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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손님이 들어오면 수십 가지의 메뉴를 설명해줘야 한다.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이날, 사람들이 아이스크림 가게에 몰렸다. |
서울대입구역의 C 아이스크림 전문점. 사람들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게를 찾는다. 하지만 일요일 점심, 기자는 아이스크림이 아닌 취재를 위해 가게를 찾았다. “어서 오세요.” 점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에는 음식을 주문하거나 무언가를 부탁할 때 외에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 아르바이트생이 오늘의 인터뷰 대상이다. 가게에는 2명의 아르바이트생과 매니저가 근무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 J씨는 서울대 2학년에 재학 중이다. J씨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는 4개월째. 생활비와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시급 4300원을 받으며 하루에 6~7시간 정도를 일한다. 정식으로 근무하기 전에는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치며, 그 안에 메뉴를 외우고 매니저로부터 업무를 배운다. 사실상 일은 거의 똑같이 하지만 수습기간에는 임시로 시급 4100원을 받는다. 수습기간에는 정상임금에서 10% 감액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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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을 받으면 계산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제조하기 시작한다. 돌판을 세게 내리쳐 토핑을 부수고 아이스크림과 섞어야 한다. |
다양한 토핑을 즉석에서 부숴 아이스크림과 섞어주는 메뉴에 주력하는 업체의 특성상 가게 안에서는 계속해서 ‘쾅쾅’하는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손님이 들어와서 주문을 했다. J씨는 손님에게 메뉴판을 내밀며 수십 가지 메뉴들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손님이 메뉴를 고르면 한 사람이 계산을 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아이스크림 제조에 들어간다. 아이스크림을 제조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메뉴마다 들어가는 토핑이 다른데 그 종류는 서른 가지가 넘는다. 이것이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치는 이유다. 매니저는 “직영점은 필기시험을 보기도 하지만 직영이 아닌 매장에서는 현장에서 배운다”고 설명했다. 만약 실수로 토핑을 잘못 넣으면 아르바이트생이 그 금액을 채워 넣어야 한다. 수습기간에는 매니저가 보는 가운데서 아이스크림을 제조하므로 J씨는 다행히 아직까지 실수를 한 적은 없다. 토핑을 실수 없이 고르면 이제 돌판 위에 재료와 아이스크림을 섞는다. 단단한 아이스크림을 퍼서 섞을 때는 손목을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므로, 일이 끝난 후에는 손목이 얼얼하기도 하다. 가장 만들기 어려운 메뉴를 묻자 J씨는 “땅콩이 들어가는 아이스크림은 다른 메뉴보다 번거롭다”고 말했다.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이 있기 때문에 특별히 설거지를 꼼꼼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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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바이트생이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뽑고 있다. |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것 이외에도 많은 업무를 아르바이트생이 도맡아 한다.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 일은 물론이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 일과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뽑는 일도 아르바이트생의 몫이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므로 카운터 한 구석에는 작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손님이 오지 않는 틈을 타서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잠시 쉴 수 있다. 서비스 업종이다 보니, 자연히 무례한 손님을 대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겪는다. 심야가 되면 술에 취한 손님이 오기도 하고, 아르바이트생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하던 한 손님이 아이스크림이 나왔다고 알리는 점원에게 ‘이걸 내손으로 들고 가라는 말이냐’며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J씨는 “아이스크림을 제조할 때, 재료가 조금이라도 적게 들어 갈까봐 감시하듯이 보는 손님도 있다”며 손님을 상대하는 일의 어려움을 밝혔다. 기자 역시 “서울대생인데 왜 과외가 아닌 아르바이트를 하느냐”는 상투적 질문을 하고 말았다. J씨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왜 고생을 사서 하냐’는 시선이 먼저고, 으레 ‘왜 과외를 안하느냐’는 질문이 뒤따라 나온다”며 주변의 편견에서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J씨는 “과외가 생각하는 만큼 잘 구해지는 것은 아니다”며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의 고충을 밝혔다. 과외가 아닌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서울대 재학생이라고 하면 ‘오래 근무하지 않을 것 같다’, ‘육체노동이나 서비스노동에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채용을 거부하는 곳이 많다. 그래서 J씨는 스스로 ‘고졸’이라고 포장한 적도 있다. 이런 문제는 J씨만의 사례가 아니다. 사범대의 K씨 역시 아르바이트를 하러 찾은 음식점에서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K씨는 “정말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도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해 난감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과외를 구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런 편견의 시선은 대학생에게 이중고로 다가오는 것이다. J씨는 교육관련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낮더라도 다양한 아르바이트가 주는 경험에 만족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과외가 잘 구해지지 않아, 이 일을 시작했지만 할수록 재미를 느낀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의 유대감 역시 조금이나마 일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요소다. 잠시 가게 안이 한가해지면, 아르바이트생들의 대화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나이가 비슷하다보니, 친구처럼 지낸다”며 J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기는 새로운 인간관계 역시 아르바이트를 계속 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된 J씨의 변화와는 달리, 주변의 편견은 여전하다. J씨는 “아르바이트를 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왜 과외를 하지 않는지’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며 “이제는 그런 질문이 나오면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현재 C사 아이스크림 중 가장 저렴한 메뉴의 가격은 4300원. 가게에서 1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면 받는 금액과 거의 일치한다.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커피를 뽑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모든 노동이 한 컵의 아이스크림에 담긴다. “평소에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일터에서 많이 배운다”며 J씨는 만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르바이트를 ‘과외와 과외가 아닌 일’로 나누는 주변의 이분법적 잣대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