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부터 학내에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본부 교육정책 불신임에 대한 총투표가 25,26,27일 진행되었고, 28일, 약 천 명의 학생이 모인 가운데 서울대인 비상총회가 개최되었다. 29일 새벽 1시 45대 총학생회(이하 총학)는 비상총회 직후 본부 내 총장실을 점거하였다. ‘6년만의 비상총회’, ’14년만의 총장실 점거’라는 화려한 수식어들이 따라 붙여지고 사회 언론매체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정도의 이슈가 되었다. 외부 언론은 물론 학내에서조차 이러한 일련의 총학의 움직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총학이 총장실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자치’를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사전에는 ‘자치(自治)란 ①자기의 일을 자기 스스로 다스리는 것. ②자연히 다스려지는 것. ③(법률·법학) 지방 공공 단체가 그 범위 내의 행정·사무를 공선된 사람에 의하여 행하는 것.’ 이라 정의되어 있다. 굳이 이렇게 세분화된 정의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치’에 대한 개념은 어렴풋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글자 그대로 ‘스스로’ 다스리는 것. 자신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최대한 자신의 의사를 개진하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 가는 삶의 기본적인 요소로서 말이다. 그렇다면 대학 내에서 학생으로서 우리는 어떤 자치를, 어떤 자치권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자신을 스스로 다스린다’ 라는 자치의 개념에 대해서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회 내의 구성원간에는 자치라는 개념이 해당하는 범위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학생들의 경우 학생들이 생활하고 학생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학사회 내의 전반적인 일들에 대해서 참여하고 개입해야 할 것이라 하여 그 범위를 넓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교수들의 경우 “학생들이 학사행정 등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만 교육제도 결정 등에 개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서양사학과 최갑수 교수)”, “학문을 발전시켜야 선진국이 되는데 운동권 학생들은 그런 것을 모른다,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 총장실 점거중인 총학생회장과의 토론 중 – (중어중문학과 허정도 교수) 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의 제외사항을 두는 입장이다. 본부의 경우는 학생의 자치권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각 주체마다 자신의 입장에서 유리하게 자신들의 권리와 자치의 범위를 설정해 놓긴 하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생활하는 ‘우리’의 ‘대학’공간 안에서 우리와 직접 부딪히고 영향을 받게되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사회의 한 주체로서의 우리 학생, 교직원, 본부. 크게 나눠보자면 이 세 가지가 각자 나름의 위치와 자리를 가지면서 대학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대학사회의 구성원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세 주체들간의 역할과 영역은 각각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사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느 부분 하나라도 독단적으로 제 이외의 것을 배척한다거나 타 주체의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건설적인 행보는 커녕, 건강한 사회의 유지조차 어렵게 되어 버리기 쉽다. 지금 다시 학교를 돌아보자. 세 구성원간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동반자적인 수평 구조라기보다는 위계적인 수직 구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대학 내의 여러 가지 사안에 있어서 본부의 일방적인 결정과 통보가 난무한 상황이고, 이러한 태도에 대한 학생들 및 교직원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최근 광역화, 6학점 제한, 등록금 인상, 캠퍼스 이용규정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 학생들에게는 독단적인 결정 내용을 따르는 것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주어지지 않았으며, 결정 과정에 있어서의 개입조차 시도할 수 없었다. 대학신문에서 마련했던 총학생회장과 교수와 총장과의 토론자리에서 학생이 학교의 일에 관여하는 것에 관한 질문에서 ‘학생이 학교행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 단언했던 이기준 총장의 대답에서 이러한 본부 측의 태도는 극명해 진다. 이렇게 대학사회 안에서 한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재 우리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음대·의대 대학원 등록금인상 문제, 광역화 문제, 경영대 자치공간문제 등과 관련해서도 여러 학생 자체 단위들의 집회와 시위, 단식 농성, 퍼포먼스 등과 같은 움직임들이 있었으나 이에 대한 본부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였다. 우리들의 자치를 찾아내고자 총학은 갔다. 그동안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은 본부를 향해서 우리의 것에 대한 요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묵살되었던 학생 자치단위로서 인정과 우리들의 의견과 권리를 되찾아보고자 총장실로 갔다. 대학의 주체로서 우리가 가지는 권리에 기반하여 등록금 인상 저지(등록금 인상분 반환과 등록금 책정협의회의 건설), 모집단위 광역화 철회 및 민주대학 쟁취, 이기준 총장 퇴진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요구안을 내놓았고, 많은 마찰과 협의 끝에 총장실 점거 11일째인 8일 새벽 총학생회가 본부 측과의 합의문을 발표하고 총장실에서 내려왔다. 합의문에는 본부에서 등록금 인상분의 일정액을 학생들에게 환원하며(환원방식은 차후 논의) 기성회 이사회에 학생대표의 참가를 허용하고 학장단-총운위원 연석회의를 정례화하여 이 자리를 통해 2004년 광역화와 관련한 논의 진행할 것이며 미등록제적 학생에 대한 구제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지게 되었다. 물론 이 합의문에 담겨져 있는 내용이 앞으로의 실행을 보장해 준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어려운 과정 끝에 우리들이 하나의 주체로서 대학사회의 운영과 발전 방향 등에 참여할 수 있는, 우리가 우리들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자치’의 권리가 공식적으로 합의되고 승인되었다는 사실은 점점 좁아져서 거의 닫혀버린 학생자치의 기회를 다시금 넓힐 수 있는 하나의 시발점으로서, 또한 다른 작은 자치단위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뜻 깊은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치’를 향해.. ‘자신을 스스로 다스린다’라는 것 자체도 참 어려운 이야기이다. 자신의 복잡다단한 모습과 상황들을 정리하고 조정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방학 첫 날 한껏 세운 계획표를 보며 한숨짓던 개학 전 날밤의 자신을 생각해보면 금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내리는 것도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개인 한 사람 자체의 다스림조차도 수월하지 않은데 이렇게 집단과 집단과의 사이에서, 집단내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자체적인 다스림을 이뤄내는 것의 어려움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놓아버릴 수는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많은 고민과 치열함이 필요할 것이나 자칫, 이러한 열정에 빠져서 현재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치를 갈망하고 자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가운데 실행착오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앞만 보며 급하게 정신 없이 달리다가 놓치고 다치게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고민들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시대의 정신 없음에 쫓겨 자치와 자치권에 대한 의식과 그것을 찾고자 하는 의욕도 많이 흐려지기 쉬운 현 상황에서 자신의 온당한 권리와 위치를 되새겨보고 만들어가려는 인식의 정립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학생자치는 이것이다 학생자치의 범주는 이것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의미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규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하는 것이고 또한 그것을 위해 싸워야겠지요. 자치권은 사실 학생들의 권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 가장 우려스러운 모습은 그러한 권리의 확장을 위해서 함께 싸우는 모습보다는 주어진 권리 속에서 서로 조금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해 다투는 모습들입니다.”(류정선 교육투쟁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