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29일에는 영결식이 국민장으로 진행됐다. 장례기간 내내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의 뜻을 표했다. 학내에도 추모의 물결이 흘렀다. 총학생회와 법대학생회는 28일,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봉하마을로 향했다. 인문대 학생회는 자보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뜻을 밝히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현 정권에 대해 맞설 것’을 요구했다. 농생대와 중앙도서관 통로에는 분향소가 설치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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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4일, 중앙도서관 통로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설치됐다. |
학내에서 추모의 물결 끊이지 않아
24일, 하희정(영어영문 07) 씨가 처음으로 중앙도서관 통로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학내의 분향소 설치는 스누라이프(www.snulife.com) 게시판을 중심으로 논의됐다. 하 씨는 “서거 소식을 접하고 뭘 해야 할지 고민하다 분향소 설치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후 분향소 관리는 여러 학생들에 의해 이뤄졌다. 게시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이 흐리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아이디 ‘안아토미’ 씨가 스스로 영정사진을 바꾸기도 했다. 학부생 A씨는 긴 조문을 마친 후에 “너무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늘 믿어왔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 퇴임 후에는 옆집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는데…”라고 말하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학내에서 근무하는 신태식 씨는 학생들이 분향소를 설치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직장이 있다 보니 멀리 나갈 수가 없는데, 이렇게 학생들이 분향소를 설치해줘서 마지막까지 존경하는 마음을 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노사모 회원은 아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힌 신 씨는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해온 뜻, 살아온 길 전부를 좋아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말에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혈육이 죽은 것보다 더 큰 아픔을 느낀다. 노 전 대통령의 모든 것을 지지했지만, 마지막 선택만큼은 지지할 수가 없다…”며 말 끝을 흐렸다.이동기(서양사 85) 박사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한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빠져 들어본 적이 없다. 5공청문회 때의 모습이나 3당합당 반대의 모습에서 한 개인이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났던 이야기를 풀어냈다. “88년에 민중대회가 있었다. 당시 박삼옥 씨가 민중가요를 부르고 있었는데, 뒤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여가 맞나(여기가 맞느냐)’고 묻는 소리가 들리더라. 돌아보니 노 전 대통령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민중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정치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노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회고했다. 중앙도서관에 설치된 분향소에서는 하루 200명 이상의 학생이나 교직원이 조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인근에는 대학동 놀이터와 ‘광장문구’ 앞에 분향소가 설치돼 주민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광장문구 측은 “하루에 800명가량이 조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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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전 대통령의 약력을 적은 판에, 노 전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은 노란 종이가 붙어 있다. |
“노 전 대통령, 민주주의에 기여한 바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세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사진이 화제가 되고 있다. 더불어 노 전 대통령의 약력, 언행, 한국사회에 대한 기여 정도도 재평가를 받고 있다. 조흥식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너무 이상적이었던 점과 관료집단에 대한 리드가 부족했던 점에서 한계가 있었지만, 노 전 대통령이 한국사회에 기여한 바는 크다”고 말한다. 조 교수는 “무엇보다 한국에는 ‘제왕적인 대통령 권한’이 있는데, 노 대통령은 스스로 ‘탈권위’를 외쳤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 바탕에서 국민과 소통했고, 일반 서민들의 어려움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 뛰어났다”고 노 전 대통령을 평가했다. 서이종 교수(사회학과)는 노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를 타파하려 한 것을 가장 큰 공으로 꼽는다. 서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이후 과감하게 야당에 들어갔고, 그 이후에도 지역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 왔다”고 말했다. 거대한 사회적인 추모 열기에 대해서 서 교수는 “단순히 망자에 대한 ‘슬픔’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노 전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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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주변에도 분향소가 설치됐다. 사진은 광장문구 앞 분향소의 모습 |
“무엇을 해야하나”라는 질문 던지며 살길 바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그를 둘러싼 많은 말들을 뒤로 한 채 노 전 대통령은 영면에 들어갔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는 아직 식지 않고 있다. 많은 시민들은 “그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주어진 환경을 누리는 데 부담을 갖지 마라. 서울대생으로서 나중에 사회에 기여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현재 대학생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며 살았으면 좋겠다.” 2001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서울대생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