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적응이 빠른 동물이라고 했던가. 지난 1년 동안 미국엘 다녀왔는데 불과 2개월 만에 현지 적응을 완료했다. 명분은 어학연수였지만 실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미국 물 한번 원 없이 먹어 보고 싶다는 오랜 소원풀이를 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거다. 소원풀이가 성공한 덕분에 우리 엄마는 2개월 내내 미국에 대한 찬사로 시작해 그리움으로 끝나는 나의 같잖은 잘난 척에 고생 좀 하셨다. ‘미국엔 2% low fat 우유가 있는데 한국은 종류가 너무 단순해’, ‘미국에선 손님이 왕이라 환불도 군말 없이 잘해줬었는데 한국은 너무 까탈스러워’부터 ‘미국에선 버스시간표가 잘 지켜져서 얼마나 편했는데 한국은 너무 제멋대로야’ 등등. 결국엔 엄마가 ‘겨우 1년 다녀왔으면서 미국사람 다 된 냥 유세를 떤다’고 일침을 가하실 정도였으니 얼마나 내 발언들이 가관이었을지 짐작 가능할 것이다. 사실 사사건건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며 불평했던 건 ‘한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만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미국’이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것들이 일방적으로 부러웠다. 한국 사회에서는 얻을 수 없고, 바라는 것조차 힘든 ‘그것’ 들. 고작 1년이었지만 내가 보고 느꼈던 미국은 내 조국 한국과 너무 닮아있었다. 때문에 더욱 질투가 났었는지 모른다. ‘돈’ 이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돼버린 자본주의의 천국, 계층 간의 갈등, 빈부격차, ‘살인’을 평범하게 만드는 각종 범죄들, 성(性)차별, 인종차별…. 어떤 면에선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추악한 면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 역시 롤모델로 삼기엔 너무나 허물이 많은 나라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과 다른 점은 자신의 허물과 더러운 면들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든 사업가든, 운동선수든, 학생이든 자신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현실을 인정했을 때 사람들은 상황을 긍정적인 선(善)의 방향으로 이끌거나, 혹은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거나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미국은 전자를 택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많은 나라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에너지가 충만하기 때문에 현재가 암울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미래의 ‘밝음’을 꿈꿀 자격이 있다. ‘한국’ 은 사회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가장 폭발적이면서도 가장 차가운 나라다. 연예인의 사생활이나 지극히 말초적인 것들에의 집요한 관심은 우리 스스로를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인터넷의 발달로 사회적인 이슈가 순식간에 형성되고 활발하게 논의되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우리 스스로는 평가한다. 그러나 아고라를 수백, 수천 개의 댓글로 뒤덮는 그 관심과 집중이 한국의 자화상을 정확히 직시하고 변화시키는데 얼마나 영양가가 있는지는 재고해 볼 문제다. 미래를 꿈꾸고 싶다면 한국은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