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학년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전공이수제도가 제안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학생들에게 ‘제2전공 의무화’라고 알려진 이번 학칙 개정안은 학생들이 다양한 전공수업을 수강함으로써 사회로 진출했을 때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본부가 제안한 것이다. 한편 이에 대해 학생들의 자유로운 수업 선택권을 빼앗고, 학문 탐구라는 교육의 본질적 목적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2007년 7월부터 구체화된 새로운 전공이수제도 본부는 2007년 1학기부터 ‘복수전공 및 연합전공제도 개선 방안’을 기획, 지난해 7월부터 단대 학장들과 함께 개선안을 논의해 왔다. 지난 12월 11일에는 마이스누(my.snu.ac.kr) 공지게시판에 학칙 개정안을 공고했다. 이 개정안에는 ‘2008학년도 신입생부터 제2전공 이수를 의무화’(제68조 제1항)한다는 내용에 덧붙여, 복수전공, 연합전공, 연계전공, 학생설계전공, 부전공, 심화전공의 여섯 가지 유형에 대한 규정(제68조 제1항 제1호~제6호)이 명시됐다. 이에 대해 51대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의견수렴 절차가 부재하다 ▲단지 마이스누에 공지하는 소극적 공지에 그쳤다 ▲신입생들은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 ▲학생들의 자율성을 침해한다 ▲체계적인 준비가 부족하다는 공식성명을 통해 본부의 방침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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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본부와 총학생회 측은 세 차례에 걸친 교육환경개선협의회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
총학의 문제제기 이후 지난 1월 11일에 열린 제32차 교육환경개선협의회(교개협)에서 본부 측과 학생 측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양호환 교무부차장은 “지난해 1학기부터 추진된 일이고 주요 일간지에 6월부터 보도했다”며 갑작스런 졸속행정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박진혁 부총학생회장은 “언론 보도나 포털 공지를 실질적 의견수렴으로 보긴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완진 교무처장은 “우리도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충분한 책자를 준비해서 설명하려 한다. 학생회와도 정보를 공유하겠다”며 앞으로 대화를 통해 타협해 나갈 의지가 있음을 밝혔다. 아직 본부의 개정안이 학생들에게 자세히 전달되지 않아 이날 교개협에서는 개정안 내용에 관한 깊이있는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본부와 총학생회 측은 추가로 두 번의 교개협을 가져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대외경쟁력 확보인가, 교육의 상품화인가 본부의 학칙 개정안은 학문 융합적인 현 추세를 반영해 학생들이 다양한 학문을 접할 기회를 확대하고 대외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정재 학생처장은 “기존의 복수전공 제도 하에서는 두 학과가 정한 전공 학점을 모두 이수해야 하므로 인문대, 사회대 이외에는 복수전공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호환 교무부차장은 “애초에 인문대와 사회대에서 전공학점을 줄인 것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수업 듣는 것을 허용하고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해매고 있으므로 교양 외에 체계적으로 수강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부에서는 학교가 사회에 진출하는 학생들을 위해 그에 맞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완진 교무처장은 “미국의 하버드, MIT는 전체 학점 중 반은 전공이고 1/4이 교양, 나머지 1/4은 학생 자율이다. 하버드는 복수전공과 학생설계전공을 자유롭게 열어 학생 각각에게 어떤 수업을 들으면 좋을지 알려준다”며 학칙 개정을 통해 학부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에 대해 미경(인문2 05) 교투특위 공동위원장은 “고려대의 경우 금융법학, 금융공학 등 인기있는 연합전공에만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서울대에서도 기초학문간 연계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업과 사회가 원하는 방향을 따라서 교육이 바뀌고 있다. 결국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인문학을 하지 않는 기존의 구조 자체는 그대로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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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30일 사회대에서는 ‘2008 사회대 교육문제 대토론회’가 열렸다. |
