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6년, 남은 문제들
“기름유출 사고는 태안의 공동체를 무너뜨렸다”
아청의 변증법

“기름유출 사고는 태안의 공동체를 무너뜨렸다”

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포리.몽산포 항 앞은 공휴일이었음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뜸했다.이곳에서 ‘태안유류피해민대책연합회’ 사무국장 문승일 씨를 만났다.문승일 사무국장은 몽산포 항구 근처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다.장장 몇 시간에 걸쳐 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문승일 사무국장은 사고 발생 때의 혼란스러움, 주민들의 자살·생활고·심적 고통·경제적 어려움을 담담한 목소리로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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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포리. 몽산포 항 앞은 공휴일이었음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뜸했다. 이곳에서 ‘태안유류피해민대책연합회’ 사무국장 문승일 씨를 만났다. 문승일 사무국장은 몽산포 항구 근처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다. 장장 몇 시간에 걸쳐 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문승일 사무국장은 사고 발생 때의 혼란스러움, 주민들의 자살·생활고·심적 고통·경제적 어려움을 담담한 목소리로 들려줬다.

  

 

“피해민대책연합회는 사고 초기에 결성”

 

사고 몇 달 뒤인 2008년 2월에 설립했습니다. 주민들이 모여 업종별, 지역별로 대표를 선출했습니다. 업무는 2008년 4월부터 시작했어요. 손해사정관·감정인을 선정한 뒤 변호사를 선임하고 피해민대책연합회는 피해 주민들에게 위임을 받아 재판을 진행합니다. 손해사정관과 감정인이 피해액을 산출해준 자료들을 가지고 유류피해배보상 가해기업청구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태안군의 피해민 수가 약 2,670명 정도 되고 15개 산하단체 위원들이 약 200명 정도 되는데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모여서 긴급회의를 합니다. 워낙 복잡한 사안이라 회의를 하다보면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할 때도 있습니다. 전국 11개 시·군이 피해지역으로 지정됐는데 태안을 포함한 충남지역 6개 시·군에 유류대책연합회가 운영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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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로 스며든 폐유를 걷어내는 광경.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한데 섞여 작업했다. 

 

 

“소송 준비에서 제일 어려운 점은..”

 

대책위를 결성해 소송에 참여하고 있지만 소송이 길어지니 비용문제도 신경이 쓰입니다. 변호비용은 피해주민들이 지금 돈이 없어 나중에 배상을 받으면 그 중 몇%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정해놨습니다. 소송에 참여하는 우리 측 변호사가 여러 명인데 그분들도 상당히 어려움을 가지고 계십니다. 삼성을 비롯한 가해기업의 변호인단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구요. 삼성의 책임제한재판에서도 우리가 패소했던 것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닌가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상금액 문제로 IOPC와 재판을 진행 중인데요. 우리가 제시한 보상액은 주민들의 소득을 기준으로 계산했습니다. 세금을 잘 내고 자료도 있는 집, 세금은 내는데 자료가 없는 집, 세금은 안 내고 자료도 없는 집 등으로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자료 있는 집을 기준으로 계산해 자료가 없는 집의 소득을 추정해서 넣는 식입니다. 여기서 어려운 점은, IOPC에서 세금계산서 등 증빙자료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태안 바닷가엔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 주로 사시는데 바지락이나 굴처럼 맨손이나 호미로도 쉽게 캘 수 있는 해산물을 만원, 이만 원씩 현금으로 사고파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영세한 방식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잇는 분들이 훨씬 많아 영수증, 세금계산서 같이 객관성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보니 자료제출이 많이 어렵습니다. 보상 금액도 막상 받아보면 턱없이 적어요. 낚싯배를 운영하는 어부가 이번에 받은 피해 보상금액이 45만 원인데, 이는 조업이 잘되는 날 하루에 버는 금액에도 못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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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유유출사고 8일째인 12월 14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의 한 굴양식장에 원유유출로 폐사한 굴들이 그대로

   방치돼있다.  ⓒ 네이버

 

