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G_0### |
| 9월 1일, 전국 13개의 참여단체들이 국회의사당 정론관에 모여 국민운동본부 출범식을 가졌다. ⓒ 민주노동당 뉴스&진보정치 |
9월 1일, ‘뉴타운·재개발 중단 및 주거권 쟁취를 위한 국민운동본부(국민운동본부)’ 출범식이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 열렸다. 국민운동본부는 전국 13개의 참여단체가 연합해 결성됐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각 지역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여러 시민단체가 뉴타운·재개발 반대를 위해 힘을 모았다. 전국뉴타운재개발비대위연합, 경기뉴타운재개발반대연합 등 국민운동본부와 뜻을 함께 하기로 한 전국 비대위 수는 약 45개에 달한다. 비대위 주민들은 집회에 나서 뉴타운 사업의 전면 중단을 외치고 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뉴타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도록 만들었을까. 주민들을 혼란 속에 몰아세운 뉴타운 사업 서울특별시 주택본부는 뉴타운 사업을 ‘공공이 원하는 민간사업으로 적정규모의 생활권역을 대상으로 한 충분한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하는 종합적인 도시계획사업’이라 설명하고 있다. 민간 중심의 소규모 재개발 형식과 달리 뉴타운 사업은 공공이 관여하는 종합도시의 개발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는 시범뉴타운에서 2차, 3차 뉴타운까지 총 26개 지역에서 뉴타운 사업을 추진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 인천, 부산에서도 뉴타운 사업은 우후죽순 시작됐다. 국민운동본부 이의환 실무위원은 “당시 뉴타운 사업이 호경기와 맞물려 부동산값 상승을 부추겼고, 이것이 국민들에게 뉴타운 사업은 장밋빛 정책이라는 환상을 심어줬다”고 설명했다.
| ###IMG_1### |
| 이의환 실무위원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야욕을 위해 뉴타운 사업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많은 후보들이 뉴타운 사업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이런 뉴타운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환상 때문이었다. 이 위원은 “2008년 총선 당시, 아무도 뉴타운 사업이 실패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그 무렵의 상황을 전했다. 총선 이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서울시는 절대 뉴타운 추가 지정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밝혀, 총선에 출마했던 한나라당 후보들이 거짓 공약을 남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두고 여야 간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8년 4월 17일 MBC 에서는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과 김종률 통합민주당 의원이 대립각을 세웠다. 이날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는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뉴타운의 실상을 주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부천시 뉴타운·재개발 비대위 공동대표 류재선 위원장은 “뉴타운 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로 시작해서 사기로 끝나는 사업이다”라고까지 비난했다. 돈으로 얼룩진 뉴타운 사업의 진실 뉴타운 사업을 반기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게 된 계기는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의 여파가 밀려오면서부터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뉴타운 정책의 사업성 악화로 이어졌다. 사업을 통해 수익을 기대했던 주민들은 떠안아야하는 부담이 늘어나자 실망과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이미 뉴타운 사업에 발을 들인 건설사와 조합은 뉴타운 사업을 강행했다.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뉴타운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의 총회 참석을 봉쇄했다.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조합에 고용된 용역업체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심지어 이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9월 29일, 부천에서 뉴타운 반대 운동을 벌이던 김동준 비대위 위원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조합 측으로부터 7차례나 고소·고발당하고 용역업체의 협박과 폭언에 시달려 정신병원에 다닐 정도였다. 이의환 실무위원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2의, 제3의 김동준 씨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현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 ###IMG_2### |
| 재개발 시행단계에서 조합이 일단 설립되면 건설사의 편에 서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주민들을 용역업체를 동원해 괴롭힌다. ⓒ 서울특별시 주택본부 |
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뉴타운 사업을 반대하는 이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4월 27일, 진보신당 주최로 뉴타운 사업 추구전략 모색을 위한 토론회 및 뉴타운 사업지역 피해주민 증언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피해주민들은 자신이 겪었던 피해사례를 하소연했다. 또한 미봉책으로 뉴타운 사업의 문제점을 덮으려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졸속 대응을 비판했다. 6월 8일에는 뉴타운 사업을 논하는 토론회에서 뉴타운 사업의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한 후 9월 19일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뉴타운 사업을 반대하는 대규모 국민대회가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내 집 냅둬’, ‘고치며 살게’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뉴타운 반대를 외쳤다.
