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 국제 교류의 실태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국내에서는 ‘나름의 위치’를 확보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국내에 역량을 집중한 탓인지 아니면 국내에 만족을 한 탓인지 국제 교류에 있어서는 내용이 부실하며, 어떤 것은 없느니만 못하기도 하다. 취재 과정을 통해서 우리학교의 문제점과 타대의 사례를 비교하면서 서울대에서 국제 교류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과연, 국제 교류 전반에 있어서 서울대의 문제는 무엇인가? 학교 시스템의 경직성 우리 학교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관료적 분위기가 국제 교류에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있다. 제도 경직성으로 인해, 그리고 교육부의 통제 때문에 직원 수를 업무량에 맞게 증원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 국제 교류 담당 직원 한 명 충원하는데 몇 개월씩 걸리기가 일쑤고, 직원 수가 부족하다 보니 한 사람에게 부여된 업무량이 과중하여 현실 유지에 급급한 실정이다. 실제로 현재 공석인 교환학생 담당 직원은 적임자가 섭외되었지만, 계약과 임용 과정에 몇 달씩 소요되고 있다. 게다가 한 사람이 전세계에 산재된 협정 학교에 대한 업무를 떠 맡아야 하기 때문에 매년 교환학생을 선발해서 내 보내는 것마저도 버거운 형편이다. 유학 상담을 맡고 있는 콜린 박씨도 “몰려드는 학생들의 유학 상담에도 시간이 빠듯하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일을 추진하기는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외국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홍보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대외협력본부에 따르면 학교 소개 팸플릿을 외국 대학에 보내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것 이상의 홍보는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우리 학교에 유학을 올 유인이 많지 않은 이상, 홍보는 꼭 필요하다. 연세대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유학생을 유치한 뒤, 후에 이들의 입소문을 통해 현재와 같은 활발한 국제 교류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학교 전체적 상황과는 달리, 단대 차원에서는 빠른 의사 결정으로 인해 오히려 해외 대학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다. 경영대는 국제 교류 지원실을 만들어 국제 교류를 총괄하게 하는 한편, 미국, 중국 등 세계 유수 대학과 협정을 통해 학생을 교환하고, 공동 학위 프로그램을 개설한 바 있다. 경제학부도 5월에 세계적 권위의 경제학자 Barro 교수를 초빙하여 정규 교과를 강의하게 하였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구조가 빛을 발하는 것이다. 국제 교류 업무의 분산 현재 우리 학교에서 추진되고 있는 대외 사업 중에 국제 교류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일 수 있는 것으로 외국인 전형 선발 및 관리, 교환학생 파견, 해외 연수 프로그램, 한국어 강좌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들 사업은 부서 체계에 따라 책임이 분산되어 있어 비효율적이거나 공백이 생기는 문제가 있다. 가령 협정 관리 및 교환학생 파견, 외국인 전형 모집은 대외협력본부에서 총괄하지만, 교환학생과 비슷한 성격의 방학 중 해외 연수 프로그램은 본부의 학생과 주관이다. 또, 대외협력본부를 통해 선발된 학생은 일단 선발되면 소속된 단과대학에서 따로 외국인 학생을 관리하게 된다. 한편, 언어 교육원 또한 한국어 프로그램에 등록된 학생에 대해 International Festival 등의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 특별 전형으로 선발되었지만, 실제 해당하는 과에서는 별다른 지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 대외협력본부에 기숙사 신청을 하면서, 수강신청은 소속 단대에, 축제는 언어 교육원에서, 국내 답사 여행은 다시 대외협력본부에서 주관하여 일관성이 없고 외국인 학생에 대한 지원이 효율적이지 못하다. 교환 학생과 외국 연수 프로그램이 서로 다른 기준으로 선발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러한 비효율성은 학교 시스템이 관료적이고 경직되어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역대 총장들의 무관심 관료제의 몇 안되는 장점인 상명하달이라도 가능했다면 상황이 나아졌을 수도 있다. 국제 교류 문제는 서울대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인 총장의 의지가 있다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대학 간 학술 협정과 같은 경우 ‘대학간의 외교’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총장의 의지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총장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의 국내적 위치나 국내 정관계에 관심이 많았지, 서울대의 국제 교류 상황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다. ‘세계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이라는 말이 절대적 명제처럼 떠받들여졌지만, 이 역시도 서울대의 국내에서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의 일부에 불과하다. ‘서울대는 지원도 많이 받으면서 세계 백위권 대학에도 들지 못하냐’는 등의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면피용 대책이었던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기준 총장 시절 추진되었던 베이징대, 도쿄대, 하노이대를 잇는 베세토하(BeSeToHa) 프로그램도 총장간의 회의와 합창단 교류가 성과의 전부였으며, 4개대 공동의 사이버 대학을 만들고, 도서관 장서 목록을 통합 관리하겠다는 계획도 발표 후에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그나마 총장이 바뀌고 나서는 본부의 관심 밖으로 잊혀져 가고 있다. 총장뿐만이 아니라 교수의 역할도 부족하다. 다른 대학의 경우에는 교수의 개인적 연분이 협정 체결의 촉매로 작용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학교 교수들은 외국 유학 경험이나 교환 교수로 맺어진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학교 차원으로 확대시키지 못하고 있다. 국가적인 지원도 필요 대학의 국제 교류라는 것이 단지 대학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대학의 국제 교류가 궁극적으로는 국가 차원에서의 교류의 밑바탕을 형성한다. 