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4일, 인천지방경찰청은 일본 음란 만화를 번역해 배포하던 블로거 A씨와 기타 번역 및 편집자 36명, 이들이 배포한 자료를 내려 받은 22명을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아청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는 일명 ‘모에칸 사건’으로, 성인교복물 논란 이후로 다시금 아청법이 화제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
논란의 핵심, 아청법 제2조 제5호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2000년 7월부터 시행된 ‘청소년의 성보호에 대한 법률’로부터 개정된 법안이다.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제정 당시 주로 청소년 성매매를 규제하기 위한 법이었다. 그러나 아동 성범죄의 증가로 인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 공개 등 처벌을 강화한 개정이 수차례 이루어졌고, 2009년 개정안에서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됐다. ‘조두순 사건’과 같은 아동 성범죄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어김없이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여론이 있어왔으며, 일련의 개정안들은 이러한 여론에 부합했다.
하지만 2012년 3월 시행된 개정안에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대한 정의가 확대되며 아청법은 새로운 논란이 됐다. 기존 아청법의 제2조 제5호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대한 정의 중 ‘아동·청소년이 등장하여’라는 대목이 개정안에서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로 변경된 것이다. 때문에 기존에 실제 아동이나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의 제작 및 유포, 단순소지 등에 대한 처벌이 성인이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음란물이나 가상의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매체에까지 확장됐다.
물론 아청법이 아니더라도 인터넷을 통한 음란물 유포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같은 행위라도 아청법에 의한 형량이 더 높으며 신상 등록, 취업제한과 같은 부수적 처벌이 따라온다. 또 단순 소지로는 처벌받지 않는 일반 음란물과 달리 아동·청소년 음란물은 내려 받거나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의 처벌을 받을 수 있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이 어디까지인지를 규정하고 있는 아청법 2조 5호가 논쟁의 중심이다.
개정안 시행 이후 유포하거나 내려 받은 음란영상에 등장하는 성인 배우가 교복을 입고 등장하거나 앳돼 보인다는 이유로 아청법 위반으로 기소되는 사례 등에서 아청법 2조 5호의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이라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때문에 올해 6월 19일부로 시행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에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개념을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경우로 축소했고, 소지죄의 경우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이라는 것을 알면서’ 소지한 경우로 한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의 가상표현물을 ‘아동 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지될 수 있는 표현물’의 범주에 넣고 해당 표현물의 유포 및 소지에 대한 경찰 단속이 이루어져 ‘가상의 아동·청소년이 아닌 실존하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가 우선이다’, ‘창작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와 같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아청법 개정안 별 비교
음란물 유형에 따른 양형기준
경찰의 집중단속도 아청법의 이슈화에 기여해
개정된 아청법과 더불어 경찰의 집중단속도 파장을 일으켰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대검찰청의 정보공개에서 작년 아청법 제8조(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의 제작 배포등)와 관련된 사건 접수는 2,224건으로 2011년 100건에 비해 크게 늘었고, 그 중 775건이 기소 처리됐다. 2006년 한 개인이 불법 음란물 1만 4천여 건을 인터넷을 통해 유포한 혐의로 검거된 속칭 ‘김본좌 사건’이 시사하듯 그간 경찰의 음란물 단속은 주로 ‘헤비 업로더(영리를 목적으로 불법 저작물을 대량으로 인터넷을 통해 유포하는 사람)’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지난해 5~9월 음란물 집중 단속을 실시해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제작·배포한 352명 외에도 단순 소지한 86명을 적발했다. 올해도 4월 1일을 시작으로 10월 31일까지 집중 단속을 실시 중으로, 8월 16일까지 5,584명이 적발됐다.
단속 범위도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내려 받은 경우로부터, 네티즌들 사이에서 그동안 ‘경찰 단속의 사각지대’처럼 여겨지던 토렌트 등의 P2P를 통해 내려 받은 경우까지 이례적으로 확대됐다. 평범한 학생·직장인 등이 파일 공유 사이트나 P2P를 통해 성인교복물을 비롯한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내려 받은 후 아청법 위반으로 경찰 소환장을 받는 사례가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아청법이 이슈가 됐고, 유사한 사유로 경찰 조사나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네티즌들 사이에 퍼졌다.
2013년 8월 현재 회원수 10만 명을 넘어선 네이버 카페 ‘파일공유 웹하드 p2p 토렌트 저작권 단속 관련 네티즌 대책토론’에는 지난 4월 이후로 아청법에 관해 천여 건의 글이 올라왔다. 글 내용은 아청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거나 기소유예, 벌금형 등의 법적 판결을 받은 경험담 및 후기, ‘몇 달 전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내려 받았는데 처벌 대상이 되느냐’는 식의 질문글, 아청법 및 경찰 수사 등에 대한 반대의견 및 불만 표출 등으로 다양하다. 제기된 의견으로는 ‘음란영상물에 성인이 교복을 입고 등장하거나 앳돼 보인다는 이유로 아동·청소년 음란물로 간주되는 등 아청법에서 정의하는 아동·청소년 음란물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모호하다’, ‘가상음란물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실제 아동·청소년을 성폭행한 성범죄자처럼 신상등록, 취업제한 등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경찰의 무더기 기소는 쉽게 직무실적을 쌓고자 하는 편법으로 보인다’ 등이 있었다.
올해 시행된 개정안,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올해 6월 19일부로 아청법 개정안이 새로 시행됐고 6월 27일, 이 개정안에 의거해 수원지방법원은 성인교복물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게 아청법 부분은 무죄임을 판결했다. 이로 인해 크게 논란이 됐던 성인교복물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범주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만화·애니메이션 등 가상의 매체에서의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적 묘사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범주에 그대로 남아 ‘모에칸 사건’을 통해 아청법이 다시금 이슈가 되게 했다.
