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대학사회에 담론이 있어야 한다면

”학생사회에 담론이란 게 존재할지 의문입니다.(오늘날과 같은) 다양성의 사회에서 학생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담론이 과연 있을까요?” 여성주의 자치언론「쥬이쌍스」의 편집장이 하는 말이다.2000년대 서울대에서 비교 적 정공했다1고 평가되는 매체를 만들고 있는 그녀조차도 ”담론을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고백한다.오늘날 대학에 담론이 있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조금씩 다르게 대답한다.

”학생사회에 담론이란 게 존재할지 의문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다양성의 사회에서 학생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담론이 과연 있을까요?” 여성주의 자치언론「쥬이쌍스」의 편집장이 하는 말이다. 2000년대 서울대에서 비교 적 정공했다1고 평가되는 매체를 만들고 있는 그녀조차도 ”담론을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고백한다. 오늘날 대학에 담론이 있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조금씩 다르게 대답한다. 위의 경우처럼 ’더 이상 담론은 없다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 고, 예전에 비해 약화되었지만 지금도 담론은 있다고 희망을 말하는 사람 도 있으며담론의 양상이 예전과 달라졌을 뿐’이라고 말하며 담론을 보는 시각 자체에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확실한 것은, 과거에 그처럼 분 명하게 보였던 담론의 존재가 지금은 불분명한 상태이고, 대학사회에 담론 이 존재해야하는 이유 또한 예전처럼 분명하게 말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설 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아니, 이것이 과 연 극복해야 할 문제적 상황이기는 한가, 아니 면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 스러운 현상인가? 여전히 대학사회에 담론은 필요한가 굳이 다른 곳도 아닌 1대학사회에 고유의 담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대학과 대학생이 갖는 특별한 사회적 의미를 강조한다 ”대학언론은 기성언론과 다르게 사회담론을 뛰어넘는 담론을 제 기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라면 현재 사회의 틀을 뛰 어넘는 도전적인 자세가 필요하며, 충분히 그러한 자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87년도 총학생회장 이남주 씨의 말은 그러한 생각을 반영한다. 요컨대 대학생은 사회 진보를 선도해야 할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가지고 있고, 그들은 젊고 개혁적이며 계급 적 이해관계에서도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그러한 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대학생들은 더 이상 엘리트 집단이 아 니기에 그들의 목소리가 갖는 영향력은 크게 낮아졌 i 선거 무산뒤, 선관위 주변 복도 고,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졸업 후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시대는 지났기에 예비 실업자로서의 불안에 떨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에게 진취적인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기대할 수 있는가. 적지 않은 사 람들이 여전히 1그렇다’고 대답한다. 24대 법대학생회장 신의철(법학?01) 씨는 ”학생사회에서는 말을 꺼내기가 편하다. 학생들은 기성세대들과 탈리 쉽게 받아들이고, 나름의 고민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사상과 지식 등에 민 감한 세대”라며 학생사회가 특별한 공간임을 역설한다. 게다가, 좋든 나쁘든 1서울대1라는 공간은 또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학생 집단이 소수 엘리트로서의 사회적 위상을 잃어버리는 동안에도 서 울대는 대한민국 엘리트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에, 서울대 안에서 오고가는 말들은 지금도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다. SNUnow의 고건혁(심리?99) 씨는 지난 11월 13일의 총학생회 선거 정책 간담회에 학생들보다 외부 언론사의 취재진들이 더 많이 찾아왔다는 사실 을 예로 들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 내부의 담론에 관심을 기울 이고 있다고말한다. 이처럼,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여전히 대학사회에 담론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1 서울대의 경우 특히 더 그래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담론이 사라졌거나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오가는 현재 상황은 분 명 문제가된다. 허공을 향한 외칩은 그만 … 말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 필요 담론은,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입장과 견해를 제시하며 대화하는 과정 에서 형성된다. 