그리고 소송으로 피해보상을 받는 분들이 고령자들이 많은데 이분들이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6년 동안 많이 돌아가셨어요. 피해자임에도 사망하면 권리가 없어져요. 그래서 사망하시면 그분들의 자제분에게 위임장을 받으러 다녀야 해요. 알다시피 옛날 세대 분들은 자식을 4~5명씩 낳으셨고 그 자제분들은 각지에 흩어져 살고 계세요. 그래서 위임장 때문에 서울로, 광주로, 제주도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인감을 받아와야 해요. 지금까지 4천5백 명이 돌아가셨는데 그분들의 자녀들이 상속권을 가지고 있으니 돌아가신 4천5백 명 대신 소송에 참여해야 돼요. 그래서 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보상문제를 다루다보면 안타깝고 말도 안 되는 일을 많이 보게 돼요. 제 친구 중에 손가락이 잘려 장애인이 된 친구가 있는데, 긴급 생계비 기초수급자로 선정돼 매달 장애인 수당 47만 원을 지급받고 있어요. 근데 정부에서 이런 기초 수급을 받는 사람들을 보상 대상에서 전부 제외시켜 보상금을 못 받게 됐어요. 그래서 이 친구가 4살짜리 자기 아이를 데리고 군청 앞에 가서 휘발유를 뿌리다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어요. 태안군에만 장애인이 1,400명 정도 있는데 이 친구 덕분에 장애인 수당을 받는 사람들도 동등하게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결국 이 친구는 작년에 죽었어요. 죽은 뒤에 보상금 8백만 원이 나왔어요. 보상을 받아야 할 당사자가 죽었는데 죽은 뒤에 받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남아있는 주민분들 중 죽기 전에 직접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이 몇이나 될는지… 걱정이 많이 됩니다.

 

 

“먹고 살기 막막해지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방제작업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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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유 오염으로 폐사한 굴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주민. 태안에는 원유유출사고로 생업을 잃은

 주민들이 많다. ⓒ 구글

 

방제 작업 할 때도 몸이 많이 힘들었어요. 몰랐는데 원유가 우리 몸에 많이 해롭다고 하네요. 이 지역은 고령자는 많고 의료시설은 매우 열악한 곳이에요. 전국 지자체 중 산부인과가 몇 군데 없는 곳이 있는데 태안군이 거기에 포함돼요. 고령자는 많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서 사는 것도 아니니 젊은 사람 비율도 낮아요. 그래서 사고 방제작업을 할 때 주민들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었어요. 50대 이상 주민 분들이 많이 오셔서 작업했고요. 그나마 젊은 사람들은 소식 듣고 찾아온 자원봉사자들이었습니다. 방제 작업을 할 때 하루 일당을 줬어요. 여자는 6만원, 남자는 7만원입니다. 이 방제작업은 장비를 잘 갖추고 작업을 해야 하는데 장비가 제대로 지급이 잘 안됐어요. 몇 천 원짜리 질 낮은 싸구려 제품 사서 급하게 착용하고 작업하는 분도 계셨고 아무것도 없이 맨 몸으로 작업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았어요. 우리 주민들까지 방제작업을 할 수 밖에 없던 건 사고로 어업을 못하게 돼서 먹고 살 일이 막막하던 참에 작업에 참여하면 일당을 주니 적은 돈이라도 필요했어요. 그래서 저를 비롯해 다들 원유의 독성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워도 참고 일했습니다. 태안군 보건센터에서 건강조사도 계속 하는 중인데 확실히 타 지역에 비해 질병 발생률이 꽤 높더라고요. 수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는 것 같지만요. 저도 제 건강에 별 이상 없길 바랄 뿐입니다.

