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늦은 아홉시였다. ■그날이 오면(이하 ‘그날’)■앞에서 9시가 될 무렵 도착했을 때 김은미씨는 이미 그 전에 도착해 ‘그날’ 아르바이트 학생과 대화 중이었다. 여성운동가하면 똑부러지게 생겨서 말 걸기 힘들지 않을까하는 ‘평범한 편견’과는 다르다. 그녀는 항상 다정한 얼굴을 지니고 다닌다. 술집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질 때까지 항상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음이 그것을 잘 말해주리라. 창간된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최근 달걀논쟁으로 여성언론자치기관지로서 훌륭히 역할을 해내고 있는 쥬이상스의 편집장… 그녀의 생각을 만나보자. 기자 : 대학 와서 무슨 일들 하셨어요? 이것저것 여러 일들을 해오셨던 걸로 아는데.. 어떤 활동들을 해왔어요? 학점은 괜찮은지… 김은미 (이하 김) : 음… 뭘했더라? 우선 과학생회 잠깐 하구, 관악 여모 좀 하구 작년에 SNUnow 하다 올해 2월에 쥬이상스 편집장을 맡아서 열심히 하고 있죠. 학점은 저도 잘 몰라요. 그냥 매학기 장학금 받은 정도?! (웃음) 기자 : 한때, SNUnow에선 “글 쓰는 기계를 숨겨두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김: (조금은 쑥스러워하며) 설마 그런 기계가 있겠어요. 그냥 열심히 썼어요. 기자 : 쥬이상스를 만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필진들도 궁금해요. 김 : 원래 언론쪽에 계속 관심이 있어왔고, SNUnow에서 활동을 하다가 작년 ‘성폭력 논쟁’이 쥬이상스를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쥬이상스는 각자 여성 운동을 열심히 하던 2~3명이 모여서 만들었는데 지금은 사람이 늘었어요. 이름은 있는데 활동하지 않으신 분들도 있고, 비정기적으로 많이들 왔다갔다 해서 적게는 4명에서 많을 때는 8명까지도 활동해요. 회의는 개학하면 화요일 5,6시 정도에 할껀데 편한 분위기에서 많은 이야기 나누니깐 많이들 오세요~~ 기자 : 처음에 쥬이상스를 기획할 때 어떤 사람들이 볼 꺼라고 생각했어요? 김 : 좁게 말하면 여성운동을 하는 분들과 여성운동에 관심 있는 학우들이라고 할 수 있고, 넓게 보자면 관악의 여학우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글을 보시면 알겠지만, 여성운동가들이나 여학우들이 좋아하고 재밌어 하고.. 기자: 창간호를 보면서 “분리주의를 지향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는데 쥬이상스가 분리주의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건가요? 김: 음…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그렇게 글을 쓰시는 분도 있어요. 확실한 건 분리주의 페미니즘이 하나의 운동으로서 얻은 성과는 분명히 무시할 수 없다는 거죠. 제가 사실 총여학생회(이하 ‘총여’)에 대해서 안 좋게 생각하는 부분이 그 부분이거든요. 관악에서 총여가 남학우들에게도 지지를 얻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구요. 다른 학교 같은 경우에는 대자보를 찢거나 하는데, 관악 같은 경우에는 그런 물리적인 방해는 없지만 게시판이나 토론회 같은 경우에 많은 논쟁이 있어왔죠… 논쟁을 하다보면 논쟁이란 보통 공부를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더 커지죠..(웃음) 기자: 김은미씨는 분리주의 페미니즘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김: 사람들이 왜 분리주의 페미니즘을 경계하고 오해하는 거 같아요? 기자: 여성과 남성은 어차피 같이 살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인 거 같은데요… 김: 저 같은 경우에도 그렇게 생각해요. 남녀가 같이 사는 건 일반적인 경우에 당연한 이야기죠. 그런데 같이 살 수 없는 사람들이나 같이 삶으로써 오히려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분리주의 페미니즘이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페미니즘이 될 수 있죠. 과내 여성주의 소모임 있잖아요. 그런 게 분리적이다 해서 오해를 살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안에서 여학생들이 굉장히 편하게 지내잖아요. 오해를 살 지점이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하지 말라고 할 순 없잖아요. 기자: 대학신문과의 ‘달걀’詩 논쟁은 어떻게 되가고 있나요? 그 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어떠세요? (쥬이상스는 ‘달걀’시에 대한 반박시를 대학신문 지면에 실으려했으나 대학신문 측의 거부로 인해 무산된 적이 있다.) 김: 쥬이상스 소개하고 마찰에 대한 경과를 보내주는 걸로 일단 마무리 짓기로 했어요. 달걀이 반여성주의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쥬이상스에서는 대학신문의 입장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지 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쥬이상스에 반박시를 적으면서도 작가한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대학신문의 글들을 본 후, 서로 깔고 있는 전제가 너무 다르다는 생각을 했죠. 결국 입장차이가 너무 커서 얘기해 논쟁이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중립성을 지키려다 겉도는 느낌이랄까… 기자: 추석때는 집에 내려가시나요? 김: 안 내려갈 꺼 같아요. 집이 인천으로 이사오기는 했지만… 기자: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게 되게 신경도 쓰이잖아요. 어떠세요? 