로’ 선본이 당 선되면서 학생회와 학생운동의 분리가 새로운 담론으로 떠올랐다 02,03년 학 생회 선거에서 21세기와 전학협이 출마를 포기한 것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 해할수있다, 특정 조직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로 생성되는 담론들의 경우에는 생활에 기반한 경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최근의 도서관 자보논 쟁, SNULife 자유게시판에서 이뤄지는 여러 주제의 논쟁들은 대체로 개인의 구체적인 생활과 관련된 주제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외부의 영향력 증대 90년대 이후 학생사회의 담론이 갖는 또 다른 특정은 ‘외부지향성’ 이다. 사회 가 민주화되면서 다양한 사회단체, 언론매체 등이 등장했고 이에 따라 학생들 은 학생 공동체, 학내언론과 같은 학내 매체보다 전문성을 갖춘 외부의 매체에 더 관섬을 갖고 귀를 기울인다. 조소영씨(경저]02)는 “파병이나 대선과 같은 시 사적 사안에 대한 입장을 결정할 때 주로 인터넷 매제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02년에 성사된 반전 동맹휴업의 경우에도 순수하게 학생회와 정치조직들의 역 량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학외 언론의 보도에 힘입은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 있 다. 이러한 학생들의 외부지향성은, 학생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궤를 같이하며 섬지어 ‘사회와 차별화되는 학생사회가 실재하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는 점에서 현재 학생사회에 존재하는 담론을 살펴보는 데 있어 핵심이 되는 특 정이라할수 있다 담론은 죽었는가?-담론 ’부활’을 위한 시도들 살펴본 바와 같이 여러 학생조직들, 혹은 개별 학생들에 의해 담론은 꾸준히 생성되고 있고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도 더욱 세련되어 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90년대 이후 학생사회의 담론은 ‘죽었다’ 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앞 서 언급했듯 학생사회 자체가 위기에 봉착하고 있고 이러한 현실이 탐론의 생 성과유통을큰장벽이 되어 가로막고 있는까닭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타개 할 방법은 없을까? 현재 관악에서는 학생공동체, 학내언론을 비롯한 여러 단위 들이 꺼져가는 학생들의 관섬을 다시 불지피고, 담론을 생성?유통하기 위한 새 로운 길틀을 모색하고 있다.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안고 있는 이러한 시도들 을 살펴봄으로써 우라는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꼭지에서 이를 다루 기로한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위기의 담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Next Post

현재 학내의 담론 형성,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