| ###IMG_3### |
| 부천시 비대위 주민들이 뉴타운 반대를 위한 인천시청 앞 집회 참가를 호소하는 유인물을 읽고 있다. |
이 위원은 “뉴타운 사업으로 인해 주민들이 찬성 세력, 반대 세력으로 나뉘어 원수지간이 됐다”며 “입장이 다른 주민의 가게에서는 쌀도 안 사먹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의견 충돌로 인해 주민들 간의 폭행이 일어나기도 한다. “뉴타운 법은 주민 수명 단축법”이라고 단정지은 이 위원은 “노인들은 요즘도 밤잠을 못 주무신다”며 철학이 부재한 도시 개발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국민들을 현혹했던 뉴타운 사업이 왜 이제는 주민들을 거리에 나서게 했을까? 뉴타운 사업의 실상은 모든 가옥주가 수혜자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물론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토지등소유자는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는 조합 설립에 대한 법적 권한을 갖는다. 문제는 조합을 설립하는 데 있어서 가옥주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채 동의만을 강요받는다는 사실이다. 조합설립추진위원회는 이들에게 동의서를 받아내기 위해 아웃소싱 업체를 고용한다. 아웃소싱 업체 직원은 주민들을 방문해 뉴타운 사업으로 얻게 될 이익에 대해 온갖 거짓과 감언이설을 늘어놓고 관광 여행 등의 선물 공세로 설립동의서를 받아낸다. 뉴타운 사업 지역의 특성상 장년층, 노년층이 많이 거주하다보니 아웃소싱 업체 직원을 동원해 현혹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추가분담금이 지나치게 높고 집값이 터무니없게 낮게 책정됐다는 사실을 알 때쯤이면 이미 정비사업을 반대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 된다. 류재선 위원장은 “뉴타운 악법은 주민들의 필연적인 저항을 불러일으킨다”며 “이를 질서유지요원이라고 하는 용역업체를 고용해 억누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New Town, New People의 현실 세종대학교 변창흠 교수(행정학과)는 “뉴타운 사업은 주거 정비사업이 아니라 부동산 투자사업”이라 묘사했다. 결국 뉴타운이 건설되고 나서 이곳에 입주하는 사람들은 추가분담금을 지불한 가옥주와 다른 동네에서 살고 있던 돈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부는 이를 되팔아 이익을 챙기고 다른 곳으로 또 옮겨간다. 주목해야할 점은 뉴타운이라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세입자는 애초에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IMG_4### |
| 변창흠 교수는 “주민이 자기 마을의 변화에 대해 결정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재 뉴타운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뉴타운 사업은 주거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이나 세입자인 경우가 많다. 서울시 2008년 자료 ‘뉴타운 및 균촉지역 사업추진현황’에 따르면, 뉴타운 28개 지역의 세입자 비율은 72%다. 세입자는 열악한 거주환경의 실거주민임에도 불구하고 뉴타운 사업에 대한 법적 권한이 없다. 그나마 법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주거이전비와 임대주택을 위해서는 사업지구 지정 3개월 이전부터 거주해야한다. 이마저도 가옥주가 세입자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경우 포기할 수밖에 없다. 류재선 위원장은 “주민들은 개발세력과 공공이 추진하는 사업에 주체가 아닌 객체로 질질 끌려간다”며 돈 있는 사람만 집을 키워서 돈을 벌어들이는 재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원래 살던 주민들은 세입자는 물론 가옥주까지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 뉴타운 사업의 비극적 결말이다. 변 교수는 “정비사업의 올바른 방향은 세입자나 가옥주가 함께 논의하고 계획을 짜는 것”이라며 “이런 과정을 거쳐 주민들이 내쫓기지 않으면서도 현재 주거환경을 개선하도록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뉴타운 사업에 해피엔딩은 없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뉴타운 사업이 취소되기란 사실상 어렵다. 뉴타운 법 제정 당시 주민들의 반대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창흠 교수는 “현재 뉴타운 사업은 중단할 수도 없고 앞으로 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태”라고 말했다. 관련 법규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정작 정치권에서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변 교수는 “뉴타운 사업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회피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신 정부는 뉴타운 법이라 불리는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도촉법)’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계획법(도정법)’을 통합한 ‘도시재정비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제정해 정체된 뉴타운 사업의 물꼬를 트려고 했다. 도촉법과 도정법은 실거주민을 배려하지 않고 개발 자본에게 이익을 퍼주기 위한 개발악법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국민운동본부는 위 제정안이 주민들을 두 번 속이는 것이라고 반발하며 법안 폐기를 강력하게 외치고 있다. 공공 재정지원, 건설 규제완화 등을 통해 뉴타운의 사업성을 살리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반대 목소리에 귀를 막고 뉴타운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된다 해도 문제는 끝이 아니다. 뉴타운 사업으로 인한 주택의 공급만큼 수요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이다. 류재선 위원장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는 시점과 맞물려 주택 과잉공급으로 인한 미분양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 내다봤다. 실제로 부천 소사지역의 경우 장기간 지속된 미분양으로 인해 아파트 분양가는 계속해서 떨어졌다. 결국 개발이익을 내야하는 시공사는 사업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뉴타운 사업에만 매달리게 됐다. 열악한 거주환경을 개선한다는 뉴타운의 본래 취지는 무색해졌다. 국민운동본부는 뉴타운·재개발 지구에 전면적인 사업비용 및 각 세대별 비용부담규모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주민들의 찬반투표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23개의 뉴타운 중 김포, 군포, 평택, 안양, 오산에 예정된 5개의 사업이 주민들의 반대에 의해 백지화됐다. 한편 10월 10일, 경기도는 뉴타운 사업에 대한 주민 의사를 묻는 전수조사가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풀리지 않는 매듭을 칼로 잘라내기 위한 투쟁이 보다 많은 결실을 맺기까지는 앞으로 난항이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