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정운찬 총장이 지역쿼터제 이야기를 꺼냈을 때의 분위기는, 마치 지난 지방선거에서 사회당이 교통수단을 무료화하자는 공약을 내세웠을 때랑 비슷했던 듯하다. 이상적일 뿐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없고, 심지어(!) ‘사회주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쿼터제는, 언론 및 사회 각계의 지지와, 급기야 교육 부총리의 공식적 지지를 받으면서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졌으며 오히려 지금은 오랜 교육적, 지역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의외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공공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주된 분위기는 늘 ‘시장’적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반드시 경쟁이 있어야만 사회가 성장할 수 있고, 자본이 생산한 상품을 이용하려한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반드시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원칙을 사람들의 머리 깊이 박아 넣는다. 지역쿼터제나 교통 수단 무료화가, 그 현실성 여부를 미처 따지기도 전에, 황당한 소리로 매도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 1의 공리인 이 ‘시장’의 원칙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제 한국 사회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가 이 ‘시장’의 원칙이 독점하고 있는 가치 판단의 공간에, ‘공공성’이라는 또 하나의 잣대를 집어넣을 수 있는 때가 온 것 같다. 지역쿼터제는 시작일 뿐이다. 당장 비정규직 문제로 싸움하는 관악사 노조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는 일에서부터 기초학문 지원 확충, 장학금 등의 필요에 따른 분배 등 무수히 많은 방법이 가능하다. 정운찬 총장과, 뜻을 같이 하는 서울대인의 힘이 모여 ‘공공성’이라는 가치 기준을 서울대에,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에까지 파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