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규탄 행동을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

ⓒ서울대학교총학생회 지난 6월 20일, 총학생회는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국정원 사건관련 서울대 총학생회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총학생회는 국정원 사건을 ‘공공기관이 주도한 선거개입’으로 규정하고, 이번 사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학생선언 등 후속 행동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하지만 이후 국정원 사건의 해결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크기변환_사진 1 - 총학생회는 6월 20일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국정원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jpg

ⓒ서울대학교총학생회

   지난 6월 20일, 총학생회는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국정원 사건관련 서울대 총학생회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총학생회는 국정원 사건을 ‘공공기관이 주도한 선거개입’으로 규정하고, 이번 사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학생선언 등 후속 행동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하지만 이후 국정원 사건의 해결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새누리당이 NLL 대화록 문제를 들고 나와 국면 전환을 시도했고, 야당은 이에 끌려가는 모양새를 보였다. 여야가 합의한 국정조사도 파행을 거듭하며 삐걱댔다. 총학생회가 후속 행동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총학생회의 대응은 크게 두 방향으로 이뤄졌다. 우선 6월 2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서울대 내부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해 학생선언 및 규탄집회를 추진했다. 한편으로는 타 대학과 연합해 공동 행동에 나서는 방향을 모색했다. 하지만 여건이 좋지 않았다. 방학기간 중이라 오프라인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각급 운영위원회를 통한 의견수렴 방식이 있지만,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6월 20일 기자회견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는 총학이 일반 학우들의 의견수렴 없이 행동에 나서는 것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표하는 게시물이 여럿 올라왔다. 이은호(서문 09) 부총학생회장은 “스누라이프에 총학의 여론수렴 필요성을 지적한 글이 여럿 올라왔고, 이를 의식한 것은 사실”이라며 “각급 운영위원회를 통한 의견수렴 등 학생회의 의결구조가 있지만,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보완 차원에서 온라인 여론수렴을 실시하게 됐다”고 밝혔다.

 

온라인 여론수렴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총학생회는 7월 2일 오전 1시부터 7월 12일 낮까지 온라인 설문을 통해 여론수렴을 실시했다. 설문의 내용은 ▲국정원 사태에 대해 총학생회가 성명서를 발표하고 집회를 하는 것에 대한 찬성여부 ▲7월 12일 16시로 예정된 새누리당사 앞 집회에 대한 참석 여부 등이었다. 이은호 부총학생회장은 “2012년 온라인을 통해 여론을 수렴했던 DDOS 시국선언 모델과 유사한 방식으로 설문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2012년 선관위 DDOS 사건을 규탄하며 이뤄진 시국선언에서는 온라인 서명페이지를 통해 3300여 명의 학생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선거 무산으로 총학생회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총학생회가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온라인 매체를 활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설문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서도 온라인 매체가 적극적으로 동원됐다. 전통적인 홍보수단인 대자보나 강의실 발언이 방학기간 중에는 효과를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총학생회에서 온라인 여론수렴을 담당했던 이규열(농경제 06) 씨는 “방학기간 중이라는 상황적 제약을 극복하고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학우들이 방학 중에도 접할 수 있는 온라인 홍보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진행된 온라인 설문에는 학부생 1,205명이 참여해 1,080(89.6%)명이 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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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학생회의 온라인 여론수렴 결과 학부생 89.6%가 찬성했다. ⓒ서울대학교총학생회

   하지만 압도적 찬성률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을 통한 여론수렴에 부정적 의견을 표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학부생 A씨는 “온라인 설문의 찬성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참여 인원수를 보면 전체 학생 수의 7% 남짓”이라며 “애초에 국정원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투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것이므로 온라인 설문 결과는 전체 학우들의 뜻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이은호 부총학생회장은 “온라인 설문에서 찬반을 물은 학생선언은 서울대학교 학생 전체 명의가 아닌 찬성자 1,330명의 이름으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해당 지적은 무의미하다”고 반박했다. 이규열 씨도 “재학생 학번을 통해 필터링을 거쳤고, 통계적 기법과 함수를 이용해 신뢰도를 높였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온라인 여론 수렴이 아닌 총투표에 부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학부생 B씨는 “어쨌든 총학생회가 행동하면 서울대 구성원을 대표한 것으로 사회에 비춰지기 때문에, 총투표에 부쳐서 전체 학우의 의사를 물었어야 했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방학기간 중에 총투표를 고집하는 것은 국정원 사태에 대한 대응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6월 20일 기자회견에 참여한 학부생 C씨는 “총투표가 성사되려면 투표율이 50%가 넘어야하는데, 방학기간 중임을 감안하면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며 “실현 불가능한 방법을 고집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부총학생회장 이은호 씨도 “이번 대응은 총학생회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과/반 운영위원회와 단과대 운영위원회, 총운영위원회에서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결정한 것”이라며 “물론 어느 정도 한계는 있을 수 있지만, 학생사회의 대의기구를 부정하고 방학기간에 총투표를 고집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환상”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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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는 7월 12일 새누리당사 앞에서 국정원 규탄 집회를 열고 학생선언문을 발표했다. ⓒ서울대저널TV

