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날 오후, 문화관 중강당에서는 국내 모 대기업 취업설명회가 진행되고 있다. 시작 시간까지는 아직 10여분이 남았지만 강당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 필자 역시 그 속에 자리를 잡는다. 앞, 뒤에서 오가는 말이 들린다. 어디에 넣었어? 거기 몇 명 뽑는다며? 어디서 연락 왔니? 거긴 어떻대? 설명회의 시작을 기다리며 작은 목소리로 정보를 나누는 취업준비생들의 표정은 굳어 있다. 취업,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지만 쉽지도 않다? 작년에 경영대 게시판에 누군가 재미있는 랭킹을 올렸다. 서울대 경영대 학생들이 선택하고 싶은 진로에 관한 주관적인 랭킹이었다. 1위는 역시 경영대답게 CPA, 2,3위는 연봉이 높은 금융권과 외국계 컨설팅, 4위는 한국은행 등 공기업, 5,6위가 사법, 행정고시 그리고 6위가 삼성전자 등 일반 제조업이었다. 서울대 경영대 학생들이 일반 사기업 취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고시학원이라 불릴 만큼 많은 수의 학생들이 소위 ‘고시’라는 로열 코스로 달려가고 있고, 그것이 아니면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 남아 가장 지적인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일반 기업에 말단 직원으로 들어가서 잡무에 시달려야 할 법한 취업이라는 선택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인 것 같다. 항상 최고의 엘리트로 인정받아온 서울대생에게 취업이라는 것은 ‘이것저것 하다가 안 되면’ 선택할 수 있는 보루라는 생각이 은연중에나마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04년 하반기 취업을 앞둔 서울대생의 마음은 그다지 여유롭지 못하다. 몇 년 전에 생겨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취업진로센터의 프로그램만 봐도 그렇다. 다른 대학에는 예전부터 있었던 취업진로센터가 유독 서울대에서만 얼마 전에 생겨난 것도 그만큼 서울대생이 취업에 관심이 없었고, 관심이 있더라도 별다른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취업진로센터의 이력서 작성법 등 각종 프로그램은 신청자가 넘쳐난다. 일주일에 한두번 이상씩 열리는 회사 캠퍼스 리크루팅도 매번 성황을 이룬다. 학생들의 취업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일까? 그것보다는 ‘안 되면’ 한다던 취업이 이제 그것도 ‘안 되기’십상이라는 위기감으로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대’라는 막강한 타이틀도 청년실업대란시대라는 파고를 비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서울대 타이틀이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높은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쉽게 말해 눈높이를 낮춰 취업만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회사가 한정되어 있다고 보았을 때 그 속에서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상당히 많은 수의 학생들이 좋은 학벌과 학점, 토익 점수를 가지고 번번이 취업 전선에서 낙방하고 있으며 때로는 취업 재수생의 길을 걷기도 한다. 그러니 취업을 앞둔 서울대생의 마음은 엇갈린다. ‘취업?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아. 그렇지만 취직이 안 될 것 같아 불안해.’ 서울대생의 이러한 애매한 태도는 취업 준비에 있어 상당한 장애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취업 자체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리 그것을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인턴 프로그램 참여라든가 토익 등 영어 점수 준비, 자격증 준비, 학점 관리 등 소위 말하는 취업 준비도에 있어 서울대생이 성적은 과히 좋지 않다. 이 같은 준비 부족은 종종 서울대생의 높은 이,퇴직률과도 연관된다. 이후 진로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이해하지 않고 일단 취업을 해 놓고 보기 때문에 일에 대해 실망하고 금방 다른 일을 찾거나 학교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취업에 대한 서울대생의 상대적 무관심은, 최소한 대학 입학부터 취업 준비에만 몰두하는 부정적인 대학문화를 형성하지는 않지만, 결국 사회에 진출해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그런 점에서 최근 서울대생의 취업에 대한 관심 증가는, 그 근본적 원인이야 어떻든 간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취업 준비생의 사회적, 경제적 여건에 따라 정보력 등 취업 준비도 달라 문제는 관심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얻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사실이다.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교의 지원도 늘어나고 학생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사의 채용설명회나 진로취업센터의 관련 프로그램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인터넷을 2시간 정도 뒤지면 찾을 수 있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표면적인 정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채용 설명회에서는 어떻게든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정작 필요한 정보보다는 자사의 강점을 미화시켜 말하는 것이 당연하고, 진로센터 설명회 역시 회사의 대표로 나온 사람이 말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실질적인 정보는 관련 회사에 다니는 선배를 통해 얻거나 취업 준비생 사이에 떠돌아다니는 소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떠돌아다니는 정보의 양도 얼마 안 되는데다가 그나마 “~카더라”류의 소문은 부정확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선배를 알고 있을 행운도 그다지 높지는 않다. 그런 관계로 취업 준비생들이 적당히 아는 정보를 대략 버무려 일단 취직을 해 놓고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정보력이나 취업 준비도가 취업준비생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나 전공 등 여건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예컨대 경영대 학생들은 공대 학생들보다 더 많은 취업 정보를 가지고 있다. 경영대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취업정보 게시판 하나 있는 단과대도 거의 없을 정도다. 많은 비경영대 생들이 4학년 때 경영대로 모여드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지방학생과 서울학생의 차이도 크다. 대부분의 회사가 서울에 있는 현실 상 서울에 연고가 없는 지방 학생의 정보력은 크게 떨어진다. 가정의 경제적, 사회적 여건도 중요하다. 단순히 빽이 좋아야 좋은 회사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건에 따라 세울 수 있는 비전이 다르고, 그에 맞춰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컨대 좋은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필요한 인턴이나 해외 연수, 좋은 추천서 등은 결국 더 좋은 회사에서 인턴 기회를 잡을 수 있는가, 괜찮은 해외 대학에서 연수를 받을 경제적 여건이 되는가와 같은 그 사람의 경제적, 사회적 여건과 관련된다. 또 그 회사에 가면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가, 그것이 내 적성에 맞을 것인가, 그 회사에 취업을 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정보의 획득가능성은, 관련된 사람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데 이 같은 네트워킹도 취업준비생 집안의 여건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말하자면 취업전선에서도 사회적 불평등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학교 차원에서 멘토링 프로그램 등 다양한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 진행하고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권장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취업 과정, 인생에 대한 장기적 전망 속에 위치시킨다면 사실 타인으로부터 내 능력을 검증받는 과정은 혼란감과 불안감, 막연함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필자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이 과정이 단순히 취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소모적인 시간 낭비가 아니라 나와 사회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고,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의미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에 취업하느냐 아니냐가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취업 과정을 긴 삶의 여정 중에서 그 첫 발을 딛는 시작으로 바라보며 그것을 보다 장기적인 인생의 비전속에 위치시킬 때 현명한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인생을 자기 뜻대로 살 수 있는 것이야말로 단 하나의 성공이라는 말이 있다. 취업 전선에 머리를 들이민 필자의 가장 큰 목표는 그러한 선택권을 가장 현명하고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