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G_0### |
| 쉬는 시간을 맞은 한 공연장의 모습.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 독주 공연의 경우 무대에도 관객석이 배치된다. |
얼마 전 마우리찌오 폴리니의 공연에 다녀왔다. 클래식에 약간만 관심을 뒀던 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클래식 문외한인 필자가 듣기에도 이 날 공연은 지난 몇 달간 구경했던 피아노 독주 중에서도 압도적이었다. 그 전에는 크리스티안 짐머만이라는 할아버지의 독주를 구경하러 갔다. 뒤늦게 클래식 애호가인 지인에게 이야기하니 굉장히 부러워한다. 알고 보니 짐머만이라는 할아버지 역시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였다.런던의 저렴한 공연 가격에 숨겨진 비밀은?이야기의 주제는 누구 공연이 더 좋았다거나 이런 거장들의 공연을 구경해봤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 예술의 경제학이다. 폴리니와 짐머만 공연을 합쳐서 27파운드(한화 5만 5천원) 정도를 썼다. 이들은 유명한 연주자인지라 티켓 값이 비싼 편이었는데도 이 정도였다. 굉장히 저렴한 가격이다. 런던필하모닉 같은 큰 오케스트라의 콘서트도 보통 10파운드(2만원) 이하의 돈을 지불하고 관람한다. 런던의 저렴한 공연예술이라는 신천지에 눈을 뜬 이후 나름대로 열심히 공연을 구경하러 다녔다. 사우스뱅크 센터는 오로지 내가 사는 곳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주로 들락거리는 공간인데, 주 메뉴는 클래식이지만 댄스·시낭송·재즈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도 많이 상연한다. 이 역시 대부분 10파운드 안팎, 최대 20파운드 정도의 돈을 주고 볼 수 있었다.연극은 15파운드가 기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아주 특이한 공연, 이를테면 얼마 전 지인이 보러 갔던 9시간짜리 연극(!)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비싸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최근에 봤던 일본인 연출가의 연극 티켓은 10파운드(2만원)였다. 재즈·팝·월드뮤직 등으로 분류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 여러 장르와 공연 형식을 혼합해 만들어진 새로운 형식의 공연들…. 이 공연들을 대부분 10~15파운드, 최대 20파운드 정도의 돈을 내고 봤다. 15파운드는 공연을 고를 때 적정한 선으로 간주하게 되는 가격으로, 지금까지 여기에서 벗어나는 공연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을 기준으로 봐도 굉장히 저렴하고, 국민소득을 두고 비교해보면 더더욱 싸다. 어떻게 티켓 값이 이렇게 쌀 수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여기에서는 영국과 한국의 상황이 가장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연극 분야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정규직 배우의 15파운드 vs 대리운전 배우의 3만원한국에서 연극 티켓은 2만 5천원, 때로는 3만원을 호가한다. 영국에서의 기대 가격 못지 않으며 특히 1인당 국민소득 대비로 볼 때 훨씬 비싼 셈이다. 그런데 이 가격으로 공연하기 위해 한국의 배우들은 월급을 받기는커녕 회비를 내가면서 연습을 한다. 대부분 공연 연습이 저녁 시간에 이뤄지는 상황에서 사실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쉽지 않다. 연출가가 약간의 월급을 받는다는데, 그마저도 제작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상황이 조금 나아진 것이 김대중 정부 때 연극계로 보조금이 들어가면서부터다. 쩍쩍 갈라지는 마른 땅에 단비 같은 이 돈은, 아마도 어떤 이들에게는 룸살롱에서 하룻밤 재밌게 놀 수 있는 정도다. 그나마 이 정도의 돈이 이 지지리도 배고픈 연극계에서는 감사하며 얻어낼 수 있는 최대치인 셈이다.영국은 셰익스피어로 대변되듯이 연극과 배우들의 전통이 굉장히 강한 곳이다. 다양한 형식의 연극들이 끊임없이 상연된다. 앞에서 언급한 9시간짜리 연극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대본이 없는 연극, 동작도 거의 없고 말도 별로 안 하면서 관객을 농락하는 극 등 무대에서 이상한 짓(?)을 하는 이런 연극들은, 아무리 영국이라도 관객들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극은 끊임없이 상연되며, 그런 요상한 연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들도 꽤 있다. 그런 극단에서도 연출가가 사비를 털고, 배우들은 연습이 끝난 후 취객들의 대리운전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할까? 아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정규직 단원이며, 어느 정도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먹고 살만한 월급을 받는다.