국정원 집회의 추동력, ‘비 정파성’과 ‘합리성’

   총학생회는 7월 12일 새누리당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고 온라인 설문에 찬성한 1330명 명의로 학생선언을 발표했다. 총학생회는 ‘우리는 얼마나 더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선언문에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이 공권력을 이용해 우리의 투쟁을 탄압한다 할지라도 정의를 정의라 부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더해 총학생회는 요구사항을 담은 제안서를 새누리당 당직자에게 전달했다. 이날 집회에는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21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해 자리를 지켰다. 6월 20일 기자회견 참석 인원의 2배가 넘는 규모였다.

   눈에 띄는 것은 집회에 참석한 인원 중 상당수가 총학생회나 기타 학생 조직에 몸담지 않은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집회에 참석한 학부생 C씨는 “이번 사태는 민주당이냐 새누리당이냐 하는 진영 논리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라며 “평소 학생운동을 하거나, 학생회 조직에 몸담은 적이 없지만, 이번 사태에 분노를 느껴 참석하게 됐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총학생회도 학생선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비 정파성’과 ‘합리성’을 강조했다. 이번 학생 선언이 특정 정파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 국정원 선거개입 사태에 대한 합리적 문제제기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김형래(산림환경 08) 총학생회장은 “학생회가 선언문을 발표한다고 하면 배후에 정치세력이 있느냐는 의심을 많이 받는다”며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국가 기관의 선거개입을 객관적이고 명백하게 지적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규탄 집회의 장소가 새누리당사 앞이라는 점을 들어 총학생회가 내세운 ‘비 정파성’이 허울뿐이 아니냐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학부생 B씨는 “기자회견 장소를 새누리당사 앞으로 하면서 비 정파성을 내세운다는 것이 아이러니”라며 “학내에는 새누리당 지지자들도 많은데 총학생회가 정파성을 갖고 행동하면 외부에 왜곡되어 비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은호 부총학생회장은 “집회 장소가 새누리당사 앞이라는 것을 이유로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기계적인 해석”이라고 잘라 말했다. 새누리당사 앞을 집회장소로 택한 것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커넥션이 드러난 상황에서 정파성을 떠난 객관적 문제제기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규탄 집회에 참석한 박문주(심리 12) 씨도 “국정원 댓글 작업을 보면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를 옹호하고 이른바 진보 좌파 세력을 비난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열린 국정원 규탄 집회는 헌법과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유린된 현실에 대한 합리적 문제제기”라고 강조했다.

크기변환_사진 4 - 전국대학생공동행동집회가 끝나고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관한 민원 진정서를 제출하기 위해 국회로 행진하는 대학생들의 모습..jpg

전국대학생공동행동집회가 끝나고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관한 민원 진정서를 제출하기 위해 국회로 행진하는 대학생들의 모습.  ⓒ서울대학교총학생회

‘국정원 규탄 학생선언’,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까

   김형래 총학생회장은 “학생선언에서 그치지 않고 타 대학과 연대한 대학생 공동행동 등을 통해 꾸준히 국정원 사태에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적됐던 오프라인 여론수렴도 개강 이후에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은호 부총학생회장은 “방학기간 중 현실적 여건 때문에 토론회와 TF팀 활동이 무산됐지만, 개강 이후 총학의 대응을 평가하는 토론회를 시작으로 오프라인 여론수렴 절차를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방학기간 사용된 온라인 여론수렴 방식은 더욱 발전시킬 계획이다. 김형래 총학생회장은 “KAIST의 경우 총학생회 차원에서 홈페이지에 온라인 투표 공간을 만들어놓는 등, 온라인 여론수렴이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이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제의가 들어와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국정조사가 표류 끝에 마감되며 국정원 사태의 해결은 난항에 빠졌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여론을 결집해 지속적 대응을 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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