또한 대학의 학문적 발전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의미도 있어서, 결국 국가의 발전에 귀결된다. 국립대라면 더욱 그러하다. 국가적 지원이 잘 갖추어져 있는 나라로 대표적인 곳이 일본이다. 일본은 학생 교류를 국가 홍보와 이미지 개선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 도쿄대, 교토대 같은 국립대에서는 AICOM(Abroad In KOMaba ), KUINEP(Kyoto University INter national Education Program)이라는 이름으로 교환학생을 위한 영어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모두 영어로 제공되며, 교과 과정으로는 일본어를 비롯하여 주로 일본의 정치, 문화, 경제, 역사를 가르치며, 일부 정규 교과목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사립대학에서도 별도의 영어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많은 교과목이 영어로 제공되고 있어서 외국 학생 유치를 용이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어에 친숙하지 못한 외국인도 일본어에 대한 부담 없이 일본 대학에 교류 학생으로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와 함께 일본 국제 교류 진흥 재단(AIEJ)을 통해 장학금 및 생활비를 지원해 줌으로써 정부차원에서 국제 교류를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일본은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의 국제 교류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일본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어 고충을 호소하는 외국인이 많은 우리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대체로 학문적으로 우위에 있는데다 국제적 인지도도 높기 때문에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보다 일본을 더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과 영어 프로그램 개설을 통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국제 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만의 특화된 무언가가 필요하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외국 대학에 있어서 우리 학교가 별로 메리트가 없다는 데 있다. 학문적 성과가 썩 뛰어난 것도 아니고, 호의적이고 적극적으로 국제 교류를 추진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외국 학생들도 비슷하게 느끼는 바다. 학문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추진해 나가야 할 과제로서, 단시간에 세계적 수준으로 맞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단계에서는 외국 대학에서는 제공하지 못하는 서울대만의 독특한 아이템이 필요하다. 가령, 한국, 동아시아 문화나 역사에 대해서는 우리 학교가 큰 준비 없이 당장이라도 관심있는 외국 학생에게 전략적으로 강의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분야다. 한국학을 강의하는 영어 강좌를 정규 학기나 계절 학기에 개설하여 수요를 창출하는 한편, 한국학이나 동아시아학 전공이 있는 해외 대학과 공동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상호 학생 및 교수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내 줄 것이 있어야 진정한 ‘교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핵심은 국제화 마인드의 부족 결국 서울대의 국제 교류의 문제는 한마디로 ‘국제화 마인드가 부족했다’고 요약될 수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모두 ‘국제화’를 외치니 덩달아 구색 맞추기를 시도했지만, 학교 전체적으로 적극적으로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현상 유지만 하자’는 식으로 국제 교류 업무가 추진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국제 교류의 의지가 있는 사람의 의지마저도 꺾이는 경우도 있다. 유학 지원 업무를 담당하겠다는 사람이 있음에도 몇 년간 유학 상담실이 개설되지 못했고, 총학생회가 추진하는 국제 교류 프로그램도 적극적인 협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외국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학생의 경우도 학교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처음에는 거의 맨몸으로 부딪혀서 경험을 쌓아야만 한다. 그리고 스스로 ‘굴러 들어온’ 외국인 학생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지원하거나 이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내국인 학생과의 교류를 추진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서울대 장기 발전 계획안’에서도 국제 교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그 방안은 구체적이지 못하고, ‘~해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로 가득차 있다. 그야말로 구색 맞추기가 아닐 수 없다. 또, ‘세계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이라는 목표를 세워 놓고, SCI 지수를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단기간의 성과만을 중시할 뿐, 전반적인 국제 교류의 큰 틀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국제 교류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이다. 사회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문화의 발전과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러한 네트워크가 국제적으로 더욱 확대되어야 하며, 대학이야말로 이런 역할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다. 학문적으로는 선진 학문을 수용하거나 국제적 공동 연구를 통해서 상호 발전을 꾀할 수 있다. 또 문화적으로 다양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국내 다른 대학은 이미 국제 교류 분야에 있어서 서울대를 앞서 나간 지 오래 되었다. 우리가 출발은 늦었지만, 바람직한 방향이라면 지금이라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재정 지원부터 시작해서, 완화된 구조를 바탕으로 진정한 서울대의 국제위해서 교류를 위한 마스터 플랜을 짜야한다. 이제 세계로 응시하는 열정적 눈을 뜰 차례이다. 서울대, 세계로 눈을 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