 

 

 

“30분이면 잡는 양은 이제 1~2시간은 나가야 잡아”

 

유류사고를 겪으며 어민으로써 바다 환경이 변하는 게 느껴질 때면 마음이 아픕니다. 정부와 수협공판장의 유통시스템에서 주는 자료를 보면 숫자가 확실히 달라요. 사고 초기엔 70% 감소했는데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50% 감소했다고 나옵니다. 이게 유류사고랑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워낙 바다라는 건 민감하고 자주 변하는 유동적인 환경이거든요.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감소된 어획량이 저 정도로 나온다는 건 역시 뭔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다에서 이십 년 넘게 살아본 제 직감입니다. 태안에만 서식하는 토종 어류가 있어요.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여기서만 서식하는데 그런 어종들이 확연하게 줄어들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회복세를 보인다는데 여전히 잘 안 보여요. 또 하나 힘든 게 고기를 잡으러 나가보면 연안에 고기가 없어요. 예전엔 30분 만에 잡던 양을 지금 잡으려면 2시간 정도 나가야 잡을 수 있어요. 같은 양을 잡으려고 더 멀리, 더 오래 나가게 되니까 출어비랑 생산비가 많이 들어가요. 그래서 먹고살기 위해 배 타고 나가던 일이 이젠 생계에 지장이 되고 부담이 됩니다.

 

      

 

“지역 공동체가 붕괴된 걸 보며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한숨) 태안 같은 경우엔 어선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가지고 계신 선박만 1,800척 정도입니다. 이 사고가 바다 한가운데가 아니라 해안가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어민들의 피해가 더 극심했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시는 부분인데 어선업을 하시는 분들한텐 어업은 다른 일을 가질 수 없을 만큼 자기 생명이 달린 직업입니다. 사고 당시 어선업 하시는 분들의 피해가 가장 컸습니다. 저도 사고 이전엔 20년 동안 동네에서 제일 큰 규모의 낚싯배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고 후 손님이 끊겨 2년간 운영이 안 돼 2009년에 처분했습니다.

 

또한 고령자들은 연세가 많기 때문에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게 아니라 바닷가에서 호미나 맨손으로 쉽게 채취해서 파는 걸로 먹고 사시는 분들이세요. 그렇다보니 그분들의 피해도 상당한 편입니다. 문제는 이에 대해 증명할만한 자료가 없어서 배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다도 유류에 오염돼 해양환경이 바뀌어 수확량이 적다보니 소득까지 줄어드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사고 초기 때보단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회복속도가 상당히 더딘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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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유유출사고로 영업을 중단한 태안의 펜션.

태안은 안면도 덕분에 유명해졌어요. 심지어 안면도 안에 태안이란 곳이 있는 줄 아는 사람들도 있어요. 2002년 쯤 안면도가 꽃 박람회 때문에 주목받으면서 태안에 관광객들이 몰려들었어요. 그 붐을 타고 숙박업이 번성해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펜션들이 곳곳에 생겼습니다. 펜션을 짓는데 최소 5억에서 10억 정도는 들어갑니다. 땅을 사서 건물을 올리려면 몇 십 억은 넘어갑니다. 그래서 대출을 받아서 지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기름유출사고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어요. 팔려고 내놓아도 팔리지 않고, 법원에 파산신청을 해도 쉽게 받아주지 않아 죽지 못해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높은 이자를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분들 하소연도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견디질 못해 자살하신 분이 있을 정도로 다들 구석에 몰려 있는 상황입니다. 저의 경우 유류오염사고가 난 후 ‘이제 태안은 끝났구나’하는 생각으로 일주일간 잠을 못 잤습니다. 지금 이 횟집도 2007년에 10억 원을 빌려 시작했는데 가게를 시작하자마자 사고가 터져서 앞길이 막막한 심정입니다. 저도 이자 갚는 게 보통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잠을 못 잡니다. 술을 많이 먹으면 5~6시간 정도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심적으로 괴롭다보니 생활에도 변화가 온 것 같습니다.