그런데 오늘날 대학사회에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대학신문」편집장 정석우 씨(통양사?01)는 총학 선거 간담회에 일반학생들 이 거의 찾아오지 않았음을 상기하며 ”지금의 선거에는 선본틀 간의 대화 만 있고 선본들과 일반 학우틀 간의 대화는 없다”고 말한다 요컨대 말하는 이들은 여전히 무언가 소리높여 외치고 있으나 그 외침을 들어야 할 이들은 이제 더 이상 듣지 않고 았으며, 이러한 대화의 부재는 곧 담론의 부재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2000년대 서울 대에서 어떤 담론을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작정 소리치는 일을 멈추고 1어떻게1 말해야 학생들로 하여금 ’듣게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 야한다. 물론 90년대 중반 이후 학생 운동가들은 대중 들의 관심을 되돌리기 위해 숱한 노력을 했지 만, 그 노력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 인 평이다. 학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대자보나 유인물의 대다수는 여전히 예스럽고 위압적인 말투로 자신들의 생각을 허공에 외치고 있다 텅 빈 아 크로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 이들은 아무도 오지않음을 한탄할 뿐, 아크로에 서의 합통 유세가 적절한 홍보방법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한편 사회대 03학변 기씨는 새터나 OT 등의 행사에서 부르는 80년대 민중가요, 그리고 자신들의 정치색을 강요하는 듯한 선배들의 태도에도 거부감을 느꼈 다고 말한다. 만일 일반학우들로 하여금 당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만들 고 싶다면 그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그 이야기 방식부터 포기해야 할 젓이 다. 그런 의미에서, “80년대 운통했던 사람들이 남긴 유산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한다 90년대에는 그 유산을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문제였지만, 지금은 어떻게 청산하는가에 주목해야 한다”는 고건혁 씨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아울러 학생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필요하다는 지적 도 있다 한때 선거신문을 만드는 등 학생회 선거에 관섬을 기울여 온 고건 혁 씨는 선본들의 구태의연한 운동방식을 비판하며, “예전에 한 비권 선본 이 멀티비전을 홍보수단으로 동원했던 적이 있는데, 학관 앞에 멀티비전을 갖다놓고 각 선본들의 홍보영상을 보여준다거나 했으면 꽤 관섬을 끌었을 것”이라고 예를 들었다. 학생들의 무관섬을 원망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부터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그러나 사실은 개인적이지 않은 문제들 사실, 흔히 일반 학우1로 지칭되는 그들이 공공의 문제에 언제나 무관심한 것만은 아니다 수많은 대자보들이 외면받는 가운데서도 도서관 열람실 개 방에 관한 대자보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읽을 뿐 아니라 A4용지와 포스 트잇으로 1리플1까지 써붙이는 열성을 보인다. 서울대 학별주의와 관련된 사 건이 외부 언론에서 기사화되면 SNUlife와 총학생회 홈페이지 게시판은 열 띤 논쟁으로 탈아오르곤 한다. 이처럼 자기 자신과 직접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라면 그들은 언제든지 귀기울여 듣고 또 말 할 준비가 되어있다. 문제는, 그들이 관심을 갖 는 사안의 범위가 딱 거기까지라는 점이다. 학점 관리, 진로 문제, 취엽 걱정 등등 온갖 개 인적인 문제들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 그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아주 좁은 범위에만 관심사를 한정시키곤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1개인적인1 문제들 가운데 상당수는 개인적 차원에서가 아 니라 공동체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다. 예컨대 교육개선협의회에 학생 대표로 참여해 재수강 제한 방침을 반대할 수 있는 주체가 결 국 총학생회임을 감안하면 ’재수강 제한’과 ’총 학생회 선거는 결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그 런데 김홍기 씨(사회대 · 03)에 따르면, 본부의 B-이상 재수강 제한 방침에 대해서는 많은 학생들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한편 총학생회 선거에 대해서는 대제로 무관섬한 태도를 보인다고 한 다. 재수강 제한에 따른 개인적 피해와 총학생회를 통한 공동체 차원의 대 응을 잘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 개혁, 환경 문제, 양성 평등, 노동문제 등 얼핏 보면 거시적이고 나와 는 무관하게 느껴지는 일들도 사실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 조금만 넓게 보 면 나의 ’개인적인’ 문제와 직결되는 일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일반 학우 1들이 조금만 넓은 시야를 갖고 나와 무관하지 않은 그 일들에 대해 보다 많 이 듣고, 말하고 대화하기 시작한다면 2000년대 관악에 담론이 사라지는 일은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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