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했다. 서울대 입구 쪽에서 학교로 올라가던 고갯길, 양쪽에 즐비하게 늘어선 전경차들. 일사불란하게 도열해 있는 전경들. 그 풍경은 그 자체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문득 공무원 노조 출범식이 서울대에서 강행될 지 모른다고 했던 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버스가 정문 앞에서 멈춰 섰다. 못 들어가게 한단다. 정문을 전경들이 막아서서 셔틀 외 버스는 들여보내지 않고 통행차량들을 일일이 세워서 검문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정문 양쪽에서는 한 사람씩 겨우 들어갈 통로만 열어놓고 통행인들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고 있었다. 통행 버스를 출입을 막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모든 통행인들을 대상으로 방패를 든 전경들이 길을 막아서서 위압적으로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강한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는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학교에 들어가려는 나를 막아서고 신분증을 요구하는 전경. 그냥 걸었지만 이내 다시 막아선다. 화가 났지만 무심코 지갑을 대충 열어 힐끗 보여주고 통과했다. 그 순간, 내 조금 뒤에서 오고 있던 한 학우를 갑자기 전경 3∼4명이 방패를 내세워 막아섰다. 신분증 제시 요구를 거부한 모양이었다. 그 학우는 막아선 전경들을 뿌리치고 화를 내며 자신은 서울대 경영대 학생이라고 했는데 왜 막아서냐, 이거 불법 아니냐고 격렬하게 항의하며 들어갔다.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에 분노를 하면서도 항의 한번 하지 않고 순순히 학생증을 보여주었던 나의 비겁함에 화가 났고 한편 그것은 무력감으로 나를 엄습했던 것이다. 3월 23일. 돌이켜보면 그날 이루어졌던 불심검문은 명백한 불법이었다. 불심검문은 경찰관이 거동이 수상한 자를 범죄 예방의 차원에서 정지시켜 질문하는 것인데, 그 법적 근거는 경찰관직무집행법에서 찾을 수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 1항은 ‘경찰관은 수상한 거동 기타 주위의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어떠한 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또는 이미 행하여진 범죄나 행하여지려고 하는 범죄행위에 대하여 그 사정을 안다고 인정되는 자를 정지시켜 질문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고, 4항은 ‘질문하거나 동행을 요구하는 때에는 경찰관은 당해인에게 자신의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를 제시하면서 소속과 성명을 밝히고 그 목적과 이유를 설명하여야 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5항에는 이러한 불심검문에서 질문을 받는 시민은 ‘형사소송에 관한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신체를 구속당하지 아니하며, 그 의사에 반하여 답변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렇게 그 요건과 행사방법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는 것은 공권력이라는 우월적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권리가 침해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의 불심검문은 법의 규정을 완전히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진행되어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첫째로, 경찰은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 모든 사람들을 아무런 객관적·합리적 판단 근거 없이 ‘무차별적으로’ 검문을 하였다. 그날 불심검문이 공무원 노조 출범식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음을 고려할 때, 굳이 검문 대상을 가린다면 공무원노조 출범식에 참석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어야 하고, 그것도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서 가려질 것이 아니라 주위 정황을 합리적으로 고려해 보았을 때 ‘출범식에 참석할 것이라 판단할 만한 상당한 이유’를 근거로 가려져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경찰은 고등학생들에게까지 학생증 제시를 요구하였는데, 이는 법을 무시한 공권력의 남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둘째로, 불심검문을 하고 있는 경찰 중 단 한 사람도 자신의 소속과 성명, 검문의 목적과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이것은 불심검문이 꼭 자의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인데, 적법 절차에 의해서 행해지지 않은 사법·행정 작용은 그 목적과 의의에 상관없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원칙이 우월한 국가권력의 횡포로부터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미 오래 전부터 정립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거수만 한 후에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 불심검문은 애초에 그 정당성을 잃었다 할 것이다. 불심검문이 법이 규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남용되고 있으며 그것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문제 제기는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2000년에 형사정책연구원이 서울시민 4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83%가 불심검문이 불쾌하다고 응답했으며, 82.9%가 자신을 검문하는 경찰관의 소속과 성명, 검문 목적과 이유를 고지 받지 못했으며, 시민이 신분과 소속을 밝히라고 요구했을 때에도 못 들은 척 무시하거나(40.4%), 불쾌해하며 거부한 사례(25%)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31.4%는 소지품 검사까지 당해 수치심을 느꼈다고 응답했고 경찰관이 가방을 빼앗아 개방한 경우도 5.7%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그것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집회 현장 주변에서는 대학생들이 집회에 참여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으로 불심검문을 당하고 있으며, 적법 절차를 지키면 어떻게 수많은 사람을 일일이 다 검문할 수 있겠느냐는 행정 편의적 발상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부당하게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불법 불심검문에 대한 불감증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불법 불심검문에 그대로 응해주고 있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3월 23일의 불심검문에서도 불심검문에 항의하는 사람들보다는 빨리 신분증을 보여주고 통과하려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 이러한 불법 불심검문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 이제 필요한 것은 그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응하지 않는 ‘불복종 운동’이다. 부당한 권력 집행에 저항하는 것은 성숙한 민주 시민의 의무이자 우리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인 것이다. 직접 행동으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면, 경찰과 국가 입장에서는 한없이 편하기만 한 현재의 불법 불심검문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는 것은 불법 불심검문에 항의하는 우리들의 실천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