 

이혼하는 부부도 꽤 있습니다. 제가 아는 동생도 만리포에서 횟집을 하는데 수족관에 자꾸 기름이 흘러들어오니 수족관을 운영할 수 없어 5~6개월 정도 쉬었어요. 그렇게 사이좋던 부부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서로 갈라섰어요. 이 사고로 분신자살한 분이 네 명이나 있습니다. 음독자살하신 분도 계시고요. 사고 초창기에 유서 써놓고 자살하신 분들이 많아서 그걸 보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특히 우리 사무실에 배·보상 받는 일을 하셨던 선정대 피해대책위원장이 ‘빨리 피해대책이 이뤄져 나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돌아가셨어요. 그분은 수협 직원으로 25년 정도 근무하다 2007년에 퇴직해 전복 양식을 크게 하셨어요. 그런데 기름유출사고로 그 양식업이 완전히 망했어요. 그분이 돌아가신 뒤 보상금이 5천3백만 원이 나왔는데 상속자인 아들이 받기도 전에 금융기관에서 압류해갔어요. 2008년 초에 돌아가신 지차관 씨는 상인인데 특별법 제정해달라고 시위하는 도중에 음독하고 단상에서 분신자살을 하셨어요. 서해안 기름유출 총연합 위원장님은 작년에 할복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제가 그 옆에 있었는데 그 후론 돼지고기를 못 먹게 됐습니다. 저는 그런 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분들이 그런 선택을 안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삼성이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대로 대응해서 희망을 줬더라면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은 안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곤 해요.

 

이 사고로 인해 지역 공동체가 산산조각 났는데 이게 제일 큰 문제에요. 허물없이 사이좋게 지내던 사람들이 보상 문제 때문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어요. 피해민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게 우리가 대변인으로 나서 피해대책위원회를 운영하지만 피해민들은 ‘너희가 무능력해서 우리 집이 앞집보다 덜 받았다’고 비교를 합니다. 기름유출사고가 갈등의 씨앗이 됐다면 돈은 씨앗에 물을 뿌리는 격이 됐어요. 이건 정부가 잘못된 자료를 제공하면서 지역 간 이기주의를 부추기게 만든 것도 있습니다. 20년 전에 태안에 도로를 놓은 사업을 기름유출사고로 태안에 지원한 사업인 것처럼 포함시켜 주민들에게 발표를 했어요. 그 발표된 액수가 1조 3천억 원이었는데 사실이라면 우리 동네엔 2천억 원은 왔어야 해요. 근데 20억밖에 안 왔어요. 기본적인 자료부터 정확하지도 않은 숫자로 진짜인 양 발표를 하니까 주민들 사이에선 ‘내가 저 사람보다 덜 받았으면 어떡하나’같은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 일 뿐만 아니라 행정구역이라고 나눠놓은 지역경계선을 따라 지급되는 금액 차이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신림동이면 신림1동과 2동이 있는데 그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은 행정구역상으론 1동. 2동 주민이지만 지역적으로 보면 바로 이웃집입니다. 그런데 경계선에 따라 1동엔 200만원, 2동엔 50만원이 배정됐어요. 그렇게 행정구역으로만 구분해서 돈이 지급되니 반발이 돌아와요. 어제 이웃사촌이던 곳이 오늘은 다시는 얼굴도 안 보는 원수로 돌아서는 걸 너무 많이 봤어요. 그래서 슬픕니다. 이런 일들을 보고 겪다보니 우리가 앞으로 여기서 살 수는 있는 건지, 참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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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질 무렵의 몽산포 일대. 복잡한 속 이야기들과 달리 평온한 풍경이다. 

 

 

“삼성은 주민들에게 진정성을 보이지 않아..”

 

삼성이 기름유출사고를 별 것 아닌 수준의 사고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가 환경복구비용을 청구하기 위해 한국해양연구원, 충남발전연구원 등 5개 기관에 용역을 줘 피해액을 산출했는데 5900억에서 1조3천억 정도 추정이 나왔어요. 자료들을 전부 준비해 삼성 관계자들에게 전달했어요. 그런데 보자마자 ‘학자들의 일부 논문에 불과하다’고 한마디로 일축해버렸어요. 이 환경 피해액은 지금 법적으로 청구하고 있는 배·보상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금액입니다. 우리가 무리하게 배상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어업이 유일한 생계수단인데 그 터전이 되는 바다가 오염돼 정화하는데 20년에서 100년까지 걸릴 수 있는 상황이니 그걸 복구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가 회사가 망할 정도의 과도한 금액을 요구한다고 밀어내버리니 대화가 안 됩니다. 그리고 작년에 국회에서 삼성협의체가 열려 태안군 대표로 참석했는데 제가 자료를 한 보따리 가져가 드렸어요. 삼성 측에서 제시하는 보상안에 대한 자료를 우리한테 줬는데 달랑 A4용지 2장이었어요. 그 2장에 적힌 것도 ‘국제기금 사정액이 1,800억이니 우리도 1,800억을 드리겠습니다’란 요지의 내용뿐이었습니다.

