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보적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선뜻 내리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이는 진보란 말을 정의하는 것 자체부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라는 화 두는 끊임없이 대학사회에서 고민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재 서울대생들은 이렇듯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진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서울대저널』에서는 300여명의 학우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여 서울대생의 진보에 관한 의식을 살펴보고, 학우들이 생각하는 진보적 인사와 단체를 선정해보았다. 정치성향 ‘중도적’- 41% 우선 정치적 성향에 대한 질문을 자기 자신, 다른 서울대생, 한국 사회로 나누어 질문을 던져보았다. 첫 번째,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137명(41%)의 학우가 스스로 자신이 ‘중도적’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답하였다. ‘진보적’이라고 답한 학우는 96명(29%)으로 나타났고, ‘보수적’이라는 답변에 61명, ‘매우 진보적’에 28명, ‘매우 보수적’에 답한 학우는 7명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 서울대생의 전반적인 정치성향을 묻는 질문에는 ‘중도적’이라는 답한 학우가 132명(40%), ‘보수적인 편’이라는 응답이 114명(35%), ‘진보적’이라는 응답이 76명(23%)으로 집계되었다. 세 번째로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정치성향에 대한 물음을 던져본 결과 160명(73%)의 학우들이 ‘보수적인 편’이라고 답했으며, ‘매우 보수적’이라 답한 학우가 45명(20.1%)에 달했다. 위 세 가지 문항에 대한 결과를 살펴보면, 고려 대상의 범위가 차츰 넓어질수록 ‘보수적인 편’이라고 답한 학우의 비중이 높아짐을 볼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비해 서울대생의 정치적 성향, 그리고 그보다는 한국 사회의 정치성향이 더 ‘보수적인 편’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에서 드러나듯이 대부분의 학우들이 한국의 전반적인 정치성향을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남들은 나보다는 ‘보수적’일 것이라는 막연한 판단이 그 이유가 아닌가 싶다. 한편 앞으로 10년 후 예상되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성향의 변화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108명(49.3%)의 학우들이 ‘별 차이 없을 것’이라 답했고, 94명(42.9%)의 학우들이 ‘좀더 진보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준만 교수, 진보적 인사 1위에 뽑혀 진보적인 인사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을 묻는 질문에서 52명의 학우들이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를 1위로 뽑았다. 2위로는 근소한 차이로 50명의 학우가 박노해 시인을 선택했다. 강준만 교수는 왕성한 창작 활동과 기고글을 통해 언론 개혁과 한국 사회의 병폐에 대해 문제제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그러한 활동들이 학우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노해 시인은 91년 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많이 알려진 인물이며, ‘노동의 새벽’ 등의 시집을 통해 노동자의 삶을 노래한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급진적인 노동운동을 했다는 전력이 학우들에 의해 ‘진보적’으로 평가되었던 것 같다. 다음으로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가 각각 36명, 35명의 답을 얻어 3, 4위를 차지했다. 설문문항에 보기에 예시되어 있던 정치인 중에는 노무현, 권영길 씨가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 ‘개혁적’ 세력으로 분류되고 있는 노무현 고문은 언론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며 조선일보와 맞서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하여 지역주의를 타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 학우들이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는 명실공히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 운동의 선두에 서 있다고 하겠다. 한국 사회의 정치성향을 ‘보수적’으로 평가한 대다수 학우들이 진보정당 운동을 ‘진보적’으로 평가하면서 권영길 대표를 진보진영을 상징하는 인물로 선정했으리라 생각 수 있다. 그 외에는 단병호 민주노총위원장이 5위를 차지했으며, 김근태, 백기완, 진중권씨 등이 진보적 인사로 꼽혔다. 우선 학우들로부터 진보적 인사로 평가받은 사람들은 설문문항에 예시되어 있던 다른 인물들에 비해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지니고 있는 이들이었다. 반면에 진의가 무엇이건 간에 강준만 교수가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 칭했다는 사실과 박노해 시인 역시 98년 석방 이후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상대적으로 인물 개개인의 정치적 지향이나 사상 등은 설문결과에 체계적으로 반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겠다. 1위 참여연대, 2위 한겨레 진보적 인사를 묻는 질문에 이어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대표적인 진보적 단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75명의 학우들이 참여연대를 1위로 꼽았다. 참여연대는 ‘참여’와 ‘인권’이라는 대의 아래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활발한 활동력과 시민단체로서 가지는 대표성이라는 측면에서 학우들이 많은 점수를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으로 58명의 학우들이 뽑은 한겨레신문사가 2위를 차지했다. 이전에 대학신문에서 실시한 설문(2001년 4월 2일자)에서 학우들이 선호하는 매체로 ‘한겨레’가 강세를 보인 바 있듯이, 한겨레는 조선, 중앙, 동아 등 기존의 중앙매체와는 달리 언론개혁에 있어서의 적극성을 보이는 동시에 노동운동을 비롯한 시민운동과 관련된 논조에 있어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학우들의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음으로 46명의 학우들이 민주노총을 진보적 단체로 꼽았다.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를 이어받은 민주노총이 노동운동의 중심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표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 인터넷 언론인 오마이뉴스가 4위, 근소한 차이로 민주노동당이 5위를 차지했다. 참여연대나 한겨레가 민주노총이나 진보정당에 비해 더 많은 표를 얻었다는 결과 역시 각 단위의 기본적인 지향점 못지 않게 실제로 각 단체가 사회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력이라는 측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 주로 이차적인 견해를 생산해내는 언론매체가 그 자체로 높은 지지를 얻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한데, 일차적인 견해를 내고 활동하는 단체에 비해 그를 보도, 가공하는 언론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케 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끝으로 진보적이라 뽑힌 인사나 단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학우들이 노동운동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장 보수적인 영역, 정치 다음으로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인 활동이 가장 활발한 영역과 가장 보수적인 분야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에 대한 보기로는 통일, 노동, 환경, 여성, 문화, 정치, 교육, 언론의 8개의 분야를 제시하였는데, 25%(74명)에 해당하는 학우가 노동 분야에 가장 많은 점수를 주었다. 그 다음으로 나란히 16.6%(49명)으로 환경, 여성이 진보적 활동이 활발한 분야로 선택되었다. 그밖에 환경이 12.5%(37명), 통일이 11.5%(34명)를 차지했으며 정치 분야에 대해서는 가장 적은 수의 답이 나왔다. 이어서 보수적인 분야를 묻는 질문에서는 52%(155명)의 학우가 정치라고 답했다. 여성이 11%(35명), 교육과 언론이 나란히 9%(28명)의 분포를 보였다. 결국 학우들은 지금의 정치 현실을 보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앞서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정치 성향을 ‘보수적’이라고 평가한 것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정치에 있어서의 보수성이 현재 한국 사회에 있어서의 보수적인 흐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학우들이 생각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판단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현재 진보진영운동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어보았다. 98명(31.5%)의 학우들이 ‘보통이다’라고 답했고, ‘못하고 있는 편이다’에 91명(29.2%), ‘잘하고 있는 편이다’에 43명(13.8%)이 답했다. ‘잘 모르겠다’는 학우도 59명(18.9%)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진보진영운동에 그리 후한 점수를 주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