‘모에칸’은 사건의 중심이 된 블로그 운영자의 닉네임으로, 인터넷을 통해 만난 다른 번역자, 식자(원본 만화책의 대사를 지우고 번역한 내용으로 대치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본 음란 만화를 번역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토렌트 형식으로 유포했다. 경찰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제작 혐의를 적용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결국 이들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유포 혐의로 입건됐다.
이 사건은 6월 19일자 개정안에서도 애니메이션·만화와 같은 가상의 매체에 등장하는 아동·청소년의 성적 묘사는 여전히 아청법에 의해 처벌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로 인해 아청법을 통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규제하는 취지는 음란물 제작 과정에서 실제 아동의 성적 학대를 막기 위한 것인데 이번 사건은 이와 무관하다’는 반대여론이 컸다. 또한 ‘아청법이 가상표현물을 규제할 경우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를 저해할 여지가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러한 가상표현물을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서울 북부지방법원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각각 5월 27일과 8월 12일에 위헌 제청을 냈으나 아직 법원의 판결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서울 북부지방법원 변민선 판사는 위헌제청 결정문에서 ‘사실적 이미지에 한정하지 않고 가상의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모든 경우를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면 로미오와 줄리엣, 은교와 같은 영화·애니메이션·게임물도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해당될 수 있다’며, 아청법 2조 5호는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 표현의 자유와 과잉금지의 원칙, 평등의 원칙 등에 위배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밖에도 외적으로는 다운로드와 동시에 배포가 이루어지는 토렌트의 특성상, 다운로더들에게 배포죄를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과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관련자들을 불러서 조사하는 중에도 ‘모에칸 블로그’를 폐쇄하지 않고 함정수사를 했다는 지적(현재 해당 블로그는 유해사이트로 지정돼 국내 접속이 차단된 상태다)이 있었다. 또 배포자 및 다운로더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의 IP 수집 과정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단속은 여전히 진행 중으로, 8월 19일에도 인터넷 번역 모임 중 하나인 ‘팀 던갤러스’ 소속으로 알려진 한 번역자가 인천지방경찰청으로부터 출석 요구를 통지받았다.

부산경찰은 6월 18일, 페이스북 계정에서 위 이미지를 통해 아청법 개정안 시행을 알렸다.
이 이미지는 한 일본 AV 제작사의 영상 앞부분의 경고문구를 패러디한 것으로, 네티즌들의 이목을 끌었다.
©부산경찰 페이스북
아청법 개정 토론회, 어떤 말들이 오갔나
지난 8월 12일, 인터넷의 자유, 개방, 공유를 위한 비영리단체인 사단법인 오픈넷은 민주당 최민희 의원 등과 함께 ‘아청법 2조 5호, 범죄자 양산인가? 아동·청소년 보호인가?’라는 제목의 국회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핵심적으로는 가상아동물을 아동성범죄로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는 “실제 아동을 묘사하는 등의 방식으로 실제 아동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가상아동물을 아동성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아동포르노 제작과정에서 발생하는 ‘아동의 성적학대 방지’라는 아동포르노 규제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훈 교수도 “실제 음란물에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경우 침해되는 보호법익은 실제 아동·청소년의 성적인 건전한 발전과 사회의 건전한 성 풍속이지만, 성인이 아동처럼 분장을 하고 촬영한 음란물이나 가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 두 보호법익 중 후자만 침해하기 때문에 일반 음란물에 준하는 처벌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아동·청소년음란물이 아동성범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입장이 갈렸다. 박경신 교수는 “스위스, 덴마크의 연구 사례에서 아동포르노 소비와 아동성범죄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실제 아동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음에도 ‘아동성범죄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아동성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살인을 미화하는 영화를 찍은 감독을 살인죄로 처벌’”하는 격이라 비유했다. 그러나 여성가족부나 경찰청 등 정부 관계부처에서는 아동성범죄 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아동음란물을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성가족부 고의수 과장은 “아동음란물과 성범죄가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12년도 연구에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아동성범죄자들이 애니메이션 등의 아동음란물을 다수 시청하거나 소지한 사례 등으로 인해 가상표현물을 규제하는 결정이 이뤄질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봤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이병귀 수사팀장도 ‘경찰에서 가상의 표현물만을 단속해서 건수를 늘렸다’는 지적을 부인하며 “작년 8, 9월에 발생한 아동 성폭력 사건 등으로 인해 아동음란물 단속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아청법에 따라 취업제한의 처벌을 가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최민희 의원은 “아들이 어느 날 ‘야동’을 보고 아청법 논란의 쟁점이 되는 경계영역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아들이 취업도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 법무법인 이공 양홍석 변호사는 일선에서 아청법 사건을 변호하면서 보면 아청법 위반 음란물로 적발되는 사람들이 “대부분 학생, 사회초년생, 초범”이라며 “취업제한으로 인해 한 젊은이의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현재 최 의원은 지난 2월 26일 대표 발의한 아청법 개정안에서 2조 5호의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히 인식될 수 있는’이라는 대목을 ‘실존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히 인식될 수 있는’으로 변경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해당 개정안은 여성가족위원회 심사에서 검토 중에 있다.
박경신 교수는 “이 그림의 작가가 최소 징역 5년 이상의 형을 받는 것이 여러분들이 가진 법 감정에 과연 부합하는가”
라고 물으며 현 아청법에 의한 양형규정을 꼬집었다.