김: 가족과 싸우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집에서 제가 학교에서 뭘 하는지 잘 모르거든요. 얘기를 좀 하기는 하는데… TV를 보면서 문제다 싶은 거 얘기하기도 하는데 잘 못하죠. 이런 부분에 대해서 노력해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기자: 곧 졸업인데… 졸업하고 계획한 일이 있어요? 김 : 대학원 가지 않을까요. 공부를 좀 더 해야될 것 같아서요… 기자 : 여성운동 하시는 분들은 졸업 후 보통 어느 쪽으로 진출하죠? 김: 워낙 흩어지니까 저도 사실은 잘 모르겠는데…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운동단체에 들어가기도 하고, 언론사에 들어가기도 하고, 그냥 회사원이 되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순수한 페미니즘을 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여성주의가 다른 문제와 같이 다뤄야 하는 거잖아요. 아는 언니의 경우에는 여성노동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계속 운동을 하기 보다는 직장 생활을 익히고 나서 다시 운동을 하신다는 분도 있구요. 맘 먹고 들어가서 운동할 단체가 많은 것도 아니고… 대학에 있는 영(young)페미니스트가 마음 놓고 진출 할 수 있는 곳이 흔하지는 않죠. 여성운동이라는 게 딱히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닌 거 같아요. 기자: 여성주의에서 다들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 다르잖아요. 특별히 관심 있는 부분이 있으세요? 김: 제 경우에는 성폭력이나 성매매 이런 부분은 다 관심이 있고 대중문화 속의 여성주의에도 관심이 있어요. 특히 전쟁 이후의 근대화과정에서 여성의 삶이나 전쟁이라는 것이 여성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더 공부해 보고 싶어요. 이 부분이 앞으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인 거 같기도 하고… 기자: 여성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고 여성을 주체로 만드는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김: 모든 운동에서 그렇겠지만 많이 대화하구 접근하구… 그래야겠죠. 그렇게 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당신은 여성이니까 여성주의자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고 또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인식할 틀이 존재하지 않잖아요. 워낙 파편화 되었으니까 위기상황이 되었을 때 인식하게 되면 여성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관심을 가지고 같이 할 마음이 있으면 같이 하는 거구요. 기자: 혹시 김은미씨는 그런 개인적 계기가 있나요? 김: 저는 살면서 잘 안하는 거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웃음) 왜 아무도 안가르쳐 줬는데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런 거 있잖아요. 좋아하고 재밌게 봤던 소설이나 맘에 드는 미술작품 같은 거는 거의 여성주의 작품이었어요. 오정희씨 소설 되게 좋아해요. 그리고 직접적 계기라면 작년 ‘성폭력사건 논쟁’을 지켜보고 참여한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자: 그럼 인상깊게 본 여성주의 예술작품이나 영화 있으면 추천해 주실 수 있으세요? 김: 그거야 많죠. 근데 만화 말고는 본게 없어서… 자세히는 모르겠네요.(웃음) 별로 안 알려진 건데 ‘호박과 마요네즈’, 아시려나?! 여성주의적인 만화라기보다는 감수성이 좋은 거에요. 이진경씨 만화정도면 여성주의적인 것 같아요. 영화는 ‘바그다드 까페’ ,’연어알’… 되게 많은데 갑자기 애기할려니깐 잘 기억이 안나네요.(웃음) 기자: 이제 곧 개강인데 쥬이상스에서 생각하고 있는 2학기 사업이 있나요? 김: 몇몇 단대 선거에 개입을 하자는 이야기가 있기는 한데… 몇 년 전에 인문대에서 그림자 선본이 있었잖아요. 그렇게 개입을 해보자는 얘기가 있구요. 관악 차원에서 간담회를 하자는 얘기도 있고, 제 경우에는 겨울방학에 오픈 세미나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성주의 밴드를 교육(?)시킨 다음에 문화제를 같이 꾸며볼까 하는 생각도 하구 있어요. (웃음) 기자: 쥬이상스가 은미씨가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을 주고 있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앞으로 쥬이상스에 기대하는 게 있다면요? 김: 일단은 그런 것 같아요. 물론 나온 게 아직 두 권 밖에 안되긴 했지만…(웃음) 앞으로의 기대라면, 지금까지 여성주의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언론이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선 그런 사람들이 와서 정보를 얻거나 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구요. 그리고 마음껏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들을 피력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시작 단계니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죠. 내심 질문에 막힘없이 답하는 김은미씨의 말솜씨가 매우 부러웠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여성운동에 대한 강한 애착과 열성이 느껴졌다.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나는 그녀가 편집장인 쥬이상스, 앞으로 꼼꼼이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