사회대에서는 지난 1월 30일에 ‘2008 사회대 교육문제 대토론회’가 열려 교육이 상품화되고 기초학문이 사장되는 상황을 지적했다. 이 자리에서 구현(정치 06) 씨는 새로운 제도로 인해 “인기학과로 학생들이 편중돼 결국 전공 공부의 질을 하락시킬 것”이며 “현재의 단일전공도 학생과 교수님 간의 상호 피드백 과정의 부족, 전공 인정의 커리큘럼 제한, 시간강사들의 불안정한 위치 등의 이유로 부실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석(정치 06) 씨는 “학문이 자본에 종속되지 않을 수 있는 조건, 취업과 생존경쟁으로부터 학생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본부에서는 ‘의무화’가 아니라고 주장해 새로운 전공이수제도를 일컫는 ‘제2전공 의무화’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관악교육투쟁특별위원회(교투특위)의 임대환(사회 03) 공동위원장은 “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제2전공의 여부를 학우들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의무화’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양호환 교무부차장은 “‘제2전공 의무화’라는 명칭은 학생들이 붙인 것이지 우리가 그런 단어를 쓴 적은 없다. 의무화라기보다 새롭게 전공이수제도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라며 형식보다는 실제 학칙 내용에 관한 논의를 할 것을 당부했다. 이정재 학생처장도 “새로운 개정안은 ‘130학점 이상을 취득해야 졸업할 수 있다’는 규정과 다를 것이 없다. 예를 들어 현재는 39학점의 전공만 채우면 나머지를 어떻게 들었는지 졸업장에 증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나머지를 농생대 학생이 경영대에 가서 듣는다면 연계 전공, 연합 전공 등을 통해 농생대를 전공하고 경영대 전공도 들었다는 사실을 학교에서 적어주겠다는 이야기”라며 “‘의무화’는 지나치게 민감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학교가 인정하는 전공뿐만이 아니라 ‘학생설계전공’을 통해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들으면 이름을 붙여 졸업장에 증명해 줄 것”이라며 새로운 제도가 학생들의 자율을 존중한다고 주장했다. 총학 측에서는 “복수전공, 부전공 선택의 부담을 경감하고 학생들의 선택폭을 더 넓히는 기존 취지에 대해서는 긍정한다. 다만 제2전공에 관한 학칙개정은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전공과목을 더욱 이수해야 하고 정해진 틀 속에서 전공과정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측면에서 의무화라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바뀐 개정안은 현 학칙과 많이 다르지 않아, 결정은 각 단대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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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교육투쟁특별위원회에서 새로운 전공이수제도에 대한 반대 현수막을 내걸었다. |
지난 2월 18일 이정재 학생처장이 제공한 최신 개정안에서는 본부가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기존의 전공이수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처음에 제안했던 복수전공, 연합전공, 연계전공, 학생설계전공, 부전공의 다섯가지 전공이수에 관해서는 ‘각 단대에서 따로 정할 수 있다’라고만 명시해 놓은 것이다. 또한 ‘심화전공’이라는 이름으로 단일전공의 추가학점을 이수하는 것은 ‘교과과정으로 규정’하여 자율로 뒀다. 이정재 학생처장은 “오해의 소지가 많아 기존의 개선안에서 후퇴하고, 학점규정은 두지 않았다. 대신 단대의 자율에 맡겨 각각의 전공을 정의해 두기만 했다. 사실상 이전의 전공이수제도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공부하려는 학생은 개개인이 단대 학장님을 졸라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전공이수제도는 단대 차원에서 결정한 사안이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 등 대부분의 단대에서는 기존의 제도에서 큰 변화는 없으나 본부에서 제안한 여섯 가지 안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연대 김명환 교무부학장은 “연계전공과 학생설계전공 등을 폭넓게 포용해 학생들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범대는 교직이수에 따르는 전공부담이 크기 때문에 따로 전공을 개발하기보다 현재 개설돼 있는 교직연합전공과 복수전공을 최대한 권장하는 방향으로 나갈 계획이다. 공대의 경우에는 전공을 60학점 이상 들어야 공학인증을 받을 수 있으므로 당장은 제2전공을 같이 하기 어렵다. 공대 조재영 교무부학장은 “본부의 제안이 1, 2년 안에 실행되기는 어렵지만 그 취지에는 동감한다. 앞으로 공대의 전공제도를 완화시켜 원하는 학생은 복수전공, 부전공 등 다양한 전공을 이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총학생회는 “단대별 접근을 보다 강화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 방향에 대해서는 총운위에서 충분히 논의한 후에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교투특위의 미경 씨는 “앞으로 어떤 전공들이 시행될 것인지 지켜보면서 이 사안에 대해 학부대학 전문대학원, 법인화 사안과 함께 우리의 입장을 정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