| ###IMG_1### |
| 가끔은 말라붙은 개천에서도 용이 나온다. ‘움직임 연극’이라는 낯선 색깔을 한결같이 추구해온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연극 ‘보이첵’의 한 장면. 하지만 이들이 해외에서 대박을 내고 돌아오기 전까지 국내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었다. |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연극 ‘산업’은 15파운드의 티켓 값으로는 당연히, 절대 불가능하다. 정부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하며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전용 극장들이 충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004년 통계를 보면 약 5조원(26억 파운드)이 넘는 돈이 극단의 보조금으로 들어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문화의 다른 분야로 들어간 지원을 제외하고 순전히 공연예술로만 들어간 액수다. 영국 ‘로열코트극장’의 예술 감독인 도미니크 쿠크(Dominic Cooke) 씨의 말에 따르면, 극장 수입의 50%가 정부 보조금에서 나오며 25%는 개인 기부금으로 충당된다고 한다. 단일 극단으로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는 그만큼의 엄청난 흥행을 자랑한다. 이 극단은 관객 수입만으로 먹고 살까? 놀랍게도 이 극단에는 한 해 약 250억원(1,200만 파운드, 2002년 기준) 가량의 정부 보조금이 지원된다. 앞에서 언급한 극장과 극단은 영국에서도 굉장히 명성을 얻은 케이스인데 그렇다면 잘 나가는 놈’만’ 밀어주는가?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극단과 극장은 수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정부보조금이며, 당연히 그 비율은 마이너 극단이나 비주류적인 색채를 가진 극단일수록 커진다. 한국에서 200석 규모의 조그만 소극장 공연을 한 달간 올리고자 한다면 극장을 빌리는 비용만 3천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그나마 극장 수가 공연 수에 비해 부족하고, 공연에 적합한 시설을 갖춘 극장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천문학적인 대관료로 인해 공연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곧잘 벌어지며, 극장을 잡아도 장기 공연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상황이 이러하니 영국처럼 국립·시립 보조금으로 지원되는 극장이 장기적인 계획 하에 공연을 기획하고, 극단과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키우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아니, 대다수의 극단은 살아남는 것마저 쉽지 않은 것이 한국의 상황이다. 왜 연극이 중요한가왜 특정 문화 산업을 정상화하는데 국가의 재원을 나눠줘야 할까. 글쎄,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연극은 공연 예술의 기초과목이다. 우리나라가 요새 내세울만한 몇 안 되는 분야 중 하나인 영화 산업을 생각해보자. 영화계가 크게 빚진 데를 꼽자면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연극이라고 본다. 송강호, 최민식 등 최고로 꼽히는 배우들, 주연급 배우들, 수많은 조연과 연기파 배우들이 어디에서 트레이닝 되었을까. 그들의 ‘배고픈 무명시절’로, 스타들의 성공담의 일부로 등장하는 그 ‘연극판’은 바꿔 말하면 영화 산업의 잔뿌리에 해당되는 것이다.이 시점에서 영국의 한 영화인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볼 만하다. “영화 ‘더 퀸’에 등장한 대부분의 배우는 대부분의 직업 경력을 무대 위에서 쌓았다. 나 자신도 ‘로얄셰익스피어컴퍼니’나 국립극장에서 일했고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2006년 영화 ‘더 퀸’으로 격찬을 받았던 배우 헬렌 미렌이 2007년 2월 16일 과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타온다며 자랑스러워하던 한국의 영화계도 다르지 않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연극은 영화나 드라마, 춤과 같은 공연예술 극예술을 가장 말초적인 단위에서 재현하고 생산해내는 현장이다. 요새 서울 중산층의 필수 교양이 돼 버린 뮤지컬 역시 그 뿌리는 연극에 있다. 연극하다가 배고픈 이들이 뮤지컬 쪽으로 대량 이주 중이다.