 

예전에 삼성이 발전기금 500억을 썼다고 했는데 재밌는 건 삼성에서 ‘우리가 태안에 와서 한 의료봉사도 발전기금에 포함된다’고 저한테 말했어요. 어떻게 의료봉사를 돈으로 환산해서 발전기금에 포함시켜놓고 500억을 썼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그럴 거면 의료봉사라는 말은 쓰면 안돼요. 의외로 이런 내막은 사람들에게 안 알려졌더라고요. 심지어 삼성은 태안의 지역발전을 위해 상품권을 대량으로 구입했다고 보여주는데 상품권을 백 억어치를 구입하더라도 그 중 20억 정도만 주민들에게 돌아가요. 삼성이 지역을 위해 썼다는 500억의 내역은 하나같이 그렇게 불확실한 쓰임새들이 많았어요. 문제는 최근에 출연기금을 상향 조정해서 3,600억을 내놓겠다고 한 걸 믿으시면 안되는 게 이미 앞에 말씀드린 500억을 저 3,600억 안에 포함시켰어요. 실제로는 3,100억을 더 출연하는건데 외부에는 삼성이 태안에 500억 썼다는 것과 별도로 3,600억을 더 내놓는다고만 알려지는 거예요. 이 금액이 증가한 것도 이 사고가 국제기록으로도 남아요. 사고기업이 어떤 대응을 했는지도 전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생각하느라 액수가 올라간 거지 제대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느껴서 그 금액이 나온 게 아니에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다 매출 규모도 한 해에 15조씩 나오는 기업이 돈 가지고 피해주민들에게 장난을 치는 태도를 보면 진정성이 있긴 한지 의문이 생깁니다.

 

시원하게 매듭짓고 끝나는 일이 없이 6년을 하다 보니 힘들고 지겨울 때도 많습니다. 주민들도 지치다보니 주민들의 관심도도 떨어지는데 사회적으로도 관심이 많이 낮아졌더라고요. 억울한 건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보상이 돼야 하는데 그에 대한 책임을 안 지고 ‘시간이 지나면 나가떨어지겠지’라는 태도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려 피해민들을 이겨보려고 하는 게 보여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국회 특위에서도 삼성 편을 드는 국회의원도 있습니다. 우리의 피해를 도와주려고 특위를 구성하신 분들이 삼성도 우리 국민이니 좋게좋게 가면 어떠냐는 식으로 은근하게 삼성을 감싸는 모습을 보면 황당합니다.

 

정부에서 특별법을 시행한 덕에 재판이 내후년 안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우리가 보기엔 희망적인 상황은 아니에요. 법은 서류에 근거해서 판단을 내리기만 하니 보상과 관련된 자료를 누가 더 충실하게 내는지에 따라 판가름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피해 주민들이 피해 근거를 댈 수 있는 증명 자료를 낼만 한 게 없어요. 일단 대전지법에서 7360억을 이미 판결했으니 그것만이라도 기업들이 제대로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4조2천억은 있어야 회복하는데 주력할 수 있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판결난 금액만이라도 일단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 받으려면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내라고 독촉하지만 자료를 만들 수 없는 걸 어떡하겠습니까. 내년 5월에 1심 판결이 나는데 그게 아마 확정 판결이 되지 않을까 해요. 어쨌든 우리 사무실도 피해주민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는데 부디 모든 주민들이 갈등 없이 공평하게 나눠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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