| ###IMG_2### |
| 공연 쉬는 시간에 찍은 사진. 클래식 공연은 보통 1시간 전반공연, 20분 쉬는 시간, 1시간 후반 공연 정도로 짜여 있다. 쉬는 시간이면 관객들은 공연장 밖으로 나가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
연극은 아날로그적이기 때문에 대량생산·유통·소비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영화나 음악 산업에서와 같은 ‘생산성’을 기대하기가 어렵고 기업 스폰서 같은 것도 요원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입되는 생산요소의 측면에서 보면 비교적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초등학교 학예회로도 가능한 것이 연극이다. 한편 연극은 항상 바로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기에 관객과 무대, 혹은 무대 내에서의 상호 작용이 뭔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 ‘다름’ 때문에 연극은 참으로 치열한 장르가 된다. 만화 ‘유리가면’에서 유경이 연극판에서 놀다가 처음으로 TV드라마를 찍을 때 어리둥절해 하던 것을 떠올려보자. NG가 불가능한 ‘현재진행형’인 연극무대와 수많은 컷 중에서 가장 볼만한 것을 ‘골라낼 수 있는’ TV 드라마의 차이는 크다. 무대의 구석에 있는 배우조차 표정은 물론 전신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드러난다. 드라마에서는, 이를테면 클로즈업을 해 버리면 극단적으로 말해 눈은 울고 있지만 카메라 바깥의 몸은 춤추고 있을 수도 있다. 조각조각 붙여진 이미지의 일부로서 기능하는 배우와 무대 위에서 움직임 표정 하나하나를 알몸처럼 노출해야 하는 배우. 그 치열함과 현재성의 차이가, 바로 최고로 꼽히는 한국 영화배우들이 죄다 연극판에서 굴러먹던 이들인 까닭이 아닐까.공공의 자산은 공공의 지원으로사실 이건 연극만의 문제는 아니다. 린킨파크의 공연은 비싸긴 하지만 많은 이들이 기꺼이 그 돈을 지불하고 공연을 보러 갈 것이다. 조금 더 작은 규모의 대중 음악은, 적어도 외국의 경우에는 크고 작은 클럽을 통해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정교한 예술적 훈련을 거친 수많은 장인들을 필요로 하는 클래식 공연이라면 소비자의 ‘지불’만으로 이렇게 대중적으로 즐기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나라에서든 대규모 오케스트라는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예산이 지원되는 시립·국립극장이나 방송국 등에 소속될 수밖에 없다.결국 문제는 ‘인프라’다. 문화 예술은 개별 장르와 작품에 대한 좋고 싫음을 떠나 시민들 모두가 누려야 할 자원이다. 문화예술은 시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나아가 시대를 반보, 한보, 열보 앞서 보기도 하며 우리 안의 숨겨진 모습들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돈을 주고 개별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예술이 발견하고 재현할 수 있는 것들을 지켜보고 즐겨야 할 일이다. 사회 전체의 중요한 자원을 지원하는데 사회의 자원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위에 언급한 헬렌 미렌의 발언은, 실은 영국에서 진행 중인 문화예술 관련 예산 삭감 움직임에 대한 항의를 표시하면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예산 삭감은 아직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이후 계속될 흐름의 시작이기 때문에 문화예술인들은 크게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서도 영국 정부는 내년 2월부터 26세 이하의 젊은이들에게 ‘공짜’ 연극 티켓을 주기로 결정했다. 당신이 아직 만 26세를 넘지 않았다면 매주 월요일은 해피 먼데이즈(Happy Mondays), 즉 전국 95개의 극장에서 연극을 공짜로 관람할 수 있는 날이다. 영국 문화부 장관은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문화는 삶을 바꿀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를 자신들과 동떨어진 것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그나마 있던 사랑티켓 제도마저 지원금 삭감으로 대폭 축소된 어떤 나라에서는 참 상상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 ###IMG_3### |
| 여름이 되면서 부쩍 인파가 늘어난 런던의 사우스뱅크센터. 로열 페스티벌홀의 발코니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
우리에게 돈이 없는가? 먹고 살기 힘든데 연극이나 다른 공연에 쓸 돈이 어디 있냐고? 유흥산업의 규모가 2006년 현재 국내총생산의 1.7%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나올 만한 항변으로는 적절치 않다. 공연예술은 여가산업이라는 면에서 대체재에 해당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의 변화고 사고의 변화다. 입시 지옥에 찌든 청소년들이 술과 담배를 배우고 어른이 돼서는 단란주점과 룸살롱에서 돈을 쓰는 세상을 원하는가, 아니면 아이들이 문화 경험을 통해 예술을 삶의 일부로 즐기는 법을 배우는 세상을 원하는가.‘사회적인 부를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도 될 만큼 한국의 경제 규모는 이미 충분히 성장했다. 문화예술을 수익과 산업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이며 기초 체력이라는 면에서 바라보고 이를 적절하게 지원하는 성숙함을 우리 사회에 기대해 본다. 그런 점에서 영국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